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시간 준비되지 않은 시간 호 당 2010.6.9 양 떼 곁을 떠났을 경우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낯선 환경이 어떤 밀물로 밀려올 것이라 상상해 보지도 않았다 평생을 새싹 키우려는 푸른 꿈을 지닌 나 창문에 아로새긴 새싹들의 얼굴이 햇살로 달아 서로 얽히기 전에 달려 가보면 푸른 초원 위의 양 떼.. 자작글-010 2010.06.09
같이 녹아야지 같이 녹아야지 호 당 2010.6.9 그 울타리 안은 저들만의 수온이 흐른다 알맞게 익은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거침없이 호흡을 같이하지만 이방의 울타리를 벗은 물고기는 수온의 차를 느낀다 한때 자기만의 영역이 가장 알맞은 수온이라 자부하고 남들이 못하는 꼬리 질을 충분히 흔들었건만 여기 무.. 자작글-010 2010.06.09
꽃뱀 꽃뱀 호 당 2010.6.7 성당 뒷마당 돌담이 얽힌 속으로부터 꽃뱀이 눈을 흘긴다 암 냄새 풍기고 알 수 없는 혓바닥 날름거리니 정녕丁寧 너는 누구를 꾀느냐 어스레한 떡 개구리가 홀려 냉큼 가까이 가는가 냇바닥 물소리 옆에 끼고 일주문 들어선다 미끈한 꽃뱀이 치렁치렁 머리카락 흩날리며 내 앞을 스.. 자작글-010 2010.06.07
제비꽃 제비꽃 호 당 2010.6.6 시린 시간을 견뎌온 보람 있어 양지바른 언덕에 내 생의 터전으로 잡았다 다소곳이 고개 숙여 부끄럼 안으로 삭이며 햇살 내 안으로 받아들인다 보랏빛 희망 펼칠 무렵 조석 간만의 차이로 울렁거리는 가슴 임 그리는 가슴 알이 인 듯 드디어 내 자궁으로 밀어올리는 수정의 오르.. 자작글-010 2010.06.06
때죽나무 꽃 때죽나무 꽃 호 당 2010.6.6 낮 놀이하다 매달린 벌떼다 입에서 단물 풍기며 붕붕거린다 귀 쫑긋 세우고 매달려 낮잠 자는 박쥐 무리다 풀향 풍기는 푸른 언덕에서 때죽나무 젖가슴에 주린 입 박고 매달린 흰나비 무리다 한결같이 땅 냄새 풍기는 쪽으로 눈망울 흘기다가 끝내는 흙으로 만나는 때죽나무 .. 자작글-010 2010.06.06
고추밭에서 고추밭에서 호 당 2010.6.3 고추가 마지막 엷은 가을 햇볕을 받고 익어간다 아직 철없는 비릿한 것이 엷은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쬐려 아랫도리를 열어젖히고 새빨갛게 약 올라 빳빳하게 곤두세우고 찌를듯한 자세를 한 것만 골라 거세해 버렸다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광주리에서 저들끼리 새.. 자작글-010 2010.06.03
회전의자 회전의자 호 당 2010.6.2 제사상에 진설陳設 된 제물처럼 대접받고 눈을 부릅뜨고 어깨에 힘 실은 회전의자였던 것이 세월의 뒤안길로 밀려 돗자리에서 부채질도 못할 만큼 추락한 무게 재화의 논바닥이 말라 야윈 입술 때문일까 재잘대는 새싹 돌본다고 뒷문에서 잡풀 막는다고 왕년 드나들던 문 그늘 .. 자작글-010 2010.06.02
6월의 시 6월의 시 호 당 싱그러운 풀향이 뒤덮는 6월의 산하 그대가 흘려 마지막 뿌린 붉은 향이 내 가슴에 사무칩니다 푸르디푸른 힘줄 세워 뻗는 6월 그대에 도약의 새 나래는 나날이 힘차게 더 넓게 펼침을 고해 드립니다 포연의 소용돌이에서 지켜주신 산하 상처입고 신음하던 이 길 나는 지금 살찐 산하를 .. 자작글-010 2010.06.02
싹 트는 콩 싹 트는 콩 호 당 2010.5.31 메마른 내 가슴은 차디찬 흙속이 주어진 내 운명의 터전 세월의 속알이 끝에 온기의 탯줄로부터 싹트는 태동 만삭의 임산부같이 부푼 희망 노랑머리 위를 짓누르는 무게에 맞서는 역기선수가 된다 어둠 헤치면 찬란한 빛만 있는 줄 알았지 생명줄 깊이 박고 커야지 목숨을 노.. 자작글-010 2010.05.31
거울-1 거울-1 호 당 2010.5.31 나만의 방에서 홀랑 벗은 몸으로 비춰 봐도 태연스런 무지인無知人이다 짐짓 모든 것을 꿰뚫어 알면서도 시치미 떼는 능구렁이 밑바닥까지 내다볼 수 있는 맑디맑은 냇물이다 정작 나는 몰라도 하느님이 써서 아는 안경이다. 자작글-010 2010.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