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우물

우물/호당. 2021.1.24 험한 길가에 허름한 우물 하나 종일 있어도 입 맞추는 이 없다 그렇게 세월을 흘리고 이끼 낀 우물이 햇볕만 가득했다 제 눈에 안경이었나 우물 근처를 빙빙 돌면서 입 맞출 듯 맞출 듯 우물은 찰랑찰랑 덥석 한 모금 마실 듯 말 듯 가장 가까운 연못에서 꼬리만 살랑살랑 반디를 넣어 가슴 젖혔으나 덥석 안기지 않은 물고기였다 그리다, 그리다 이건 아나다, 아니다 우물은 예나 지금이 언제나 그 모양 어디서 물맛이 특이한지

자작글-021 2021.01.24

자양 가는 길

자양 가는 길/호당 . 2021.1.24 호랑이가 나온다는 길 비포장 자갈길 도로 먼지가 자욱이 뿌려도 임을 만나면 감수하고 즐겁기만 하지 그런 고통 없이 있어도 감지덕지한 행복의 길 도로변 백일홍이 먼지 덮어쓰고도 방긋거리며 연분홍 연정을 날리니 위안이라 할까 거기 내 사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 궁둥방아 찧고 허연 먼지 마시고도 그대를 만난다는 그리움에 젖어 이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없지 나를 희생하고 가시덤불이라도 헤쳐가면 가슴 젖혀 안아주는 그대 희망 하나로 즐겁게 가는 것이다 먼지 길 자길 길이 희망의 길이다

자작글-021 2021.01.24

사는 게

사는 게. 호당. 2021.1.22 온 나라가 침묵 속에서 그날그날을 버티고 있다 어디 간들 대화는 없다 이만큼 살아온 나 망구 望九를 바라보며 오늘의 삶이 나는 무엇 했던가 내가 희망하는 것이 있단 말인가 마지막 시집 출판하면 좋겠다 별똥별이 떨어지면서 붉은 금줄을 보이면서 사라진다 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고 내가 남긴 것 시집 한 권이면 만족하겠다 후미진 골짜기 무명초는 꽃피워 주위를 밝게 하고 대를 잇고 사라진다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런 의지도 없다 오늘 삶이 무의미한 거로 생각하면 가소롭다 한군데씩 허물어가는 내 몸 온전히 버티기에 힘에 부친다 당신의 헌신에 나는 행복하다오

자작글-021 2021.01.22

여름 달밤에

여름 달밤에.호당. 2021.1.22 달은 째지게 내리쬔 무논의 벼를 살살 부추겨 사랑을 키우고 있을 무렵 개구리는 사랑 찾기 대회를 열었는지 온 무논을 붉게 물들이고 합창한다 나의 사랑은 어디 있나 건넛마을 순이는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있을까 달빛이 그녀의 창문을 꿰뚫고 비출 텐데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는지 부질없는 생각에 젖어 무논의 개구리 소리는 나의 갈구하는 사랑 병을 부추긴다 여름 달밤은 중천에서 나를 보고 싱긋 웃어준다

자작글-021 2021.01.22

헌팅켑

헌팅켑 .호당. 2021.1.21 대체로 문인들이 헌팅켑을 즐겨 쓴다 머리도 하나의 장식품이라 할까 예쁘게 치장하는 미용실 이용소 거기 들렸다 나오면 산뜻한 새 얼굴 세월을 거슬리는 행위를 흰 머리카락에 염색하고 젊음을 회귀하고픈 마음이다 이제는 세월을 거역 못 하고 더는 내 본성을 속일 수 없다 흰 머리카락 그대로 보이고 싶다 헌팅켑을 쓴 사람을 보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나도 하고 싶다 선뜻 나서지 못하는 옹졸함이 한번 변신해 보라고

자작글-021 2021.01.21

살아도 사는 맛이 아니다

살아도 사는 맛이 아니다/호당. 2021.1.21 사는 것을 맛으로 사는 것이 아니지만 왠지 요사이는 건조하다 오랫동안 물갈이하지 않은 어항 금붕어는 가쁜 숨 쉬려 물 밖으로 입을 벌름벌름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다 거리 두기 2,5 단계는 가히 소원해지는 거리쯤 되지 않을까 마음 놓고 부딪고 끼리끼리 한잔 캭. 주고받고 깔깔 껄껄 이걸 참고 견디느라 사는 맛이 안 난다 *집콕은 기본이고 내왕이 없는 공간은 점점 잡풀로 덮어 희미하다 콩밭은 오랜 가뭄으로 띄엄띄엄 싹틔워 땅 밖을 나오자마자 비틀거린다 전세보증금은 바닥나고 주인의 **성화 成火에 나날이 버티기 고통스럽다 햇볕 못 본 화초가 누렇게 되어 꽃필 채비를 하지 않는다 물갈이하지 않은 내 삶에 혹시나 도깨비바늘 붙지나 않았을까 살아도 살맛 안 나는 코..

자작글-021 2021.01.21

겨울 화살나무

겨울 화살나무/호당. 2021.1.20 한겨울 오돌오돌 떨면서도 그대 그리움을 잊지 않는 것은 봄이 오면 만나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운암지 수변공원을 드나드는 신발들 내게 따뜻한 눈길 보낸 적 있나 나 화살 겨눈 적 날린 적 없었다 화살 꽃단장하고 반겨주었다 오직 믿음 하나로 모진 겨울 참고 맨몸으로 기를 모아 참고 기다린다 이 겨운 모진 시련 이겨 살아남아 그대 그리움을 내부로 끌어안고 기다린다

자작글-021 2021.01.21

추억 하나

추억 하나/호당. 2021.1.17 얼마 전 똥그랑 봉을 보고 왔지 지난 것은 모른 척 푸르게만 무성했고요 내 추억을 거기 올려놓아 보았어요 우리 형제 6.25를 겪으면서 공비들 출몰이 잦아 그날 밤은 똥그랑 봉에 피신했지 영주 풍기 아니면 단양 제천 방향에서 폭격 불기둥 소총 불줄기 왔다 갔다 얽히고설키고 따닥따닥 쾅쾅 나는 무서워 묘지에 납작 엎드렸고 지나갈 일은 지나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똥그랑 봉 초목 나와 그 추억은 살아 생생하네요 세월은 흘러 소멸했지만 나만 추억을 캐고 우뚝합니다

자작글-021 2021.01.17

할 일없음의 늪

할 일없음의 늪 //호당. 2021.1.16 퇴직하면 어떻게 생활하겠다는 생각 없이 맞닥뜨렸다 막막하다 석 점을 꼭꼭 찍고 잡았던 소 타래 그리워해봤자 현실을 부정하는 짓 하바드 대학 등 학위 없는 각종 대학을 다녀 봤자 자본주의가 물씬 풍겨 실감했다 묵향 날리고 당구공 맞히고 스텝도 밟아보나 무위를 상쇄하기 역부족 할 일없음의 늪은 그대로였다 시의 꽁무니 잡고 끙끙거리고 눈 감은 늙은 눈을 깨우쳐 드리고 조금 수위는 낮아진 듯하지만 이것으로 떫은맛을 누그러뜨리기는 부족했다 코로나는 집콕으로 봉쇄한다 할 일없음 고통을 삭이는 일이 내 일

자작글-021 2021.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