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2

가을

인보 2022. 10. 28. 17:50



가을/인보/ 2022.10.28

여름의 악한들이 우르르
이 골목 저 골목,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며 더운 기운으로 
윽박지른다
아무도 타이르거나 타협하지 않아
땀만 흘리는 동안 
에어컨 계기는 싸늘하게 돌아간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지구는 돈다
봄을 쫓던 배추흰나비는 
여름과는 타협하지 않겠다고
무 장다리꽃만 찾아든다
개구리는 물을 박차고
나무 그늘을 파고들고
그 사이 여름의 불한당은 
하나둘씩 이탈하자
기를 잃어간다

땀 뻘뻘 흘린 보람으로 
사과는 술 취해 벌겋게 달아 있고 
감은 무안당하고
대추는 땀 독에 절여 
빨강 망토를 쓰고 가을을 즐긴다

여름의 불한당에 시달린 생명들이
보상이라도 받은 듯 
붉거나 제 색깔에서 탈출해
가을을 마중하려 
모두 색 띤 옷으로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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