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13

삶을 붙잡고

인보 2013. 12. 29. 09:03

 

 

    삶을 붙잡고

    호 당 2013.12.28

    보이지 않은 예리한 창살 날아온다
    내 귓바퀴에 꽂힌 흔적이 붉게 얼어버린
    가장 추운 한파주의보 내린 날씨에
    생에 매달려 종종걸음치는 노파를 봤다

    허리를 꼬부리고 쫓기듯 걷다가
    가로수에 기대 ‘후유’ 허리를 펴고서
    다시 삶을 붙잡고 꼬부랑 걸음 치는 노파
    예리한 칼날 바람을 뚫고서
    보아하니 추위에 넉넉한 장비는 못되고
    낯과 머리는 그대로 드러나 있다

    노파는 처절한 자벌레 잣대 재기를 한다
    꼬부라진 할미꽃이었을 때를 지나
    꽃도 씨앗도 모두 날리고
    이 추운 날 아침을 헤집고 나선 노파는
    신호에 막힌 자동차가 멈춰 훤해지자
    12차 도로를 꼬물꼬물 박음질해서 건너
    잠시 가로수에 안도를 맡겨 생을 길게 편다

    삶은 걸어야 한다
    걸음 멈춤이 삶의 멈춤과 이어진다
    노파는 안다
    매서운 추위에도 방을 박차고 나와
    자식에 짐 되지 않으려 기를 쓰고 걷는다
    대롱대롱 매달린 삶을 이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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