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여울물

여울물 /호당. 2021.4.6 하얀 포말은 어린이의 마음이다 재잘거리거나 깔깔거리거나 맑고 투명한 순수 그 자체다 여울물을 건너는데 한눈팔지 말아라 너희 정신없이 노닐 사이 너희 뒤를 노리는 황새가 있다 황새야 그놈의 천성이고 생활이지 나무랄 수는 없겠지만 너를 품고 있는 네 안의 마음을 낚아갈 수 있다 쏴쏴 물보라 날리며 흐르는 네 등을 넘고 은비늘 번득이며 거슬러 오르고 싶은 은어 떼가 있다 여울물은 맑고 투명하면서도 폭우에 폭풍에 그만 울상이 되어 흐린 눈물로 울상으로 흐른단다 맑고 투명한 고운 여울에서 철없는 치어 稚魚를 보살펴 주라 여울물의 해맑은 마음이여

자작글-021 2021.04.06

마네킹

마네킹/호당. 2021.4.6 젊은 방년의 아가씨 미끈한 다리를 보이고 싶다 찬바람 몰아쳐도 그까짓 것쯤이야 마음 내다보이고 싶은 걸 스타킹을 신었는지 벗었는지 감쪽같은 세상인데 마네킹보다 더 생동감 나는 꽃봉오리 탁탁 터뜨리고 싶어 될수록 많이 홀랑 보이고 싶어 꽃 지면 그만이다 화무십일홍일 때 마네킹은 정물도 예쁜데 생물은 약동해서 더 아름다워

자작글-021 2021.04.06

나를 낮춰라

자기를 낮춰라/호당 2021.4.6 내가 우쭐하고 싶은 마음 내 분신쯤 되는 시집을 내고 문자로 이메일로 부탁했다 축하하는 이 무반응 무 응답하는 이 보이지 않지만 냉소하는 이 마음은 자유다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닌 시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명찰을 달고 꽃피우지 않은 나무는 죽은 나무이거나 불임일 거다 꽃 피우고 잎 활짝 했다 우쭐 말라 너만 하는 일 아니다 더 겸손해라 한걸음 물러서 보면 세상 마음이 내 마음 같은가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풍선 풀풀 날리는데 마음 낮춰 보면 마음은 여러 각도다

자작글-021 2021.04.06

4월의 신록

4월의 신록/호당. 2021.4.4 눈은 남쪽으로 향하고는 연록의 기지개를 펼친다 4월 잔인한 열기로 가슴으로 끌어안고 다독여준다 그럴수록 생기를 넓게 펼친다 그렇지 이때까지 나는 쪼그리고 있었지 신비로운 저 열기를 왜 몰랐을까 가슴에 치솟는 푸른 기상을 펼쳐내자 눈을 뜨자 남쪽으로 그임을 만나 젊음의 기백을 쏟아내자 푸른 기상을 새들이 하늘 날 듯 내 일터로 사뿐히 내려앉아 젊음을 쏟아내자

자작글-021 2021.04.04

제비꽃

제비꽃 /호당. 2021.4.4 연약한 몸매는 가냘픈 여인 아파트 뜰에 지천으로 방긋 보랏빛 사랑을 흘리는데도 맥문동이 본거지라고 경비 아저씨는 사정없이 쫓아냈다 아저씨 가냘픈 여인에 잔인하잖아요 아니 남의 영역에서 활개 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단다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 있다 맥문동 틈에 끼어 뿌리 깊게 내리고 흥 나 여기 있지롱 질긴 생명 나를 거부하는 불모지에도 끈질기게 발 내린다 산다는 것은 쉽게 생각 말라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난다

자작글-021 2021.04.04

꽃 핀다

꽃 핀다/호당. 2021.4.2 벌써 남들은 꽃 피우고 거들먹거리다가 된서리 맞아 폭삭하고 말았다 나는 꽃 피우려 10여 년을 갈고 닦고 겨우 꽃봉오리 피웠다 봄은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뒤에서 막 떠미는 바람에 드디어 꽃을 피워냈다 손뼉 치는 사람 향기 좋다는 사람 문체가 매끄럽다는 사람 색채가 아름답다는 사람 칭찬도 꽃처럼 각기 달랐다 자기 노력으로 꽃 피울 때가 가장 보람인걸

자작글-021 2021.04.02

비 맞고 걸으면

비 맞고 걸으면/호당. 2021.3.26 오후 일정은 도서관 방문이 내일 날씨는 흐리지만 맘은 맑다 같은 구도 속에 내가 포개면 시간을 잊은 듯 나를 잊은 듯 편하다 도서관 밖을 나섰다 굵은 비가 내린다 젊은이가 비 맞으며 걸어도 보기 싫은 풍경은 아닐 텐데 바싹 마른 검버섯이 비 맞고 헛김 흘리며 걷는 모습 상상만 해도 비참하다 궁하면 통하는 길이 열렸다 이웃이 좋다 개인택시 기사의 인심이 굴러간다

자작글-021 2021.04.02

4월은 잔인한 달

4월은 잔인한 달/호당. 2021.3.31 4월은 잔인한 달이었던가 젊은 꽃들이 나래 달아 훨훨 향기 날릴 곳을 못 찾아 백수로 놀고 있다니 계절은 무정하지 꽃 피우고 겨울옷 벗게 하고 시냇물 녹여 좔좔 흐르게 하고 젊은 꽃은 거들떠보지 않는구려 젊은 꽃들이 서로 향기 주고받아 맺기를 주저하는 4월은 잔인하다 젊음이 활기차고 비상해야 나라가 활기찰 텐데 잔인한 4월을 박차고 일어서라 나라의 기둥이 굿굿 하라 비상하라

자작글-021 2021.03.31

파리바게뜨 빵

파리바게뜨 빵/호당 . 2021.3.30 각기 다른 얼굴로 각기 다른 향기로 자기를 쑥 내밀어 애송이 처녀들이 모여 날 잡아달라는 듯 요염을 뿌린다 누구든 싫든 좋든 끌려가면 덥석 안겨 입맛 돋우고 사라지는 성정 이것이 내 가는 길 하루건너 이틀 일주일 아무도 거들어 보지 않아 애끓는 노처녀가 되면 향도 미모도 한물간다 그만 입 다물고 한숨만 쉬다 굳어버린다 향기와 맛에 홀린 사람들의 식탁에서 한 몸 바치겠다는 빵

자작글-021 202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