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0 474

태풍전야

태풍 전야 /호당. 2020.9.6 밥 먹은 게 체한 지 목구멍을 밀어 올린다 닥치는 대로 인정사정없는 불한당보다 더한 태풍을 맞다니 내 맘 졸이고 밧줄로 묶고 너트 조이고 못질하고 뒤 도랑 쳐내고 내 옷 단추 지퍼 꼭꼭 잠그고 비껴갔으면 좋을 텐데 제멋대로인 줄 안다 막 휘젓고 뺑뺑이 돌리고 쓸어 훑어버리고 미친개 날뛰듯 앞잡이인 듯 여기 센바람이다 맘 졸인 태풍 전야 창문을 다시 만지작거린다.

자작글-020 2020.09.06

분홍 바늘꽃

분홍 바늘꽃/호당. 2020.9.5 운암지 주변을 앙증맞은 얼굴로 한 무리 지어 일제히 활짝 깔깔 웃는다 그래그래 웃는 네 얼굴 보니 내 시름 쑥 들어간다 한세상 건너는데 어찌 웃음만 있겠나 괴로움 드러내지 않고 웃음으로 태연한 척 나 조금만 괴로우면 얼굴 찌푸리고 아픔을 가족을 들 삶는 짓거리 참을 줄 모르는 분홍바늘꽃보다 못한 사람 나의 괴로움을 속으로 삼켜 환한 얼굴 지으면 서로 보기 좋아하지 않겠니.

자작글-020 2020.09.05

아카시아 나무

아카시아 나무/호당. 2020.9.4 산사태로 무너지면 아카시아 나무를 심어 땜질하는데 우선은 입막음이 나중 미운털이 될 수 있다 아무것이나 먹어 치우는 잡식동물 먹새 마구 뻗어 영역을 넓히거나 뚫고 내뻗고 속속들이 얽어맨다 묘지 근처는 관을 뚫는다는 속설로 배척당하고 반면 아카시아 꽃향기에 취할 겉보기 좋은 것 뒤엔 야금야금 뻗어 자기편만 꿀맛 보게 멋모르고 가까이 덥석 안았다간 어김없이 뾰족한 가시를 보고 만다.

자작글-020 2020.09.05

녹슨 호미 한 자루

녹슨 호미 한 자루 /호당. 2020.9.4 초가 빈집 벽에 녹슨 호미가 내 추억이 걸려 있는 듯 뻐꾹새 지저귀는 골짜기 토박한 밭 뾰족한 호미 끝이 뭉툭했으니 그 세월만큼 뭉툭하고 어두운 세월 그 호미 끝으로 잡풀이란 이름인 풀은 뽑아 명줄 끊었고 나는 손목 허리 부러 질듯 아팠지 호미 끝은 뭉툭 뭉툭 닳았지만 호밋자루와 손이 합작한 물집 만들어 서로 위로하고 빈집 호미는 녹슬었지만 내 어릴 적 추억은 생생합니다.

자작글-020 2020.09.04

삐비(삐기)를 아시나요

삐비(삘기)를 아시나요.호당. 2020.9.3 삐비는 굶주린 배를 채운 요즈음 말로 간식 아니야 8.90대는 아픈 추억이야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지 요새 아이들의 생각 책보자기 어깨 척 둘러메고 한창 봄기운 치솟는 소나무 순 꺾어 솔잎 껍질 벗겨 양손 잡아 하모니카 막 불어대면 시원시원 달달한 물 연거푸 삼키고 텁텁한 물 나는 질긴 껍질 씹어 삼키고 똥구멍 막혀 끙끙거리다가 엄마 손바닥 궁둥이 철썩 냇가 찔레나무 밑동으로 머리 처박다가 가시 찔려도 미끈한 찔레순 꺾어 상큼한 풋 냄새 삼키면 그것만큼 즐거웠으니까 논둑 밭둑 양지 산기슭 삐비 뾰족이 치밀면 쏙쏙 뽑아 껍질 까면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맛 이건 주전부리 아니라고 송구랑 찔레 삐비는 보릿고개 세대의 아픈 추억 풍요세대는 조금이라도 이해할까. 표준말..

자작글-020 2020.09.03

사람 냄새가 그립다

사람 냄새가 그립다/호당. 2020.9.2 코로나 너 때문에 묶인 몸 사람 냄새가 그립다 꽃마다 다른 향기처럼 사람이 풍기는 냄새를 오래 맡지 못해 영상은 머리에 있는데 냄새 맡지 않아 그립다 스치는 냄새는 스쳐라 시끌벅적한 속으로 그런 냄새 맡으면 안 돼 모임을 자제하라는 질병 관리본부의 당부 마음의 거리마저 멀어질까 두렵다 주름 살내 속에서 마음 엮을 때가 그리워 전화벨에 맺힌 음향이 다향 茶香 만큼 진했다 모여야 이루어지는 입술들 엽전 돌아가지 않아 코로나는 아픔만 아닌 무소불위까지 감염자의 신음보다 성한 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드높다 사람 냄새에 멱 감을 풀 pool 장이 점점 멀어져 냄새가 그립다.

자작글-020 2020.09.01

9월에는

9월에는/호당. 2020.9.1 땀 뻘뻘 흘린 보람으로 9월에는 더 익어가는 불끈 힘 실어 맞겠다 나 너 모두 익고 더 가까이 다가가 더 성숙한 맘 주고 싶다 코스모스는 길가서 피고 있다 길 가는 이 기분 좋아지듯 내 가슴에 피워드리고 싶다 그리운 것은 산 넘어 후미진 곳에 있나니 이름 모를 들꽃 향기는 멀리 퍼진다 알아도 몰라도 내 향기 탓할 일 아니지 9월은 나를 더 익어가는 서른 날을 꽉꽉 채워 나가겠다 9월의 여신이여 우리 모두 알차게 익게 하소서.

자작글-020 2020.08.31

빈 공(空)

빈 공(空). 호당. 2020.8.31 빈다는 것이 부정한 생각은 빈 생각이다 빈 하늘 빈집 빈 차 빈 가슴 아직 여유가 있다 넉넉한 마음 언제나 채울 수 있는 여유 내 빈대가리는 꽉꽉 채울 여유로 빡빡 씻어 말린다 빈 공간으로 시맥이 흘러들어 온다고 믿는다 저 서가는 빈 곳이 없으니 더 채울 여유가 없다 내 시는 빈 공간을 두고 채워나간다 꽉꽉 채우면 날개 돋아 훨훨 날 것이다 빈 하늘은 파랗다 빈 맘은 거짓이 없다 순수한 맹물이다 빈이 空이 아닌 實이다 아직 비어있어 채울 수 있는 융통성이다.

자작글-020 2020.08.31

근력

근력. 호당 . 2020.8.31 길었다 줄었다 고무줄 탄력 오금 시리도록 긴 세월 밟았으니 내 시를 우려낼 근력도 삐걱거린다 날마다 가뭄 타는 논바닥 몰고 틀 곳 찾아 질퍽해야지 마음 풍성해도 근력은 느슨해 배고프다 불협화음 들어도 그늘 덮인 이 길 밟아 가면 끄트머리 시의 근력이 맺힐지 모질게 달군 아스팔트 열기로 땀범벅이 될지라도 야무지게 팽팽하도록 걸어야 한다 닫힌 문 활짝 여는 날에 시의 뿌리는 근력 얻어 더 깊게 더 멀리 뻗을 것이다 세월은 자꾸 앞으로 다리는 힘 쪽 빠진다.

자작글-020 2020.08.31

마음 졸이다

마음 졸이다 /호당. 2020.8.27 그간 코로나로부터 나를 지키려 침묵 속에 잠겼다가 방-거실-베란다 시계바늘처럼 돌았다 얼굴이나 보자는 전갈에 반가우면서 마음 졸인다 거의 9개월 하늘 열차의 궤도는 변치 않았지만 멀리 가까이선 행성들이 눈 빠끔빠끔 잘 견뎠냐고 깜박거려주었다 거리 두기 결국 滿員 하늘을 여행하는 지상인들 끼리 거리 두고 싶은 마음 하늘까지 뻗은 코로나의 공포 덜커덩 소리 소스라쳐 번쩍 명왕성이란다 지질 탐구는 벌써 여러 번 오늘은 생략하고 조심조심 마스크의 방어력만 믿고 설마설마 마음 졸인 만남.

자작글-020 2020.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