場에 가는 길에 만난 사돈
- 조정래 -
사돈끼리 저만치 서애선생이
말년에 초가삼간을 지어 살았던
정승골티에서 마을버스가
시우실 할매하고 구담할매
단 두 명만 태우고
은절바위 산 아래로 휘굽청둘렁청
거리면서 읍내로 가는데,
오치골에 들어서자
저만치서 시우실 할매 안사돈
너리티 할매가 당당걸음으로
산길을 내리오면서,
"아이고 운전수요! 쪼매마 기다리소.
내 퍼뜩 감시더"
그러자 버스기사가 차를 세워
기다렸다가 너리티 할매를 태웠다.
밥뿌제에 영감 옷 챙기고
약으로 끓인 조당죽을 들어서
숨이 찬 너리티 할매는
차에 오르면서
"아이고 숨매키 죽겠니더 "
하셨다.
할매가 차에 오르자
시우실 할매가
"이기 누구잇껴? 안사돈 아잇껴?"
"맛니더, 오랜만잇씨더
그간 별고 없언닛껴?"
"사능기 맨날 글리더"
"추분데 이키 새북부터
어디 가시닛껴?"
"성소병원 가니더"
"우째 바깥사돈한테 먼 일 있닛겨?
지난 파수에 자아 갔다가
핀찬타는 이야기는 들었니더만"
"인자 고마 오줌똥을 못 가리니더"
"남 모타리씨더, 글키 아프잇껴?
지난 가을에 서숙 조깝데기
털어가 자 오신 거 봤을 땐
쨍쨍하시더만"
너리티 할매가
긴 한숨을 쉬면서
"하마 밍밭에
배차뿌래이 캘 때부터
숨이 차가 지게도 못지더이
고마 섣달 지나이
절키 아프이더"
"올해 바깥사돈이 구십 줄
들어섯잔닛겨?"
"클케 됫니더,
안사돈은 올해 얼마잇겨?
내대면 두살 우 아잇시껴?"
"우얘딩게 인자 지는 나이도
가물가물하니더, 영감 둘눕고나이
나도 왓다갓다 캐야 되고 아직
가을 씨껍데기도 안 턴게 만코
가리늦게 골물에 몬 살씨더"
"인천에 구서방은 댕기갔닛겨?"
"아바이 아프다카마 맹
내리오겠지만 질바닥에
돈만 버리능거라
고마 영감 숨넘어갈 때나 부르지
기별 안할라 카니더, 지도
자식 키운다꼬 힘든게...
안사돈 혹 며늘이한테
전화 오더라도
일체 숭구소!"
시우실 할매 둘째 딸이
너리티 할매 맏며느리고
인천에 산다.
"그케도 어런이 저리 핀찬은데
왔다가야 도리지 안 갈춧타가 덜컹
시상 버리시면 우짤랏고 그카닛껴,
내가 기별 함시더"
"아이고 뭐 할라꼬요. 인자 쪼매춤만
있으마 설알이고, 그때 올 낀데.
안사돈 딸내미한테 고마
모른척 하시소.
그게 안 날 니껴?"
“말이 부모지 우리메이는 없는
돌나덜 땅에 소출은 없고
새끼는 줄줄이 달아나가
해 준기 토란 한 뿌래이도 없능기
평생 가심이 아픈데 까짓거
영감바라지는 지가 혼자해도
아무찬으이더... 그카다가 할바이
죽으마 고마 나도 고 담날
죽었뿌만 하니더!"
"아이고 안사돈은 바깥사돈이 글키
조우이껴? 바로 뒤따러가게!"
"조코말고도 없니더.
장사치룰라카마 시방 2천만원도
더 든다카이, 자식들한테
내사 해준 거도 없는 모지래기
어마이 아잇껴, 그카이 우리메이
고마 줄초상하마 사는 자식들
장사 돈 아끼고 울매나
좋은 일이이껴!“
"그케도 그런 맴 본시 먹지 마소.
사는 목숨에 거미줄 치는
시월은 아이씨더~
나도 사는데...
안 그르시이껴?“
"내사 9남매 전부, 아즉까정
번듯한 지 집도 못 사고
절키 사능기 쪼치가미이 사니
맴이 다 타고,
더 탈 꺼도 없니더만
장사 치루는 게 암만 애끼해도
천만원도 더 들낀데 한 걱정이씨더!“
그러고는 두 할매 동시에
땅이 꺼지라고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어느덧 버스는 돌고개를 넘어
밤실 운보천을 건너고
또 호호 늙은 할매
한 분을 태웠다.
하늘에서는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 어주자(조정래)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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