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생기 나다

생기 나다/호당 . 2021.3.21 늙은 부부는 하루가 지루하다 슬하는 모두 떠났고 종일 당신의 얼굴과 TV 화면이 전부다 맏이가 오리탕과 반찬을 한 보따리 내려놓았다 메말라 가던 뿌리가 거름 흠뻑 맞으니 금방 생기가 돋았다 하룻밤 곁에 자고 가니 네 채취가 녹여있어 시든 잎이 파닥거렸다 나무는 밀림이든 아니든 외로움을 모른다 인간은 감정을 펼쳐낼 곳이 없으면 외롭다 늙어 고독고는 숙명이라는데 받아드리고 숨 쉬는 것만 행복이라 생각해야지 마른 땅에 흠뻑 비 내리고 간 딸이 고맙다 새싹이 파릇파릇 솟는다

자작글-021 2021.03.21

욕망의 발동

욕망의 발동/호당 2021.3.21 마음을 비워내지 못한 짓이다 400부 500부 나는 그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욕망이 발동했는가 교정할 때마다 전화하고 서로 마음을 확인했다 교정이 끝내고 인쇄에 들어간다고 몇 부 할 까요 왜 내게 묻는가 의아하면서 나는 500부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500부로 하죠 몇 날을 생각 없이 아차 늦게서야 후회했다 확인을 안 했나 욕심의 검은 버섯이 불쑥 솟았는가 봐 후회하고 끙끙거린다 기차는 이미 떠나버렸다 욕망의 우물은 흐려 마음 편치 않다

자작글-021 2021.03.21

사랑

사랑/호당. 2021.3.20 당신은 언제나 나의 등덜미를 따뜻이 밀었지 햇볕이 훑고 지난 어둠이 깔리면 달빛을 끌어모아 등을 밀었지 나는 운전석 당신은 조수석 초창기는 마음 졸이고 구시렁거리는 독버섯 쑥쑥 돋았지 그때는 철몰라 땡감처럼 마구 날뛰는 속도감에 취했지 지금 깜박깜박할 나이 마음 졸이는 냄비는 사라지고 구시렁거리는 독버섯 대신 송이버섯 가끔 돋고 나는 도로 옆 파수병의 눈치에 벗어나지 않도록 정 궤도를 달리는 중 오늘 더 따스한 입김으로 등허리를 달구고 토닥거려 주었다 땡감에서 홍시가 되니 나의 사랑은 더욱 포근하다

자작글-021 2021.03.20

비대면 교육

비대면 교육/호당. 2021.3.17 우린 얼굴일랑 보지 말자 얼굴 안 보고도 일은 처리할 수 있어 운전면허증 갱신하려니 고령자는 소정의 교육을 받으란다 대면 교육은 중단했고 비대면 교육을 수강할 수 있다니 우선 회원가입이 필 수 전 단계 실패 또 실패, 실패, 실패, 실패.... 오기는 이때 부리는 것 아니다 끈질긴 실패 끝에 얻은 결과 컴퓨터로 시청하기 거의 4시간 정도 시청했다 늙어 덤으로 주는 선물이다 끈질긴 노력 끝 수료증을 받아냈다 비대면의 결과는 달콤했다

자작글-021 2021.03.17

고물차

고물차 /호당 .2021.3.16 내 몸은 고물차와 같다 오래도록 끌고 다녔다 씽씽하던 몸이 닳을 대로 닳고 구멍 막는데 골몰하다 그래도 타이어 삐걱거려도 팽팽하다 낡은 운동화 닳아도 쿠션은 괜찮다 아홉 구멍 틀어막다가 교체하거나 폐쇄하거나 시효가 가까울수록 누수가 많다 처방전은 일시적인 땜질 종합병원의 땜질에는 지갑이 두둑해야 한다 고물차일수록 유지비가 무겁다 아스팔트만 달리면 지갑이 두툼해 질까 내 몸은 고물차다 오래도록 끌고 다녔다 씽씽하던 몸이 닳을 대로 닳고 구멍 막는데 골몰하다 그래도 타이어 삐걱거려도 팽팽하다 낡은 운동화 닳아도 쿠션은 괜찮다 아홉 구멍 틀어막다가 교체하거나 폐쇄하거나 시효가 가까울수록 누수가 많다 처방전은 일시적인 땜질 종합병원의 땜질에는 지갑이 두둑해야 한다 고물차일수록 ..

자작글-021 2021.03.16

에스컬레이터

에스컬레이터/호당. 2021.3.15 상행이든 하행이든 운행은 내 행위의 본성이다 홈플러스 카트는 이때까지 내겐 고분고분했다 오늘 상행 문턱을 넘지 않아 거부의 자세는 내게 충격을 주었다 나를 쓰러뜨렸다 내자도 쓰러지고 폭풍에 나무가 쓰러지고 길 가든 사람 다쳐도 지구는 돈다 에스컬레이터도 돈다 말을 잊은 것은 지구도 에스컬레이터도 아니었다 뒤따른 젊은 여인이었다 순간 이변에 당황해서 일 것이다

자작글-021 2021.03.16

눈으로만 보세요

눈으로만 보세요/호당. 2021.3.14 공원에 ‘눈으로만 보세요’ 팻말을 눈이 부릅뜨고 들고 있다 눈으로만 먹어 봐 배부를까 아름다움, 맛, 향기에 취하면 보고만 있겠나 눈이 즐거우면 배고프다 애인을 눈으로만 보고 있을 수 없지 손잡고 마음이 눈 안으로 기어들면 입술을 삼켜버린다 눈으로만 보는 풍경 내 것이냐 공용이 더 많다 눈으로만 보고 고이 돌아가라 잘 보존한다

자작글-021 2021.03.15

여망 하나

여망 하나/호당. 2021.3.13 노송이라고 여망 하나 없겠나 봄만 되면 가지 끝 더 창창해 몇 마디 더 뻗는다 많은 나이테만 쌓았어도 생각 하나 없겠나 참신한 시어를 더 번듯거려 새 맛 나는 문장 펼치고 싶었다 마음이 죽지 않았다 고목이 한쪽 메말라간들 생을 포기하지 않아 아직 펼쳐 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번뜻한 시어로 아무도 밟지 않은 무풍지대를 휩쓸고 싶은 고산준령 고사목이 되더라도 그 속 사리 몇 점 지녀 천년을 번듯하고 싶다

자작글-021 2021.03.13

뻥튀기 장수

뻥튀기 장수/호당 .2021.3.11 저 인간 오늘도 뻥 튀긴다 말에는 공기만 가득한 믿음은 뻥 뻥 처서 이득을 보려는 자는 언제나 자기 부족을 메우려는 짓 뻥도 자주 치면 그만 부푼 풍선이 폭삭 바람 빠져 어느 구석에 처박힌다 여기 뻥튀기 장수 가슴 부풀려 그 안에 진실이 있어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내자는 고구마 뻥튀긴 것 즐긴다 매주 목요일은 목을 지키는데 아마도 여기저기 목을 지키자니 오랜만에 만났다 반가워 뻥 튀김을 가슴에 안은 거기 진실만 가득했다

자작글-021 2021.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