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12

지하도 계단의 생불

인보 2012. 11. 27. 15:45


 

  
지하도 계단의 생불
호 당  2012.11.27
차디찬 돌계단을 칼바람이 휩쓸어도
바삭거리는 나무 이파리 하나
그 계단에 찰싹 붙어있다
생의 뒷골목에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은 낡은 건전지 같은 것이
쓰레기통에 버려도 아깝지 않은 
이파리 하나
눈을 크게 더 거시적으로 보면 
전생에서 보낸 생불이다
손을 치켜든 것은 보살의 손일까
쨍그랑 시주 통에 엽전이 뒹군다
발걸음 소리 끊이지 않아도
쨍그랑 소리는 이따금
시주에는 인색한 것일까
종일 계단에 붙은 마른 이파리에서
생불이든 석불이든 형체를 지니고
육신만 녹슬었을 뿐인데 누가 공양할까
이승의 눈망울이 눈을 뜨지 못해
생불인 줄 몰랐어
공양은 헛 염불이라서
스치는 뒷모습을 탓하지 않는다
전생에서 보낸 생불을 
이승의 눈동자가 알아챈 이 없어
내통을 못했기 때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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