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스무살

스무 살/호당. 2021.1.16 싱싱한 떡갈나무 잎 풀냄새에 가슴 부풀 젊음 찔레 덤불 밑동에서 미끈하게 불쑥 솟은 찔레 순처럼 탐스러운 스무 살이다 아삭 깨물면 달고 시원한 즙을 쏟아내는 사과 같은 누구나 외면 못 하는 눈길 듬뿍 끄는 너희 사과와 사과끼리 부딪혀 서로를 끌어당겨 보려는 자력을 팍팍 뻗는 자장 같다 대장간 풀무질에 시뻘건 불기운처럼 단숨에 녹여내는 머시마 가시나들의 정기 흐르는 냇물 여울물도 박차고 오르다가 펄쩍펄쩍 날뛰는 숭어 같은 스무 살 마음껏 펼쳐라

자작글-021 2021.01.16

멸치

멸치/호당 202101.15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양지와 음지, 육지와 바다, 밤과 낮, 확연히 구분한다 바다를 휘저을 때야 좋았지 일망타진 그물에 걸릴 때는 운명을 거역하지 않았다 한증탕에서 죽도록 땀 흘려 내 허욕 쓴물을 몽땅 토해냈다 육지는 사막이 되는가 싶더니 변화무쌍한 태질 기름 솥에 다이빙하고 멱감고 내 진실을 휘발할 수 없도록 딱딱하게 고착했다 사탕발림으로 꾀인다 모른 척 있으니 접시로 대접하더군 이것이 내 운명이면 내 진실을 고스란히 익혀 고소한 맛으로 보시하는 일이 종지부가 됐다 내 종지부는 마침표 하나 찍으면 만족해야지

자작글-021 2021.01.15

오늘 하루

오늘 하루/호당 2021.1.14 하루살이는 하루 치의 자기 욕망을 몽땅 채우고 끝낸다 오후 시간을 덤벙덤벙 써버린 것이 아닌가 석 점은 꼭꼭 찍고 나머지 공간을 뒷 똥구멍이 줄줄 새는 듯 발자국에 나무늘보의 타액이 찍히는 듯 숙명이라도 되는 듯 무시하고 꼬박꼬박 걸어야 했다 익숙한 코스에 놓인 반기지 않은 의자에 주저앉아 포근한 겨울 햇볕에 마음을 내어 말린다 무위고의 위안이다 가슴에 끌어안으려는 시의 꽁무니를 달래고 어르고 달라 붙인 들 뒤죽박죽이 된다 하루살이보다 못한 어정쩡한 내 하루는 저문다

자작글-021 2021.01.15

업보는 아프다

업보를 아프다/호당. 2021.1.13 울면서 태어난 아기 아파서 울지 않고 태어난 세상에 감탄해서 운다 이승을 떠날 때 반드시 아픔의 고통 주위 사람의 울림은 업보를 치르는 행위다 돌부리 차고 쇠똥 밟고 자기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일 사기 약탈 강간 살인 협박 등 이런 짓 하고도 닥칠 업보는 모른다 고통 없이 죽는 자는 몇인가 이건 이승에서 업보요 저승에서 업보는 면책이 아니라는데 나의 업보는 얼마나 아플까 아침 이슬처럼 영롱하다가 바람에 획 떨어 저버리는 업보가 되었으면

자작글-021 2021.01.13

햇볕

햇볕 . 호당 2021.1.12 칼바람이 나를 후려친다 그만 집으로 돌아와서 베란다에 의자를 한껏 편하게 젖히고 해님을 경배했다 자애로운 손으로 온몸을 골고루 어루만져 기를 쏟아붓는다 한술 더 떠 해님 탕에 잠겨 내 몸을 씻는다 깊숙이 마음마저 씻어냈다 함부로 헤프게 쓴다는 생각 하지 않았다 워낙 따스한 분 누구나 공평한 사랑을 베풀어주니까 오히려 당연한 듯 생각난다 수양하는 마음으로 햇볕에 말리며 햇볕에 목욕하고 마음 익혀 나왔다 남쪽을 향해 경배한다

자작글-021 2021.01.12

세한도처럼

세한도처럼 호 당 2021.1.10 오늘같이 추운 날에 샛파란 날 새워 눈알 총총하고 학처럼 고고 孤高하다 어디 떨기나 하나 추사체를 본받겠다고 붓대를 들었지만 마음부터 정좌 못 해 비틀거릴 뿐 패딩 차림으로 세한도 정신을 밟겠다는 각오로 나섰지만 100m 못가 온몸이 얼어붙은 듯 덜덜 떤다 마음마저 얼어붙었으면 곧은 절개 흉내도 못내 그저 집콕*하고 코로나를 경계하는 그 마음이라도 굳혀야겠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콕 박혀있다는 은어

자작글-021 2021.01.10

어긋난 시차

어긋난 시차 /호당.2021.1.10 놓아두었든 자리 좌표가 조금 변하면 허둥지둥 헤맬 나이 변하지 않는 성정은 직각과 둔각 당신은 왼편 나는 오른편 시계방향으로 돌고 구시렁거리던 뭐든 하루 두 번 포옹한다 취침 시각의 시차 밤 용변의 시차 이건 교차하는 시각 대신 자가당착으로 변을 당할 때가 있다 올빼미는 새끼 모두 잠재우고 나서 안심하고 잠든다 올빼미 정신과는 가당찮은 늦잠에 아침 해가 궁둥이를 찔러야 깨어난다 구시렁거리는 시차든 어긋난 방향이든 해만 뜨면 녹아내려 편안하다

자작글-021 2021.01.10

사우나탕 속으로

사우나탕 속으로 /호당. 2021.1.8 내 몸에 물이끼 낀 것은 목욕탕을 외면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용으로 가당치 않았다 검버섯은 늙음의 꽃으로 보라 그러나 몸에 난 이끼는 노추 老醜라 말해도 대구 對句 할 구절이 없다 부처 솔처럼 물만 먹으면 생생하게 살아 반들거렸다 근 일 년을 코로나에 긴장한 솟대처럼 혼자 망대에서 맘 졸였으니 따뜻한 물속으로 스며 녹이고 싶다 나를 닦아내고 어깻죽지 펼쳐 마음 놓고 씻어내야겠다 오늘 가장 추운 날 적격이다 웅크리고 집콕이 많을 테니까 완전무장하고 깡 추위는 맞서고 사우나에는 몸 낮추니 편안하다

자작글-021 2021.01.08

칼갈이는 마음을 가는 일

칼갈이는 마음을 가는 일 /호당. 2021.1.5 명석하다는 말 날카롭다는 두 말이 등 돌리면 무디어진다 무디어지면 조리일이 답답하고 짜증스럽고 나중에는 감각마저 무디어진다 사근사근 싹둑싹둑 잘 베어나가 어려운 딱딱한 일 처리도 단칼에 베어낸다면 좋아하지 등 돌려 무딘 칼을 화해하여 손잡아 마음에 찐 무딘 감정도 갈아내 준다는 칼갈이에 맡겨 날렵하고 명석한 날 새워 명쾌한 답변 내어놓았다 예리한 칼날 서로 조심하면 일이 잘 풀릴 거야

자작글-021 2021.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