자작글-023

잡도리

호당의 작품들 2023. 10. 22. 11:37

잡도리/호당/  2023.10.22

오랜만에 운암지를 걸었다
스크렁이 찬바람에 스산한 몸짓은 
복슬복슬한 꼬리로 꼬리말 한마디
잡도리* 잘하란다

함께 자란 분홍바늘꽃은 
상냥한 낯빛으로
가는 세월 탓 말고 채비를 잘하란다

국화는 노랑 낯빛으로
오상고절 傲霜孤節인 나 
까짓것 두렵지 않아 평소 단련하란다

운암지를 휘젓는 오리는
넓적부리로 일갈한다
얼음 속을 헤집고 살아가는데
그까짓 바람맞고 벌벌 떠느냐 나무란다

찬바람 매몰차게 불어 뺨을 갈긴다
정신 차리란다

운암지를 배회하는 동안
무정설법 無情說法을 통해
들은 듯한 한마디
잡도리하라고

*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채비나 단속을 뜻하는 순 우리말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陶淵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