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0

내 시집

인보 2020. 12. 11. 17:05

내 시집 /호당.  2020.12.11
내가 이만큼 살아온 것은
시대의 조류도 있겠지만
내 몸에 한사코 매달린 이끼를
내 힘으로 훑어내고 천천히
세월을 씹어 삼키는 
무엇인가 있을 힘이라 보겠다
아무도 눈여겨 주지 않은
시법을 펼쳐 놓은들
이름을 공중에 매단 적 없는
밋밋한 시어를 즐겨 읽거나
서표를 끼우거나 할 것인가
좀 무게 나가는 삶의 
지침이라도 제시한다면
눈여겨 주지 않을까
후미진 골짜기에서 피워낸
무명초 같은 시집을 
난삽한 시어만 끌어모은 것을
누가 밑줄이라도 치겠는가
사는 게 거기서 거기다
펼친 시집에는 이름값이 
깊게 배겨 있는 것만 찾는 이들
그냥 수만 권의 시집 속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고만 생각하라
야생초라 생각하면 할 일 다 할 뿐 
다만 눈을 끌어 모으지 않았을 뿐이다
남의 시를 읽거나 슬쩍 빌리거나
차압하거나 하여 시집을 펼치려는 
삶이 이만큼 견딘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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