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3 417

하지를 지난

하지를 지난 /호당/2023.9.14 밤의 안락이 가장 짧은 아쉬움 하품 연달아 하면서 백주에서 안락을 기다림이 가장 길어 지친다 네가 불침을 들고 가장 가까이서 불 수지침을 놓는다 그냥 화끈하면서 온몸 무안당한 듯 얼굴부터 붉어진다 너를 보낸 지 한 달 밤의 안락은 조금 길어졌지만 백주에 앗 뜨거워 소리는 무딘 발뒤꿈치에서 시작한다 열대야는 북극 오로라보다 더 뜨거운 풍경이다 길면 짧아지고 짧아지면 길어지는 혹과 백의 줄다리기

자작글-023 2023.09.14

무간 지옥은 싫다

無間地獄은 싫다/호당/ 2023.9.14 사후 하늘을 선망하고 무간지옥을 극기한다 *무간에 빠지고 싶지 않다는 백양나무 발발 떠는 이파리가 온몸을 떨게 하는 발레 나무는 가엽기 그지없다 바르르 울리는 소리 지옥 빠지기 싫다는 울림 붉은 물이 부글부글 끓는 지옥 천은 간극이 없어 고통이 고통을 삼켜 희열이 용솟음한다 밤새울 스님은 초조대장경 읽는 소리 얼마나 처량한가 무간을 빠지기 싫은 스님은 그렇다 치고 민초는 땅 깊이 뿌리내리기에 술수 부린 자의 무간지옥은 어디서 끓고 있을까 *불교 팔열지옥의 하나

자작글-023 2023.09.14

시인

시인 /호당/ 2023.9.14그 흔하디흔한 시인들내가 시인이요어깨 으쓱 할 위치도 아니고쳐다보는 이도 없다수상한 비유나 은유나 상징들아무렇지 않게 집어넣어 시인의 길을 미로로 만들어 버린다장인정신으로 멋진 연금술에 빼어난 보도는 일간지에 등재방방곡곡 쏘다닌다무명 가수 설움처럼무명 시인밤늦도록 추고 推敲 추고 하다가퇴고 퇴고 퇴고끝내 찢어버린다내가 시인이라고 자조한다

자작글-023 2023.09.14

무임승차권

무임승차권 /호당/ 2023.9.13 배 줄인 세대가 오래 살아있다 이 세대에 준 복지 맘껏 쏘다니란다 (대구광역시) 건강하게 더 많이 걸으려니 관절의 삐걱 소리 마음 쓰인다 무임으로 하늘 열차 실려 하늘 멀리 조망하고 홈플러스에 북적대는 사람 구경 눈 쇼핑 삶의 각축을 실감한다 33년간 공을 쏟아부은 샘 하나 매달 25일 되면 짤랑거림에 감사한다 몇백 년 묵은 나무는 대접받는 보호수가 된다 오래 살아 보호수처럼 무임승차권 마패 하나로 보호받는다

자작글-023 2023.09.13

스마트폰

스마트폰 /호당/ 2023.9.12 우리 아파트 곁에 동천공원이 있다 지금 시각 오후 5시 무렵 한풀 꺾인 더위 섭씨 32도 벤치랑 그늘은 여인들로 채우고 가운데 어린이놀이터는 재잘대는 소리로 채운다 톡.톡 눈망울 뱅글뱅글 팝콘이 튀고 무아지경 아기 업은 새색시 유모차 끄는 새엄마 톡.톡 아기에게 사랑 잉걸 튄다 길 걸으면서 톡.톡 청소년의 희망이 튄다 손에손에 스마트폰 톡.톡 이건 삶의 생기가 튄다

자작글-023 2023.09.12

숙맥

숙맥 菽麥 //호당/ 2023.9.9 쓸모 있는 나무는 재목 되어 베고 쓸모없는 나무는 타고 난 수명을 누린다* 많은 나무 중 쓸모없는 나무 한 그루 오래 살다 보니 밤꽃 향기 퍼져 맘껏 맡을 때 가장 왕성한 적도 있었다 향기 지자 콩과 보리가 한 솥에서 서로 잘났다고 아웅다웅한다 숙맥을 알아차린 것은 쓸모없는 나무가 오래 산다는 것을 느낄 때다 숙맥을 감각으로만 알아차린 청맹과니가 시를 쓴다고 밤잠을 설치니 수명을 누린다 *장자 2편 ‘산목’에서

자작글-023 2023.09.09

살아 있음에

살아있음에/호당/ 2023.9.8 태어날 때부터 약한 뼈다귀는 질긴 박달나무 같은 깡다구다 한 번 삽 들었으면 앞만 보고 삽질해 끝장 이루어야 놓는다 그간 태풍이나 한파나 궂은날보다 맑은 날이 더 많아 살맛 난다 저녁노을 속으로 새들 둥지 찾아간다 붙박이 둥지에서 상 차려 입맛 챙기며 키 톡톡 쳐 희한한 세상을 즐긴다 약한 뼈다귀로 살아있음에 깡다구 하나로 세월을 건넌다

자작글-023 2023.09.08

명륜동 자취방

명륜동 자취방/호당/ 2023.9.7 코딱지 같은 좁은 방 겨울 군불은 엄두도 못 냈지 고향이라는 명분 지닌 손 시려 발 시려 호호 불던 그 어린 입술들 긴긴밤 자취 양식 몇 줌 뽀득뽀득 씹으며 깔깔하던 아이들 어디로 갔나 분필 잡고부터 앞만 보고 달리다가 이만큼 늙어졌다 무위고를 씹으며 시곗바늘 거꾸로 돌려본다 명륜동 자취방을 기억하는가 아니면 다른 세계에서 그 모진 것들 자조 自嘲하고 있을까 시리디시린 추억 한 움큼

자작글-023 2023.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