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야생화

야생화/호당.2021.2.15 한 송이 야생화가 그냥 쉽게 피었다고 생각 말라 폭풍우에 흔들리고 넘어지고 짓밟히고 피었다 고시 파스하고 높은 자리 그자를 쉽게 올라갔다 생각 말라 하나를 얻기 위해 5시간을 일하고 겨우 움켜잡은 일당 얼마나 소중한 대가냐 보드블록 틈에 풀꽃을 보라 짓밟히고 찢기고 목말라 배배 꼬이고 갖은 고난을 겪고 꽃피우고 씨앗 남겼다 세상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

자작글-021 2021.02.15

봄이 오는 길목

봄이 오는 길목/호당 2021.2.14봄을 꼿꼿이 세운 지 열흘 넘었다겨울아아무리 바둥거려 봐야비스듬히 기울기 시작했다그간 얼마나 앙칼진 얼굴로노려보아 오돌오돌 떨게 했나마음씨 후한 여인의 미소에는포근한 시간이 담겨 너는 당할 수 없지봄이 오는 길목오후의 햇볕을 반기려팔거천변을 줄줄이 걷는다팔거천이 알아차려재잘재잘 소리 내고오리 때들 맴돈다잔설은 산골짜기로 쫓기더니흔적 없이 사라졌다버들강아지를 보면 알아봄을 한 아름 끌어안고보드라운 마음을 부풀리고봄이 오는 길목은 포근한 양탄자를 깔았다마중이라도 하듯팔거 천변을 느긋한 마음으로마중해도 좋으리

자작글-021 2021.02.14

세배

세배 /호당. 2021.2.13 농경시대 설은 어린이들의 설렘이다 꼬까신 설빔에 세상이 즐겁고 세배는 참새떼처럼 이 집에 우르르 저 집에 우르르 내려앉았다 그저 넙죽넙죽 절하고 떡 부스러기 감주 한 주발 마시면 좋았고 신이 나기만 했다 설빔 자랑이 어버이 심정을 알기나 하나 쏘다니는 것만 즐거웠지 지난 필름에는 온 동네가 정이 소복소복했지 인터넷 세대 전화 세배는 약과다 직계만 흐르는 인터넷 파동에 실려 오거나 말거나 그것도 코로나 때문에 더욱 인색한 시류 설인지 명절인지 이튿날 오후 해님 맞아 경배한다 공원 벤치에서 그리운 추억을 되돌려 본 인생 파노라마 농경시대의 사고는 빨리 벗어 시류에 실려 세배하든 말든 마음 놓으면 편해

자작글-021 2021.02.14

이태원 길에 눈이

이태원 길에 눈이/호당. 2021.2.11 이태원 길 객사* 客舍에 실린 문장이 풀 풀 날다가 사뿐히 앉는 길에 하얀 문어** 文語가 소복소복 쌓인다 새파란 남녀가 팔짱 끼고 팽팽한 각선 脚線을 교차하는 사이를 흰 가루가 날고 뽀드득뽀드득 소리 난다 귀에 들리겠나 붉은 사랑이 펄펄 끓는데 하늘에서 선녀가 객사에 실린 흰 문장을 막 뿌린다 누구든 문학관 입구 출입문 손잡이만 잡았어도 기꺼이 품 안에 감쌀 것을 늙은 문외한 門外漢의 낯바닥을 흰 쌀알이 내린다 아이 아니 싸늘해 문학이 뭔지 객사가 뭔지 옷을 툭툭 털어낸다 *이태원이 지은 소설 제목 ** 언어 문자로 나타낸 말 음성 언어에 상대하여 말을 글자로 적은 것을 이른다

자작글-021 2021.02.11

오곡밥 먹는 날

오곡밥 먹는 날/호당. 2021.2.10 정월 대보름날이 오면 주로 찰밥이 입을 호사했다 원래 오곡밥을 먹는단다 찹쌀, 팥, 검은콩, 차조, 수수 색깔이 다른 다섯 곡식을 볏논에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 벼 대신 잡곡이 된다 잡새들도 잡곡을 좋아한다 흰쌀밥을 씹어서 설탕 한입 가득 잡곡밥을 꼭꼭 씹으면 합창단의 음향이 혀를 춤추게 한다 밥 짓기 더 신경 쓸 일을 아내의 정성을 후닥닥 비운다 덤으로 토마토 반개(겨울철) 이건 끓는 물에 반숙하고 껍질을 제거하고 잡곡밥의 뒤끝은 잡념을 버리고 잡곡이 합일하는 마음이다

자작글-021 2021.02.10

인생의 꽃

인생의 꽃 /호당. 2021.2.9 누구나 한 번씩 피운 꽃 또래 꽃이 한들한들 저마다의 향기를 뿌렸다 흘러간 냇물을 다시 만날 수 없듯이 떠내려간 활짝 한 인생 꽃을 그리워하지 말라 대나무꽃 오랜 세월을 제안에서 갈고 닦아내어 시들어 떨어질 꽃을 다시 활짝 한 것이다 두 번째 인생 꽃을 피울 수 있으면 노선의 깃처럼 우아할 것이다 내 인생 꽃을 갈고 닦아 노선의 길목을 찾는 중이다

자작글-021 2021.02.10

백발

백발 /호당. 2021.2.8 까만 머리카락으로 위장하고 버티었다 눈이 내리자마자 쓸어버린 꼴 언제나 까만 기만 欺瞞은 나를 속이는 일이다 안으로부터 내리는 눈 이건 뽑거나 위장했다 가끔 흰 머리카락 보고 보기 좋게 느낄 때가 내가 나를 숨겼다는 것 고백하는 것이다 눈을 털거나 뽑거나 자기위장에 도를 넘으면 분장 환장이 된다 내 모습 위장을 벗어 본장으로 가자 헌팅켑을 쓰면 마음 덮어 더 우아하거나 아니면 노추로는 안 보이겠지

자작글-021 2021.02.09

처음 만날 때

처음 만날 때/호당. 2021.2. 혼자만 끓고 있는 배알이 연못의 파랑이 고조된 것은 그녀를 훑고 간 바람 때문이다 슬쩍 쪽지 하나 제비에 날려 보냈다 같이 다 한잔 나누고 싶다고 새파란 촉수를 내밀고 바르르 떨었다 미친 짓거리라고 붉은 새싹에 침 뱉고 뭉개버리지 않을까 제비 입에 지푸라기 엽서 물어다 왔다 두근거리는 가슴 첫 대면이 어색한 흑백의 색깔 이럴 때 내가 주도해야 하는데 내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나 이런 사람이야 연못의 파랑이 격랑으로 변했다 진정시키려 우왕좌왕한 나 겨우 잔잔한 파랑으로 가라앉고 그녀의 입김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시작이 좋으면 결말도 좋을거야

자작글-021 2021.02.07

갈비탕

갈비탕 /호당. 2021.2.6 인생 호에 승차한 친구 몇이 식탁에 앉았다 도중에서 요양병원 요양타운이 눈여겨보며 가슴에 뇌리에 각기 다른 회한이 박혔다 바다가 보이지 않은 듯 자신에 찬 마음 내면의 흐름은 고요하다 고주파의 귀청 흐릿한 쌍안경으로 갈빗대를 발라 자신을 요리했다 파도 소리 갈매기를 들리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았다 넓은 강을 말없이 흐르면서 햇볕만은 꼭 끌어안았다

자작글-021 2021.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