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를 쓰려고 2012.6.27
호 당 2012.6.27
모국어의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언어의 배아를
싹 틔워 평범한 가지에 그런대로 잎은 피울 수
있었다
넓은 잎은 배우지 않아 피울 수 없고 문자의 눈은
얼음 속에 갇혀 문맹으로 잠들고 말았다
이웃나무들은 넓은 잎과 굵은 꽃 메아리를
펼쳐내는데 나는 보고, 듣고, 쉽고, 엷은 이파리는
피우지만 그려내지 못하여 아킬레스건으로 숨겨왔다
허울은 버젓한데 누가 건드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늙은 나무도 젊은 나무들과 함께 노래하며 살자면
내 잠든 연필을 깨워 문자의 눈을 싹 틔워야
하겠는 마음이 생겼다
큰 맘 먹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 흑판에 매단
모국어의 줄기를 붙잡고 연필로 그려댔다
또렷이 밝혀오는 연필 자국에
“가.자”
얼마나 더 매달려야 서투른 음정을 바로잡고
눈을 떠서 연필을 휘갈길까
늦게 들어선 것이 후회되지만 당당하게
연필을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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