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0 474

싱싱한 미역처럼

싱싱한 미역처럼 /호당 2020.8.19 솔향기 아래 근무는 잣송이 송이버섯 머루 다래도 재미있었지만 파도를 끼고 일하고 싶었다 파도가 사납게 부두를 내리치고 바닷바람이 따귀를 후려칠 때 객지 바람 텃세를 톡톡히 실감했다 살붙이고 좋은 것만 찾자 바닷가 따개비처럼 찰싹 붙었다 바위에 붙어 미역처럼 일렁이며 키워 갔다 파도를 타고 바닷가까지 밀려온 미역 이파리를 씹으며 낯선 바람을 익혀냈다 바다향이 코를 적신다 팔딱거리는 생도 쉽게 체념하는 바닷고기 적응도 포기도 삶의 방식이라 생각했다 억센 바다 기질이 연약한 나에게 힘이 된다 싱싱한 미역이파리처럼 살겠다.

자작글-020 2020.08.19

후미진 계곡

후미진 계곡/호당. 2020.8.18 멀리 또는 가까이 있거나를 따질 것이 아닌 분신이 훑고 지난 다음 이때쯤 정이 그리울 때면 여러 풀꽃 가운데 갈대는 시들시들할 때 짙은 수액을 꾹꾹 밀어 넣어준다 삶의 뿌리는 더는 뻗을 수 없고 범위만큼 모든 진을 훑고 생을 이어 간다 백발이 짙어진 골짜기일수록 후미져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계곡은 바싹바싹 말라가고 적막을 깨트리는 산비둘기 한 쌍 노닐다 간들 위로되지 않는다 폭염에 비틀거리는데 링거 한 대씩 눌러 주는 마음 불끈 힘이 솟는다 멀리 있거나 가까이 서가 아니라 너의 진실한 향기로 이 계곡을 맑은 물 흐르게 했구나 나도 마음 깊이서 이 한마디 고맙다.

자작글-020 2020.08.18

폭염 이기기

폭염 이기기/호당. 2020.8.17 연일 폭염에 절인 배추포기처럼 된 몸을 다시 싱싱하게 되돌릴 수 있을까 찬물에 헹구고 헹구고 축 늘어진 어깨 피곤한 마음마저 절였으면 팔팔하기 어려워 더욱 식욕마저 잃어버리면 모세혈관을 흐르는 나른한 혈류가 폭염 후유증을 증폭한다 냉수를 흘려보낸 후 폭염이 엉거주춤 구름에 싸일 사이 시트에 억지로 앉히고 에어컨 출력 최대로, 핸들을 꺾어 미각 밀림지대에 하차했다 잃어버린 맛은 시각과 촉각을 널려 펼친다 더위 먹은 호박잎처럼 된 몸 소나기 한차례 풍혈 風穴을 맞고 생기 돋는다 폭염 이기기는 자연에 대항하는 것 내가 피신하고 이열치열도 괜찮다 폭염도 한이 차면 기운이 쇠할 것을.

자작글-020 2020.08.17

거짓과 풍선

거짓과 풍선/호당 2020.8.16 거짓은 바깥에 펼쳐 놓은 누런 딱지가 풍선처럼 둥둥 난다 능청스럽게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성미 본인도 꽤 아슬아슬했을 것 석벽을 기어 올라가려 붙잡고 밟고 간신히 기어오르고 큰 숨 몰아내고 거짓의 표면에 입김으로 감싼다 대체로 거짓을 담지 않은 이는 쉽게 넘어간다 앞과 뒤의 연결고리가 같은 체질이 아니거나 녹슬어 있다 두뇌 회전이 빠른 누가 거짓임을 증명해 보인다 몇 분 후 아니 하루 후면 들통날 일을 거짓은 말라 오그라져 마른 가랑잎처럼 바람 꺼진 풍선처럼 바삭바삭 부서진다 그의 낯은 철면피 바르게 살라.

자작글-020 2020.08.16

만약 백만 원이 있다면

만약 백만 원이 있다면/ 호당/ 2020.8.15 초봉이 헐렁한 봉투일 때 백만 원이 신기루 같고 낱말도 쉽게 오르내리지 않았다 땅 한 뼘 없어도 내 품에 가뭄 걱정 연못이라도 장만하고 물 가두면 새끼도 칠 수 있겠다 백만 원 만들기 연못에 15년 작정 탑 쌓기로 했다 어둠이 자꾸 밝아질수록 고층 건물은 죽순처럼 솟는데 환이 원으로 곤두박질하고 내 희망 탑은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실속 없는 허수 뭉치를 쌓은 것 끝내 재봉틀 한 대가 연못 둑에서 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쉽게 나오는 백만 원 천만 원 억만 원 억 억 소리 억장 무너지는 소리 예사다.

자작글-020 2020.08.16

저물 무렵

저물 무렵 /호당. 2020.8.14 오늘이 저물 무렵 걷기 좋은 시간 허리 꾸부리고 공원 쪽으로 걷는 노인 꽃대 빳빳이 세워 꽃향기 쫓던 시절 훌쩍 지나버렸지 그 코, 그 허리, 그 힘, 모두 문드러진 듯하다 그때 싱싱한 살 내음 맡으며 깔깔하던 흔적도 그들도 분명 없다 모두 낯선 얼굴뿐 연연하지 말라 허리 굽어도 발자국만 열심히 찍으면 어둠이 쉽게 오지 않을 겁니다 행복입니다 오늘 저물 무렵이 인생 저물 무렵은 빨리 오지 않을 것입니다.

자작글-020 2020.08.15

서툰 사랑 -꽃-

서툰 사랑 - 꽃 - /호당. 2020.8.15 튤립 사스테이지 그 빨강 노랑 얼굴 순백의 얼굴 네 얼굴 보고 난 후 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솔바람 곁에 뿌린 솔향기 처럼 어찌 잊으랴 너희 같이 노닐다 훌쩍 떠난 뒤 못다 아쉬워 환상에 젖어 있을 때 네가 남긴 영체 이것이 내 꿈을 피울 환상임을 깨닫고 화분에 심고 맘을 듬뿍듬뿍 쏟아냈다 반가운 듯 푸른 입술 뾰족 내밀어 주었다 그래그래 내 그린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구나 그럴수록 아낌없이 마음 쏟았다 사랑은 과해도 지나침이 없다는데 어찌하여 너는 취해 쓰러지는가 선현의 말씀 이제야 깨닫는가 어리석은 나 환상에 파묻힐 때가 더 즐거웠다.

자작글-020 2020.08.15

침구 노점상

침구 노점상.호당 . 2020.8.13 강한 햇볕이 불쾌지수 올린다 인도 보드블록 한 모퉁이 침구류 늘어놓고 내 호구 *호구 糊口 력 끌어 올리려 한다 한여름 배짱이 팔자 좋군 땡볕 길바닥에 내 맘 널어놓고 피땀 줄줄 흘린다 오가는 사람들 내 가슴에 물 좀 뿌려다오 매정한 물은 비켜 흘러가고 삶의 밑천 깔아 놓고 애끓는 속 꼬르륵 속 탄다, 속 풍요를 굴리는 자동차는 시원하게 흐르는데 내 삶의 밑바닥이 꽉 막혀 푸석푸석해진다. *입에 풀칠한다는 뜻으로, 겨우 끼니를 이어감을 이르는 말

자작글-020 2020.08.14

크레바스

크레바스 crevasse/ 호당. 2020.9.12 태생이 쌀쌀한 체형인데 알고 보면 따뜻이 감싸주는 한 면이 있다 내 마음 꽝꽝 얼어붙어 냉정이란 말 한구석을 녹여주고 있음을 아는가 내 심연의 *크레바스는 따뜻한 맘이 녹아 흐른단다 탐험가 더욱 조심할 얼음들판의 틈은 올무나 덫이 아니다 개미를 잡으려는 개미귀신처럼 작정한 함정이 아니다 꽁꽁한 내 체형에도 심연에는 따뜻한 맘 흘러 그것 깊게 파인 것 따뜻한 마음의 통로다 나 하얀 마음이다 올가미 함정이라는 터무니없는 말 하지 말라 크레바스는 얼음 지대에서 그은 따뜻한 심연의 한 획이다 탐구자들에 내 맘 살피려 조심스럽게 내려다보면 내 맘 알아차릴 것이다. *크레바스(crevasse)는 빙하나 눈 골짜기에 형성된 깊은 균열이다.

자작글-020 2020.08.12

E + P = O

E + P = O.호당. 2020.8.11 나의 삶이 나날이 사랑 밭에 뾰족뾰족 움트는 푸른 생명과 같습니다 내 입 밖으로 내뱉는 모음과 자음을 조합하면 사건이 됩니다 국물을 오지랖에 흘려 아내의 핀잔이 사랑 밭에 거름 뿌리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냥 가벼운 사건으로 여겨 웃어넘깁니다 바가지 긁으면 달그락 소리뿐이지 옥수수로 하모니카 불어 볼까 점심 한 끼 때워 좋고 설거지 안 해서 좋고 일거리 줄어 당신 좋고 나 좋고 입에서 옥수수자루가 단맛 흘리고 아내의 입가에서 희색이 띱니다 하늘을 선회하던 비둘기는 날개 퍼득거려 함께 콩밭에 내려 콩알 하나 서로 권하는 동안 파도는 찰싹찰싹 뱃전을 치고 그 소리에 장단 맞추면 행복지수는 철썩철썩 불어 꿀물이 줄줄 흐른답니다. 주: 삶에 일어나는 사건(event) 그것..

자작글-020 2020.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