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갈다
호 당 2013.10.16
벼루에 말간 맹물을 붓고 먹을 간다
나는 세월을 갈고 인생을 갈고
마음을 간다
간다는 것은 마찰이다
마찰에는 열과 내 희열을 끌어
진한 검은 향으로 이끌어낸다
새카만 굴뚝에서 그을음을 해맑은 알갱이로
모아 녹아낸 짙은 내 향을 얻는다
더 진할수록 내 진수의 향을 울어나서
내 얼굴이 내 마음이 투영된다
먹을 간다, 서두르지 않고 순리에 따라
내 마음을 심고 검은 속에 참의 마음이
솟는 그런 글씨를 쓰게 해달라 한다
사람들은 근묵자는 흑이 된다는데
구린내 사람이면 그럴 수 있겠지만
내게 오라 내 따뜻한 마음에 짙은
묵향으로 너의 검은 마음에 향의 꽃
피게 하겠다
먹을 간다, 세월을 간다
갈수록 인생의 요철이 갈린다
한 차례 갈아 놓은 먹물엔 내 인생의
깊은 숨결이 어린다
검고 윤기 흐르는 일필은 살아 생동한다
마음을 담아 먹을 간다
깊은 수양의 늪으로 잠겨
내 인생을 갈고 세월을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