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4

부랭이

인보 2024. 3. 14. 12:26

부랭이/호당/  2024.3.14

이름처럼 크게 불어나지 않은 골에
목성이 주름 잡았던 촌락에는 별별 
땅 이름이 있다
두루봉 똥그랑봉 뫼봉 재짓제 뒷제
활개미제 먹골 굴양골 밋골 짐막골 쉰골 
아랫마을 솔모랭이 또뭣 있지만 
다 열거하지 않는다
여기에 자리 잡았지만 냇물은 항상 메말라 
한 참 내려가야 냇바닥 말라 웅덩이 물 조금
수 답이 있고 천수답이 더 많아 그해 흉풍년은
하늘에 달렸다
풍년들고 뱃살을 줄이고 흉년들어 더 줄이고
일본말에 멍텅구리라는 야유에 배기다 못해 
학교는 안 가고 소먹이고 땔감 나무 지게에 지고 
호미 들고 차라리 마음 편했다
해방이란 것 뭐 어린 것들이 그냥 덩달아 만세 
부르고 
그것보다 참혹한 6.25 때 의용군에 
끌려가지 않은 요행
잠간 동안 공산 치하에 은신처는 산
부랭이 골짜기는 피해 없이 잘 견뎌 냈다
잿더미 헤집고 그 위에 꽃 피워낸 지금
부랭이 골에 지방자치의 명소 꾸미기 
관광객 불러 모으기 바람이 태풍처럼 불자 
부랭이 골은 낯선 얼굴이 차지했다
목성은 풍기박산 되자 입구를 지키는 
동구 느티나무는 빈사 상태에서 앓고 있다
별별 땅이름은 지하로 스며들고 영혼은
하늘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부랭이 골의 목성은 조상에 대한 면목 없어
이웃 동네 사람의 눈총도 따가워 아무 소리 없다
빙빙 돌리다가 후려 처 소리내는 새 쫓는 파대
아무리 돌려봐도 소리 나지 않는다
부랭이 골은 사라지고 조상은 지하에서 나무라듯 
애통할 것이며 내 정서는 묻히지 않아 문득문득
꼬리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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