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판을 엿보다
호 당 2010.7.11
나는 태어날 때부터 굶주림을 배웠다
캄캄한 밤은 좀처럼 밝아오지 않고
바다 건너온 시린 칼날만 번득이는 때였다
얼었던 대지는 녹고 여명의 햇살
받았을지라도 메마른 땅에서
뿌리내리고서 비틀어지고
배배꼬이고 결이 어긋나버린
자작나무로 커왔다
자작나무의 물관으로 흐린 물로 채워
피워낸 이파리까지 바람 부는 대로
흔들지 못하고 거역했다
이 무렵 해인사를 찾고 팔만대장경판을
보고는 마음을 돌려 고승에게 몸을 맡겼다
겉은 목욕하면 깨끗해지지
속은 마음을 닦아야지
비틀어진 나무와 같은 나를 다듬으려
수련에 들어갔다
짠 해수에 잠기기 몇 해를 맘속으로부터
박힌 옹이나 잡것을 걸러내고 추위와 더위에
몸을 씻고 단련하여 단단한 재질로 익어가는
나를 자작나무 목판처럼 대패로 밀어
반들거리게 다듬어 주었다
잡티를 걸러낸 텅 빈 머리에 팔만대장경에
실린 法句를 밀어 넣었다
늙어버린 자작나무 머리통에 팔만 대장경판이
가득 새겨 놓은 것 같다
바르게 키워낸 자작나무는
대장경판의 곁에서 그늘을 드리워 보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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