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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월의 시

인보 2010. 1. 14. 11:01

3월의 시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박목월>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
해외로 나간 친구의
체온이 느껴진다

 

참으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골목길에는
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

 

동, 서, 남, 북으로
틔어 있는 골목마다
수국색 공기가 술렁거리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
다음 골목에서
만날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약간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어제 오늘
어디서나
분홍빛 발을 아장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만나게 된다
ㅡ무슨 일을 하고 싶다
ㅡ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
ㅡ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
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
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
희고도 큼직한 날개가
양 겨드랑이에 한 개씩 돋아난다                      

 

 

 

 

3월       

 

 <나태주>

 

어차피 어차피
3월은 오는구나
오고야 마는구나
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
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
새들은 우리더러
무슨 소리든 내보라 내보라고
조르는구나
시냇물 소리도 우리더러
지껄이라 그러는구나
아, 젊은 아이들은
다시 한번 새옷을 갈아입고
새 가방을 들고
새 배지를 달고
우리 앞을 물결쳐
스쳐가겠지
그러나 3월에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3월        

 

 <에밀리 디킨슨>


3월이네요, 어서 들어오세요!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요
일전에 한참 찾았거든요
모자는 내려놓으시지요
아마 걸어 오셨나보군요
그렇게 숨이 차신 걸 보니
그래서 3월, 잘 지내셨나요?
다른 분들은요?
자연은 잘 두고 오셨나요?
아, 3월 바로 저랑 이층으로 가요
말씀드릴 게 얼마나 많은지요

 

 

 

 

3월

 

 <김광섭>

 

3월은 바람쟁이
가끔 겨울과 어울려
대폿집에 들어가 거나해서는
아가씨들 창을 두드리고
할아버지랑 문풍지를 뜯고
나들이 털옷을 벗긴다

 

애들을 깨워서는
막힌 골목을 뚫고
봄을 마당에서 키운다

 

수양버들
허우적이며
실가지가 하늘거린다

 

대지는 회상
씨앗을 안고 부풀며
겨울에 꾸부러진 나무 허리를 펴 주고
새들의 방울소리 고목에서 흩어지니
여우도 굴 속에서 나온다

 

3월 바람 4월비 5월꽃
이렇게 콤비가 되면
겨울 왕조를 무너뜨려
여긴가 저긴가
그리운 것을 찾아
헤매는 이방인

 

 

 

 

3월         

 

 <문인수>

 

아직은 바람이 차다 하면서
누가 밤중에 깜깜한, 찬 부엌으로 내려갔다
군불 한 소끔 더 때고 들어왔다
잉걸 화롯불도 새로 들여온 것 같았다
나도 선잠을 걷고 화롯불 앞에 쪼그려 앉고 싶었던 것처럼
방금 자리 뜬 저 아이들처럼
이글이글 올라온 이 한 무더기 동백꽃 쬐보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은 또 먼 땅 속에서 두런두런거리는 것 같다
아직은 때때로 바람이 차다

 

 

 

 

3월    

 

 <임영조>

 

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느냐
흙먼지 자욱한 꽃샘 바람
먼 산이 꿈틀거린다

 

나른한 햇볕 아래
선잠 깬 나무들이 기지개 켜듯
하늘을 힘껏 밀어올리자
조르르 구르는 푸른 물소리
문득 귀가 맑게 트인다


누가 또 내 말 하는지
떠도는 소문처럼 바람이 불고
턱없이 가슴 뛰는 기대로
입술이 트듯 꽃망울이 부푼다

 

오늘은 무슨 기별 없을까
온종일 궁금한 삼월
그 미완의 화폭 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써놓고
찬연한 부활을 기다려 본다

 

 

 

 

삼월

 

  <헤르만 헷세>

 

파란 언덕 한 편에
제비꽃의 파랑은 피어났는데
검실한 숲을 따라
눈은 아직도 혓바닥 모양으로 누워있다.
그러나 물방울은 물방울로 녹아 사라져
메마른 땅으로 빨리어 든다.
파리한 하늘 높이 비늘구름이
비추이는 양떼처럼 조용히 옮아간다.
방울새 소리가 귀엽게 숲 속으로 사라진다.
사람들이여,
너희들도 노래하라.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3월    

 

 <장석주>

 

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쇄빙선 같이
치욕보다 더 생생한 슬픔이
내게로 온다

 

슬픔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자가 얹혀지지 않은 머리처럼
그것은 인생이 천진스럽지 못하다는 징표

 

영양분 가득한 지 3월 햇빛에서는
왜 비릿한 젖 냄새가 나는가

 

산수유나무는 햇빛을 정신없이 빨아들이고
검은 가지마다 온통 애기 젖꼭지만한 노란 꽃눈을 틔운다

 

3월의 햇빛 속에서
누군가 뼈만 앙상한 제 다리의 깊어진 궤양을 바라보며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3월에 슬퍼할 겨를조차 없는 이들은
부끄러워하자
그 부끄러움을 뭉쳐
제 슬픔 하나라도 빚어낼 일이다

 

 

 


3월         

 

 <김명희>

 

3월은 느티나무 우듬지로 온다
얇은 햇살도 가지 끝으로 기대어 선다
아직은 잔설이 남아 발이 시리다
나는 가끔 발이 시려 잠을 설치곤 한다
발 아래 식구들 모여 살았던 곳
잔뿌리로 길을 내며 살을 비비고
온 몸으로 물을 나르는, 사이사이
유난히 싱그럽게 깨어나는 가지가 있다
그러나, 아직은 뿌리에 물을 모으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서둘러 몸만 빠져 나간다고 해서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보다
숨 가쁜 시간이 지나가고
흔들어 깨우는 바람이 몇 차례
지나가고 난 후, 가까스로 눈을 뜨는 나는
시린 두 손 합장하며 안도의 숨을 쉰다
작은 벌레 한 마리
점자로 가만가만
뿌리의 숫자를 더듬는다

 

 

 

 

3월

 

  <이해인>

 

아직은 빈손을 쳐들고 있는
3월의 나무들을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경건한 기도를 바치며
내가 나를 타이르고 싶습니다

 

죄도 없이 십자나무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을 기억하며
가슴 한켠에
슬픔의 가시가 박히는 계절
너무 죄가 많아 부끄러운 나를
매운 바람 속에 맡기고
모든 것을 향해
화해와 용서를 청하고 싶은
은총의 사순절입니다

 

호두껍질처럼 단단한 집 속에
자신을 숨겼던 죄인이지만
회심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슬퍼하지 않으렵니다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하지 않으렵니다

 

우리 모두 나무처럼 고요히 서서
많은 말을 줄이고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해주십시오
나무처럼 깊숙이
믿음의 땅에 뿌리를 박고
세상을 끌어안되
속된 것을 멀리하는
맑은 지혜를 지니게 하십시오

 

매일의 삶 속에 일어나는
자신의 근심과 아픔은 잊어버리고
숨은 그림 찾듯이
이웃의 근심과 아픔을 찾아내어
도움의 손길을 펴는
넓은 사랑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현란한 불꽃과 같은
죄의 유혹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그럭저럭 살아온 날들,
기도를 게을리 하고도 정당화하며
보고, 듣고, 말하는 것에서
절제가 부족했던 시간들,
이웃에게 쉽게 화를 내며
참을성 없이 행동했던
지난날의 잘못에서
마음을 돌이키지도 않고
주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진정한 뉘우침도 없이
적당히 새날을 맞으려고 했던
나쁜 버릇을 용서하십시오

 

이젠 다시 사랑으로
회심할 때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불목에서 화해로
증오에서 용서로
새로운 길을 가야 하지만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항상 멀기만 한 길입니다

 

이젠 다시 사랑으로
마음을 넓히며
사랑의 길을 걷게 해주십시오

 

오직 사랑 때문에
피 흘리신 예수와 함께
오늘을 마지막인 듯이 깨어사는
봉헌의 기쁨으로
부활을 향한 사랑의 길을
끝까지 피 흘리며 가게 해주십시오

 

아직은 꽃이 피지 않은
3월의 나무들을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도하며
보랏빛 참회의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3월에 

 

    <이해인>

 

단발머리 소녀가
웃으며 건네준 한 장의 꽃봉투
새봄의 봉투를 열면

 

그애의 눈빛처럼
가슴으로 쏟아져오는 소망의 씨앗들

 

가을에 만날
한 송이 꽃과의 약속을 위해
따뜻한 두 손으로 흙을 만지는 3월

 

나는 누군가를 흔드는
새벽 바람이고 싶다

 

시들지 않는 언어를 그의 가슴에 꽂는
연두색 바람이고 싶다

 

 

 

 

3월의 시      

 

      <워즈워드>

 

수탉은 꼬기오
시냇물은 졸졸
작은 새들은 짹짹
호수는 번쩍번쩍
푸른 들판은 햇볕에 졸고
늙은이와 어린 아이
힘센 자와 같이 일을 하네
소들은 풀을 뜯으며
고개 한 번 쳐들지 않네
마흔 마리가 한 마리같이!

 

패한 군사들처럼
흰눈은 물러가고
헐벗은 언덕 위에서 쩔쩔매네
소년농부ㅡ 이따금 ㅡ
환호성을 울리고
산에는 기쁨이
샘물에는 숨결이
조각구름은 떠가고
푸른 하늘은 끝도 없어라
비는 그치고 간데 없네!

 

 

 

 

3월 봄날

 

       <나명욱>

 

3월 봄날은
언젠가 내 뒤를 따라다니며
사랑한다. 고백하고 떠나버린
그 첫사랑 고운 임 만큼이나
변덕스런 질퍽 이는 날씨다

 

활짝 목련꽃 피는가 했더니
하늘 우러러 봉오리만 날름 내밀다
그만 다시 고개 숙이고 마는
또 그러다 마음 변하면
언제 그날처럼 변덕부릴지 모를

 

봄인가 하더니 겨울이고
하얀 함박눈 내리더니
다시 그사이 녹아내리고
화들짝 놀란 토끼 눈 되어
내일이면 또 달아날 봄날이다.

 

 

 

 

3월의 바람 속에         

 

                <이해인>

 

어디선지 몰래 숨어들어 온
근심, 걱정 때문에
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

 

흰 눈이 채 녹지 않은
내 마음의 산기슭에도
꽃 한송이 피워 내려고
바람은 이토록 오래 부는 것입니까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
아직은 시린 햇볕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
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살아 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
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

 

나는 먼데서도
잠들 수 없는 3월의 바람
어둠의 벼랑 끝에서도
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3월, 플라타너스   

 

                 <마경덕>

 

도로변 플라타너스기둥
일렬로 서있다

 

지나가던 봄이 죽었나 살았나 귀를 갖다댄다
얼룩버짐 온몸에 퍼져있다

 

도심을 가로지른 전선 아래
버스가 줄지어 달려가고
몸통만 남은 플라타너스
머리 위 전선을 비집고
막무가내 뭉특한 모가지를 디민다

 

퍽퍽, 맨몸으로 허공을 들이받는
저, 저, 가지 끝
짐승 냄새가 난다

 

나무는 지금
터진 살을 꿰매는 중.

 

길을 가다가
성난 뿔을 보았다
허공에 쩌억 금이 가는 소릴 들었다

 

 

 

 

3월의 추억

 

        <조용순>

 

청춘의 정거장을 지나
지금 어느 간이역을 지나고 있는지
기억의 차창에 매달려
아름다움으로 활짝 피었던
꽃망울 터뜨리던 날의
기적소리 들려오고 있어

 

애써 잊으려 했던 기억들이
갈망의 3월 언덕을
숨죽여 기어오르고 있으니
지나온 정거장마다
피어 있던 붉은 꽃송이들이
손짓하고 있기 때문이리

 

사랑이라는 말도 할 줄 몰라
하얀 수줍음이 붉게 물들기만 하던
그날들의 그림은
지나는 정거장마다 덜컹거리며
가슴으로 밀어 넣어야 했는데
맑은 사랑이 보석처럼 아까웠나 보다

 

혼탁한 세월 속에
바람에 나부끼는 이름을 밀어놓고
억지로 잠재우던 날의 뜨거운 추억은
주르륵 봄비처럼 눈물 흘리며 다가와서
3월 속으로 깊게 파고든다

 

 

 

 

3월의 그대에게

 

               <박우복>

 

어느 꽃이 먼저 필까
기다리지 말아라
꽃잎이 흔들릴 때마다
떨리는 몸과 마음
어찌 감당하려고

 

가슴을 적시는
봄비도 기다리지 말아라
외로움 안고 창가에 앉아
가슴에 번지는 그리움
어찌 감당하려고

 

3월이 되면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뛰는데.

 

 

 

 

3월의 노래

 

        <김사랑>

 

3월 아침
이른 들길을 걸어 봐요
이제 돋아난 풀잎에 맺힌 이ㅡ슬이
반짝일거여요

 

3월이면
다시 시작 해보는 거여요
나무가지 마다
움트고 오는 새 순처럼
푸른마음을 하늘에 걸어두고
물 길어다 꿈을 적시며
사랑의 마음이 자라길 기다리는 거여요

 

꽃은 피어
그대 사랑은 향기롭고
내 사랑은
봄 햇살처럼 눈부실거여요

 

우리 사랑을 해보는 거여요
해마다 그래왔던 것처럼
마을 앞강을 흐르는 물결인양
사랑하는 마음만 들고
낮은 곳으로 흘러 가지요

 

3월이면
마음을 비워두고 바람의 숨결처럼
짧게 지나가는
삶의 한 순간 일 뿐이니
아름답게 사는 거여요

 

 

 

 

가는 봄 3월         

 

          <김소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짇
강남 제비도 안 잊고 왔는데,
아무렴은요
설게 이 때는 못 잊게, 그리워.

 

잊으시기야, 했으랴, 하마 어느새,
님 부르는 꾀꼬리 소리.
울고 싶은 바람은 점도록 부는데
설리도 이때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짇

 

 

 

 

3월과 4월 사이       

 

                <안도현>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 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 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제비꽃 피고

 

 

 

 

處容 斷章

 

        <김춘수>

 

3월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 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쪽 바다.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3월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출처 : 파인우드
글쓴이 : 파인우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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