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14

머리 염색하는 날

인보 2014. 6. 2. 21:33

머리 염색하는 날  호 당   2014.6.2
노을이 검은 장막의 앞장쯤으로 느끼게 된 것은 
백발이 오고부터였다
염색은 하얀 대낮이 제격이다
밤을 지우려 불 밝혀봐야 밤은 밤이다
불 밝은 시간은 색을 혼동시켜 좋지 않아
하얀 시간에 염색은 질감을 판단할 수 있어
어린애 때 쓰는 울음에는 검은 울음은 없다 
태어날 때부터 까만 머리는 찬란한 아침이슬 
속의 무지개로 반들거렸다
하얀 시간이 쌓여 노을에 물들고부터 백로가 
머리 위에 놀기를 즐겼다, 굳이 내쫓으려 했다
자연을 거역하면 비탈길만 걷다가 미끄러지기 
십상인데 갈 데까지 가보자는 배짱으로 본색을 
숨긴다
아니, 양심까지 물들이면 안 되지
염색을 부정으로만 보지 말라
모든 천은 염색으로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용기와 자신감과 의욕이 샘솟거든
너희 젊음의 뒤꽁무니라도 붙들고 싶어
새파란 젊은 여성이 꽃피울 때는 손톱 발톱은 기본 
까만 머리를 흰머리로 염색하는 것은 보지 못했어
나는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어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묶을 수는 없는 건 알아
백발의 발작이라 하지 말라
젊음의 동경이야, 욕망이야 
검은 머리는 산뜻한 시간이 고여 있어
그로부터 의욕이 발산하거든
오늘 하얀 날에 염색하고부터 먹구름이 낀다
가뭄 땅을 적실 비 내려 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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