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14

고목의 그늘

인보 2014. 8. 8. 16:44


 

 
고목의 그늘호 당    2014.8.8
나무 밑에 떨어진 이파리들은 모두 한두 군데 
구멍을 때웠거나 때우는 흔적이 있다
짙게 내린 그늘에 검버섯과 골판지는 
복지를 누리고 있는 줄 알기나 하는지
고목의 그늘은 늙은 이파리의 요람이지
못 쓸 닭은 편히 물 마실 곳은 별로 없다
어디 간들 반겨 줄 곳도 드물다 
무료급식에 줄서기랑 무료한 시간을 공원의 벤치를
차지하려는 이는 시들은 이파리로 재촉하는 짓
즐기고 새기는 메뉴는 많아 맛보려는 이는 제법
묵은 이파리를 오래 지탱하겠으나 그늘을 끌어
두르고 점찍는 시간만 기다리는 이파리를 보면 
누렇게 떠서 유난히 골이 깊다
요람은 아기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지
편히 쉬고 말을 뿌리고 주워담고 
웃음 다발 흩어도 좋은 곳 
한가락 뽑아내도 좋은 곳
똥오줌 가릴 줄 알고 있으면 걱정 안 해도 돼
자신을 시들어가는 이파리라 생각 말라
요람을 안겨주면 기꺼이 즐겨야지
그늘을 짊어지고 뒤돌아가는 이파리
한 점찍고 잎맥에 수분을 밀어 올리고
여름 바람이 등을 밀어내면 혹시나
며느리 눈치 살피느라 어둠을 바르고 든다
아니면 짝 잃은 둥지는 외로운 문고리를 당긴다
그늘이 사라지면 고목은 적막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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