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그늘
호 당 2012.8.31
한 때
그녀와 숨바꼭질하던
은행나무에 갔지요
열매도 맺지 못하는 은행나무는
우두커니 그늘만 드리우고 있고
숨던 골목이랑 골방을 샅샅이
훑어보니 늙은 세월을 많이
두르고 있었어요
골방문을 열었더니 묵향을 쏟아내고
화선지는 묵즙을 받아먹고 있었지요
그것은 세월을 받아먹고 있었지요
시든 풀이 연신 분무기로 물을 뿌려
생생하게 살리려는 모습에 상심에
찼거든요
숨바꼭질하던 그녀는 어디 갔지
그늘만 쬐고 시들어가는 풀꽃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꼈어요
세월은 흘려도 몸과 맘은 머물러
활발히 펼쳐 내야죠
서리 맞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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