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한 권 엮다/호당/ 2021.10.4
누구나 오래 살면 오래된
내용물을 담은 추억 한 권 엮는다
문밖 나오려 냉방에서
퀴퀴한 곰팡이 냄새나는
책벌레가 쌀벌레를 먹고 지냈다
문밖은 서로 경쟁하는 곳
같이 출발해도 몸무게 가벼워
중간쯤에서 바깥에 대한
페이지를 엮어 무게를 늘렸다
장소는 여러 번 옮기며
내 맘의 무게를 페이지로 늘렸다
시장경제를 눈뜨게 되고부터
우물 안이 도약의 근원이 되었다
내가 엮어낸 페이지
누구 하나 밑줄 치지 않았지만
나만 충실했다 자부한다
혹시 유식한 자 읽으면
요약하거나 밑줄 칠 줄 알 것이다
나는 경전을 읽고 퇴역 장병처럼
자기를 닦고
오래된 책을 수정하거나
개정판 따위는 없다
다만 초판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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