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송년에 붙여 호 당 한해의 화폭이 다 매웠다 내가 걸어오면서 채색한 것이 마무리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보잘것없게 비칠지라도 모두 내가 밟아 이룩한 그림이다 그 그림을 그리려 많은 화살을 쏘았다 적중한 화살이든 빗나간 화살이든 내가 행한 것이다 다만 빗나간 화살이 남에.. 자작글-011 2011.12.31
겨울 강 겨울 강 호 당 2011.12.28 얼음으로 단단한 내 절개에 누가 흠집 내려 돌팔매 하는가 쩌렁쩌렁 소리로 내 절규가 산기슭까지 닿는다 순리로 흐르던 나 세속을 어길 수 없어 그대로 자신을 끌어들여 굳어버리고 말았다 세파에 굳어버렸지만 내 굳은 절개를 꺾이겠나 겉으로는 굳었지.. 자작글-011 2011.12.28
언 강이 풀린다 언 강이 풀린다 호 당 2011.12.28 긴 세월 우리말은 꽁꽁 얼어붙었다 흘러온 세월만큼 말의 억양도 변질하여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흑과 백 같은 땅 같은 산허리에 뿌리박은 쑥이랑 달래랑 냉이들이 고개 빳빳이 쳐들고 독을 품는가 하면 부드럽고 유순하여 단맛을 품기도 한다 동토.. 자작글-011 2011.12.28
고로쇠나무 고로쇠나무 호 당 2011.12.28 남보다 먼저 생기를 찾았다 친구들은 추위에 떨고 있지만 나는 서서히 피돌기를 시작하여 내 물관에 봄이 깃들고 있는가보다 깊숙이 박은 뿌리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을 켜고 땅의 기운을 뽑기 시작했다 서서히 시동이 걸렸으니 너희는 내 젖꼭지에 심지.. 자작글-011 2011.12.27
문자의 숲 문자의 숲 호 당 2011.12.27 용기 내어 들어선 단비 내리는 문자의 숲이다 겨우 단비 몇 방울 맞고 이것만이면 된다고 느끼는 멍텅구리는 훌쩍 떠나버린다 밀림에서 야생마같이 살아도 최대의 낙원이라 느끼는 족속과 같을까 차라리 밀림에서 살면 그럴 만도 하겠지만 이 밝은 세상.. 자작글-011 2011.12.27
개기월식 개기월식 호 당 2011.12.24 너와 나는 사랑하면서도 멀리서 그리움만 끌어안고 한 번도 포옹하지 못했다 너는 강렬한 사랑의 눈빛을 비추고 나는 너의 눈빛을 되 비추기는 했어도 내 가슴에 품지 못했다 너와 나는 사랑의 계단을 밟아도 언제나 엇박자 가까이하는 듯 비켜가는 너 오.. 자작글-011 2011.12.24
움켜쥔 손 움켜쥔 손 호 당 2011.12.22 내가 내 것을 한 움큼의 손아귀에 가두었지만 지금은 하나만이라도 온전히 움켜잡고 싶다 수미산에서 달을 바라보고 올망졸망한 산을 조아리라고 외치던 패기는 터진 쌀자루에서 줄줄이 새고 팽팽하던 고무줄이 긴장이 풀리자 손아귀 틈으로 모래알이 .. 자작글-011 2011.12.22
철새무리 날다 철새무리 날다 호 당 2011.12.22 분명히 앞장을 끌어가는 새가 있다 너른 벌판에 내려 각기 먹이를 찾았다 넘보거나 가로막거나 가로채는 일은 없었다 먹이를 두고 다투는 일도 없었다 각기 행동은 자기 테두리에서 행했다 일제히 공중을 날았고 처음 방향은 제각각이면서도 부딪거.. 자작글-011 2011.12.22
왕벌 왕벌 호 당 2011.12.19 날개 퍼덕여 군림하던 왕벌이 날갯죽지도 호령도 굳어 멈췄다 병든 왕벌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차디찬 시간에서 먹구름에 덮여 견뎠다 얼음 꽁꽁 어는 소리를 깔고 그 위에서 주전자에 물 끓여 따뜻한 차 마시며 오직 독침 만들어 갈무리하거나 위협하는 데만 .. 자작글-011 2011.12.22
식탐 -공동회식- 식탐 -공동회식- 호 당 2011.12.16 탯줄 끊고부터 왕성한 식욕은 생의 밑천이 되지만 긴 식탁에 내린 입술들이 각기 가득 고인 침샘을 자제하면서 일행의 혓바닥이 같은 미각을 느끼도록 배려하는데 유독 식탐은 달콤한 미각에 허겁지겁 끌어들여 눈총의 표적을 만든다 생의 본능을 이파리 .. 자작글-011 2011.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