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0 474

거미

거미 호당 2020.8.10 내가 눈에 잘 띄지 않는 은실로 짠 그물망 하나 던지고 숨어 끈질긴 기다림이 내 일이다 허공 한 점 키 큰 나무 곁을 길목으로 정한 것은 날개들의 행로가 있을 법하기 때문 어부는 그물망을 걷지만 나야 걷는 일보다 걸린 날개 더 칭칭 묶는 일이다 내 삶의 명줄이 여기서 얻는다 낚시꾼은 기다림이 수양의 덕목으로 친다지 나도 끈질긴 기다림과 망보기도 같은 반열에 올리면 안 될까.

자작글-020 2020.08.10

상처난 감자

상처 난 감자 /호당.2020.8.8 내 마음 맘껏 펼치고 자라던 마을은 우리 일족으로 서로 겨루면서 몸을 키웠다 어릴 때 홀라당 벗고 서로 바라보며 깔깔거리기도 했던 시절 꿈같이 지나 어엿한 처녀의 몸으로 꿈도 많았지 어정어정 세월은 지나 햇볕도 더는 너희에 기는 필요 없다 선언하자 내 모체는 시들시들 힘을 잃고 주인이 뾰족한 호미 끝으로 달려들잖니 왜 나만 상처를 입혀놓았단 말인가 진물이 흘러도 본척만척해 밉다 다행히 내 대를 이을 움푹한 곳에 내 정기의 전부를 모였으니 공들이면 내 한 몸 죽어도 내 대를 이을 수 있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몸이 바쳐 지킬 거야 생명은 대를 잇는다는 명제를 잊을 수 없지.

자작글-020 2020.08.08

장마처럼

장마처럼 /호당.2020.8.8 봄날이 후둑후둑 지나간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장마가 시작할 때 반기는 소리가 끝내 원성과 곡성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서도 안된다 원성은 내 잘못의 일부를 부르짖는 자학이다 단단한 콘크리트 벽이 장마에 쓰러졌다 봐라, 네가 빈둥빈둥한 결과가 아니냐 절벽을 뛰어내릴 듯한 기백으로 버텨봤느냐 옹벽을 무너뜨릴 그런 힘 쏟아 봤더냐 숲을 이룬 뿌리들 잠시 손 놓아 우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서로 부둥켜안고 단단히 맹세하며 마음 놓지 말자 했잖아 시간이 흐를수록 허튼 마음이 스며들어 엮인 뿌리들이 그만 놓고 마음도 느슨했을 때 재앙을 얻은 것이다 그래도 너는 빈둥거릴 텐가 세찬 빗줄기와 세찬 바람에 대항할 수 있는 튼튼한 강둑은 네 뚝심이다 긴 장마처럼 작당 부리지 말고 고운 심성으로 대..

자작글-020 2020.08.08

볼펜

볼펜 ;호당. 2020.8.8 행복이란 맘 먹기 아닌가 내가 미친 여인 손에 잡히면 줄똥 아닌 뒤죽박죽 미친개 날뛰듯 마음 깔린다 예쁜 처녀는 향기까지 빨아들여 그의 맘 충분히 헤아릴 수 있지 또박또박 바르게 붉게 토해준다 헤픈 여인에는 여기 찔끔 저기 찔끔 온갖 가시덤불 찔려 찌린똥 식겁똥 불똥 피똥 끝내 줄똥 쏴다가 뚝 멈추면 나도 깊은 잠 든답니다 누구 손에 잡힌다는 것만 행복이지 운전할 나름 곧이곧대로 맘 쏟아준다.

자작글-020 2020.08.08

허약한 체질

허약한 체질 호당. 2020.8.7 체질적으로 허약했다 가난의 끝에 맺힌 과일처럼 보릿고개는 높았으니까 충실하게 자란다는 것은 꿈이다 허약한 나날은 가뭄만 계속되고 옆 짝은 억센 주먹으로 찝쩍거려도 당할 힘이 없어 요샛말로 괴롭힘이다 성장할수록 안으로 오그라지는 주먹은 작았다 똥배는 불쑥 내밀수록 힘이다 햇볕은 변하지 않았으나 쬐는 방식이 달라지자 허약한 나날은 풍성해졌다 머리는 위에서 주먹은 아래로 나의 허약은 머리로 보상했다.

자작글-020 2020.08.07

벽이있다

벽 / 호당. 2020.8.7 벽은 나를 보호한다 아냐 때로는 나를 막아선다 벽이 좋은 벗이 되었으면 했다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막았다면 장애물인 벽이다 궁리해보자 벽을 달래면 되는 일이 있고 눈을 피해 돌아가는 방법도 있다 그놈의 밑뿌리를 몰래 뚫어보고 어쩜 배우지도 않았는데 예상해 준 말 좋아 고맙다 악보를 구해 눈알에 박아 넣었다 적중했다 벽은 맥없이 무너졌다 벽이 가렸다고 좌절하지 말라.

자작글-020 2020.08.07

라면 끓이기

라면 끓이기. 호당. 2020.8.6 화살표까지 개방하라 했다 옳지 그녀의 치마끈부터 풀어주고 아랫도리를 열어놓았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구미에 침이 흐른다 이미 물은 용솟음치고 맥박이 뛰고 호흡이 거칠다 개방하려면 확실히 열어주어야지 온몸 그대로 보드라운 면발로 매끄럽다 위에서 아래로 훑어간다 꼬불꼬불한 머리카락 얼어붙은 듯한 몸 뜨거운 애무에 그만 확확 풀려나 몸부림치는 듯하다 수프 대용은 달콤한 입맞춤 확확 뿌려주었다 온몸으로 스며드는 전율 4분의 시간은 교과서적이다 나의 조리법은 천천히 달구어 맛을 끌어내는 조리법 바글바글 물방울 탁탁 터지는 소리 물방울 터질 때 최고의 음향일 때 벌써 썰물은 빠지기 시작할 차비 스위치를 내릴 준비다.

자작글-020 2020.08.06

저곳

저곳/ 호당. 2020.8.5 저곳 손가락 지시하는 곳만 찾아 가보시라 꽉 채워있네 식탁은 욕망을 채워주고 참 기분 좋네요 쌍쌍이란 말도 좋지요 마주한 얼굴에 사랑이 왔다 갔다 주고받고 어쨌든 꿀물이 흘리고 나야 할 일 마쳤으니 맛으로 즐기지요 저곳 내가 좋아 찾는 곳 침대가 있고 등에 에어컨이 앞에서는 TV가 우리의 냄새가 폭 밴 곳 참 좋지요 저곳 나름일걸요.

자작글-020 2020.08.05

촌뜨기 상경기

촌뜨기 상경기 /호당. 2020.8.4 마음만 먹으면 눈알도 빼 간다는 소매치기 서울 시내버스 안 태연한 척 너는 촌닭이야 딱지 붙인 것 네 안의 엽전 이건 식은 죽 먹기야 어리숙한 촌놈에게도 깊은 곳이 있어 밀고 당기고 바람 잡아 혼을 뺀다 환한 달빛에 구멍 뚫고 마치 의사 손 깊숙이 넣어 내장 훑을 듯 잡힌 것 없다 종점에 닿을수록 텅텅 비는 내장 배고픔 느낄 때 움켜잡은 배꼽 아차 배꼽이 찢었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내장은 태연하다 어수룩한 촌놈 아무것도 줄 수 없지 엽전 꾸러미 바위 밑에 겹겹이 까라 놓았거든 촌뜨기 상경치고 통쾌합니다.

자작글-020 2020.08.04

발톱 무좀

발톱 무좀/호당. 2020.8.4 부모로부터 움을 틔울 때 가장 사랑의 단비 듬뿍 받던 것이 성년이 되고 나름대로 독립활동은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았다가 무좀의 늪에서 그만 붙들렸다 어머니는 내 손이 약손이라 말씀하시며 깎아 준 발톱은 이내 자라 푸석돌처럼 하얀 먼지를 아마 버섯 포자 같은 것 날렸을 것이다 엄지발가락에서 가운뎃발가락으로 옮기는 걸 보면 이놈들 기를 확장하고 있었다 잘라낸들 다시 솟고 소염은 끊임없어 밤잠을 설치게 했다 살충제보다 더 강력한 투약으로 항복을 받아냈다 잠잠한 줄 알았지 그간 깊숙이 내려앉아 망을 본 것이다 제방이 무너지면 금방 복구하듯 도마뱀 꼬리 잘려도 금방 재생하듯 고개 쳐들지 않나 세상에 이런 끈질긴 성질이면 이루지 못하는 것 있겠나 무좀은 없애야 하고 끈질긴 성질..

자작글-020 2020.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