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0 474

침대를 위한

침대를 위한 /호당 . 2020.8.27 밤의 침대는 말랑말랑한 쿠션 침대의 손짓을 등에 메고 딱딱하고 울퉁불퉁 가시덤불을 헤치고 거두고 길 닦는다 깊은 냇물을 허리 굽실거리거나 빳빳한 자세로 건너다 매운바람에 뺨 맞거나 경적에 고막 찡 소리 들어도 헤쳐나갈 내 행로다 내 힘은 침대에 박한 눈빛에서 솟는다 허리 굽혔다 폈다 와이어에 걸리고 톱날에 피 흘리고 우리가 차린 침대를 더 포근하기 위한 퍼포먼스 목줄 밥줄 황금 물 솟는 옹달샘 기다리는 말똥말똥한 눈 S 라인 허리가 된장 뽀글뽀글 식탁이 수저를 받는다 더 안락한 시간에 잠길 온탕 맨몸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 매일 겪는 일 고문이 아니다 왕눈이 독려한다 보너스를 보장한다 침대가 마음 졸여 나를 바라본다 어깨 멜빵이 갈수록 무거워진다.

자작글-020 2020.08.27

노송

노송 /호당. 2020.8.25 푸른 엽록소 철철 넘쳐 처마 끝 낙수 떨어지듯 한 네가 송이가루 이 산 저 산 흩날리던 시절 붉은 장미에 마음 다 주고 꽃피웠던 이 세상 영원한 것은 없다 했다 구멍마다 세는 노송이 몇백 년 버틸 듯한 눈빛이 오만이다 무명초였으면 만족해야지 펼칠 때도 오므릴 때도 아니다 마무리하고 준비할 때다 청송이나 대나무 같은 꿈 접고 태백산 고사목으로 삶을 요약한 사리(관솔 뭉치)쯤은 어떨런가.

자작글-020 2020.08.25

네 뒤를

내 뒤를 호당. 2020.8.25 비틀거리는 나이 방콕은 32도 저녁 무렵 학정 네거리 느티나무 숲에서 매미가 나를 불러냅니다 마스크는 필수이면서도 거치적거린다 아스팔트 열기 확확 덮어씌우면서 내 죄 다그치는 듯 달라붙는다 땀 좔좔 흘리면서 손사래 저었습니다 팔거천이 휘어들며 쏴쏴 죽비 竹篦를 들어 내 죄 고해 같이 흘러가자 합니다 가로등 환히 비추더니 역시 지난 적 허물없느냐고 깜박깜박 다그칩니다 날파리 쏜살같이 내 동공을 맹공하면서 고하라 합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에 바른길 걷겠다는 다짐하니 뒤부터 닦으란다 뒤를 찔끔거릴 만큼 *혼 똥 쌀 만큼 빌었다 얼마나 더 치러야 반듯하게 걸을 수 있을는지. * 야단맞거나 급하거나 할 때 놀라 똥 지린다는 사투리

자작글-020 2020.08.25

옛 사진 한 장

옛 사진 한 장/호당. 2020.8.16 흐릿한 흑백 사진을 눈 부릅뜨고 본다 일가친척이 일제히 나를 겨눈다 귀를 툭툭 털고 들릴 듯 말 듯 옛말에 내 귀는 과거와 현대를 연결 고리가 흐릿했다 눈을 또 비비고 뚫어지게 본다 물에 잠긴 인화지에서 상이 스멀스멀 오다 뚝 멈췄다 할 수 없어 필름을 되감기를 했다 엄마 큰엄마 형수 조카 질녀 일족들 내 눈 입 코 귀와 내통한 말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늘에서 방방곡곡에서 한자리에 모여 침묵한 사진 한 장.

자작글-020 2020.08.24

방안에 콕

방안에 콕/호당. 2020.8.24 찐득찐득 무더위 종일 폭폭 삶는다 당신 옆 슬쩍슬쩍 스친 바람 내 머리카락 올 올 훑고 하루를 돌 돌 말아 냉장고에 넣고 싶은 맘 맘만 종종 걷지 종일 풀무풀무 화악끈 찜통더위 큰 소리 덥다 덥다 더워 에어컨을 코로나는 모깃소리로 조심조심조심 마스크를 종일 티격태격 방 거실 베란다 방 거실 베란다 뺑뺑이 돌다 오늘을 삭이느라 트림 꺼어억 꺽 방안에서 콕 콕 너 때문이야 너 너 널말이야 아니 나 때문이야 나 나 날말이야..

자작글-020 2020.08.24

제8호 태풍 바비

제8호 태풍 바비 Bavi /호당. 2020.8.23 태풍이 온다는 방송이 조전처럼 들린다 180노트(knot)로 밀어 오는데 103노트로 버틴들 먹구름 풀풀 날고 깨진 잔해는 뒹군다 온몸으로 막아낸 막숨은 컥컥 소리 쓰러지는 듯 밀친다 밀린다 노도와 같은 물줄기 어떤 방파제도 견딜 수 있을까 가녀린 손으로 자유롭게 쌓은 제방 시나브로 무너지는 그림자 곧 온대성 저기압으로 변할 기미는 없어 환상에서 살아남을는지.

자작글-020 2020.08.23

팔공산이 부른다

팔공산이 부른다/호당. 2020.8.21 지천에 두고 손짓하는 그를 간다는 마음 미루다 비 온 뒤 죽순처럼 불쑥 나섰다 아름다운 여인 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질 듯 청아한 모습 한 번씩 그의 정기를 받고 싶었다 이랴 이랴 타래 감았다 늦추었다 내 손에 놀아난 4바퀴는 목 타지 않게 잘도 듣는다 익히 알지만 그의 허리는 푸른 힘 불쑥 넘쳐 흘린다 휘감아 돌아들 때 피톤치드는 물론 *옥시토신을 주고받아 내 헐렁한 바짓가랑이는 빳빳이 날 섰다 그녀의 허리를 이리저리 휘감아주었다 저 멀리 푸른 물결이 스멀스멀 밀려 내 앞에서 반겨준다 푸른 치마 휘날리는 끝머리엔 그녀의 정기가 내 가슴으로 스며든다 서늘한 바람 내 뺨을 훑는다 팔공산의 기 듬뿍 받고 오늘이 기운찼다. *oxytocin:동물의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

자작글-020 2020.08.22

이발하기

이발하기 /호당. 2020,8,20 머리카락만 길게 늘여 뜨려 내 허방만 불어난 듯 온갖 허욕 쓸어 담아 쑥쑥 길어졌다 여자 미용사의 快談은 줄줄이 잇는다 시원한 쾌감이 蒸湯에 잠긴 듯 온몸이 풀린다 뭉턱뭉턱 잘린 머리카락 뚝뚝 떨어질 때 내 허방도 밀려났다 시원하고 포근한 봄바람이 전신을 휘감는다 난 그의 입을 촉새라 이름 짓고 의자에 앉는 동안 촉새의 세리나데를 듣는 동안 소극장 일인 무대를 관람한 기분 허방을 처치한 몸이 가볍다. <

자작글-020 2020.08.20

어촌에서

어촌에서/호당. 2020.8.20 주로 초록 물결에 한철 누런 바다만 보고 살다가 파도 소리 듣고 바라본 시야는 맵고 아리고 서늘한 푸름이다 그 길을 하늘처럼 몹시 동경하고 경배했다 여름 바다는 발목까지 시원했고 겨울 바다는 뼛속까지 아리다 따개비는 파도에 얻어맞으면서 미역은 바위에 붙어 흔들거리면서 나도 착 붙어 내 생을 다졌다 흰 거품 뿜으며 밀려왔다 떠나는 사이 콩서리 닭서리 맛보다 싱싱한 횟감이 도마에서 퍼덕이는 동안 입맛도 변했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이 삶이라면 여기까지 온 길이 맵고 쓰릴지라도 따개비처럼 딱 붙어 안착할 수밖에.

자작글-020 2020.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