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밥 배달하는 아줌마

밥 배달하는 아줌마/호당.2021.3.5 이 시장바닥에서 30년을 일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도록 5층 탑을 쌓고 이 골목 저 모퉁이 돌아 보시하듯 탑 한층 씩 내려놓고 보시의 껍질은 널브러진 푸른 잎들 다시 수거하면 푸른 잎은 팔팔하게 살아나 다음날 탑의 밑바탕이 된다 30여 년을 탑을 굳혔으니 내 뼈는 사리라도 배겨 빛낼까 보시한 뒤끝은 흐뭇한 마음

자작글-021 2021.03.05

불쑥

불쑥 /호당 .2021.3.4 맘 졸이지 말고 느긋 하자는 마음 모 시인의 시집을 도서관에서 대여받아 읽으며 자적하자고 불쑥 내민 새싹에 폭삭 서리맞고 검색 결과 중앙도서관에만 있다 불쑥은 앞뒤 가리지 않는 속성 3호선의 느림을 급행 2로 대치하고 하차하니 연결(환승) 고리가 없다 불쑥엔 마귀가 따라붙는다 항문열쇠를 잃어버렸다 내 계좌를 교보문고에서 정지했다 불쑥은 신중이 없다 내부 수리로 폐관이란다 싹득 서리 맞고 홧김에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설문지에 왜 받느냐고 불안해서 받는다고 당당했다 콧구멍과 혓바닥을 쑤신다 아얏 이것도 불쑥 인가 불쑥 뒤끝은 상고대만 달렸다

자작글-021 2021.03.05

복숭아꽃

복숭아꽃 /호당. 2021.3.2 간밤에 강원도지방에 대설에 한파에 곤욕을 치렀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에 빨간 복숭아꽃이 모두 시들에 축 처져 있었다 뭣이 그리 서둘게 했나 며칠간 너무 포근해 봄을 불러들였다 그 꾐에 그만 터뜨렸으니 이런 낭패가 있나 때가 있다 서둘지 말라 그렇다고 늑장부리거나 게으름 피우지 말라 때를 잡고 매진하면 가장 알맞은 효험을 찾는다 다시 재기할까 벌 나비 모아 배아에 성공할까

자작글-021 2021.03.02

토정비결

토정비결 보기/호당 2021.3.2 정초 토정비결 보기를 유행인 시절은 농경시대 보릿고개 때다 그걸 오락으로 보는 게 좋지 믿어 걱정할 일 아니다 토정비결 보고 께름칙하게 느껴 오줌 누고 시원치 않아 또 마려운 듯 맞아 맞아 맞장구치는 노인네들 3월에 물가를 조심하라 이건 유 말 팔 초 장마철이면 조금 수긍할 것을 운명을 그렇게 꾀 뚫리게 내다보면 신통하지만 사주 관상 역법을 논하는 이 이조차 믿을 것이 못 된다 자기 손을 거친 점괘는 바르다고 아무도 토정비결 점괘처럼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자작글-021 2021.03.02

나는 왜 작아지는가

나는 왜 작아지는가/ 호당. 2021.3.2 출판사에 갔다가 시집과 계간지 몇 권을 얻어 삼일절을 낀 (토,일,월) 연휴 사흘간을 매몰했다 시의 속을 벗겨보거나 수필에 퐁당 빠져 본 것이 내 작은 욕탕에서 아등바등 친 시가 왜소하게 느껴진다 내 원고가 쪼들어질까 봐 다독이느라 밤을 잊고 덧셈 뺄셈을 하고 지웠다 다시 썼다 겨우 마무리해도 내 그릇은 미완을 느낀다 밖에 나오면 내 시가 너무 얕아 함부로 저벅저벅 걸으면서 물장구치고 파랑을 일으키지 않을까 그런 기우는 없겠지 큰마음 배포를 품어 위로했다 조잡한 원고를 선뜻 받아 출간해 주신 장호병 발행인의 큰 배려에 고개 숙여 절 올립니다 아울러 북랜드 임직원에게 감사한 마음 드립니다 2021 초봄 著者 識

자작글-021 2021.03.02

객사 客舍

객사客舍* /호당.2021.3.1 이태원 길 객사에 실린 문장이 풀풀 날다가 사뿐히 앉는 길에 하얀 문어 文語가 소복소복 쌓인다 새파란 남녀가 팔짱 끼고 팽팽한 각선 脚線을 교차하는 사이를 흰 가루가 날고 뽀드득뽀드득 소리 난다 귀에 들리겠나 붉은 사랑이 펄펄 끓는데 하늘에선 선녀가 객사에 실린 흰 문장을 막 뿌린다 누구든 문학관 입구 출입문 손잡이만 잡았어도 기꺼이 품 안에 감쌀 것을 늙은 문외한의 낯바닥을 흰 쌀알이 달라붙는다 아이 아니 싸늘해 문학이 뭔지 객사가 뭔지 옷을 툭툭 털어낸다 * 이태원 소설가의 작품명

자작글-021 2021.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