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식물 애완식물 /호당/2021.9.24 게발선인장에 홀딱 반해 내 안에 안겨 두면 한 달을 못가 지린내에 과보호에 질려 사라진다 온몸으로 초록 향기 뿜고 반들반들 눈망울 총총해 황량한 들판을 조금이나마 꾸미고 싶었다 새로 두 애 愛를 데리고 왔다 예쁜 집으로 단장하고 이번만은 마음 내통하고 싶었다 개를 데리고 다닌 사람은 애견에 남보다 더 애착일 것 게발선인장을 애완식물로 애착하면 애견과는 다른 시각으로 볼 것인지 자작글-021 2021.09.25
지천명 후반의 나이 지천명 후반 /호당/2021.9.24 사랑은 언제나 용광로가 아니다 지금 가장 편안한 욕탕 같은 것 서서히 식어 감을 피부로 느낀다 오늘 밤은 더 외롭다 밤늦게 돌아온 남편 저녁은 때었는지 술 냄새 풍기고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기다림과 화장은 깡그리 무시됐다 스탠드는 그대로 붉다 신혼의 용광로 버금이라도 기대는 어리석은 암두꺼비다 다만 편안히 드나들 수 있는 문지방 같다 삶이 어찌 한결같은가 지금 가장 편안한 의자다 밤의 스탠드는 명도 채도는 달라질 수 있다 포근한 것이 외로운 것이다 자작글-021 2021.09.24
절판된 시집 찾기 절판된 시집 찾기 /호당/ 2021.9.23 이름 값하는 시집은 절판 날로부터 명성은 높아 찾고자 하는 이의 애간장 태운다 떠난 애인 잊기는 힘든 것처럼 인터넷은 믿어야 하겠지 한낱 희망을 걸고 구글 알라딘 인터파크를 문 툭 툭 쳐봤다 그중 하나 대문에 걸어놓았다 잃었던 돈지갑 찾은 기분 그건 추석 연휴 전이다 연휴 중 검색했더니 없다 실패한 연애 중 싫다고 남모르게 숨어버린 애인 찾으려는 짓 그냥 그리워하고 가슴에 묻어두는 게지 혹시 마음 되돌려 돌아올지 실 같은 희망이 우울한 시간에 파열된 사랑 때문에 우울해진다 자작글-021 2021.09.23
꽃-3 꽃-3 /호당/ 2021.9.22사막에서 꽃을 피웠다면으스대도 남았지물가에서 쉽게 필 꽃을그것도 턱걸이로 책상에 올렸다아직 향기도 색깔도 희미한 것을옆구리 쿡쿡 찔러 다발로 묶어라 다그쳤다무식하면 용감하다지다발로 묶어 퍼 날라 안겨 주었다또. 또.얼마나 유식했는지눈 번쩍더 화려한 꽃다발 보고다시는 돌리지 않았다10여 년을 내 안에서 다발 다발로 쌓았다바닷가 절벽에 이르렀다파도가 후려친다 다그친다꽃다발 묶어 봐안 한다해봐라찰싹 철썩 쏴아 자작글-021 2021.09.22
다소곳 김밥 더소곳 김밥 /호당/ 20221.9.21 갓 시집살이 새아씨다 아직 시댁 맛을 몰라 다소곳이 있으면서 알아야지 갖은 고욤 얹고 참기름치고 그러는 동안 시댁 맛 알아 확 바꾸어 놓겠다 낯익고 처신도 자유로워 신랑을 돌돌 말아두면 배고파 졸라댈 때 한 줄 둠벙둠벙 썰어 입에 쿡 쑤셔 넣어 주면 침 질질 흘리며 좋아할 거야 이쯤 되면 시댁 식구로 완전히 내 편이 된다 밥상 차리기 번거로울 때 다소곳 김밥으로 때워도 아무도 싫어하지 않는다 자작글-021 2021.09.20
꽃-2 꽃-2 /호당/ 2021.9.21 네게 호감 준다고 잘난 듯 뽐내지 말라 이름 모를 꽃이 뒷산에 계곡에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한 세상 잘살고 있다 꽃 화원의 꽃이라 으스대지 마라 야생화보다 약한 너 찬 바람 불어대면 쓰러질 걸 꽃 아름답다 한들 오래 가지 않는다 그간이나마 뽐내 봐라 네 멋으로 시들고 나면 아무도 눈여겨 주지 않는다 한겨울 긴 종아리 들어내는 것도 꽃필 때다 이때 벌 나비 모여들지 않는 꽃은 매력 없는 꽃이다 자작글-021 2021.09.20
겨울 자작나무숲에서 겨울 자작나무 숲에서 /호당/ 2021.9.20 화려한 옷 벗어 온몸에 서릿발 둘러 햇볕 받아 쓸어내는 홀라당 벗은 나상의 아름다움 외설로 보는 자는 예술의 감각에 조금 부족한 눈이다 아무도 추녀라 하지 않아 하얀 살갗을 지닌 너 하늘 향해 팔 쳐들고 보라면 실컷 보라고 당당하다 화장을 짙게 하는 한여름보다 한겨울 나상이 *풍미를 더해 너다운 향기에 빨려들고 싶다 어린 여학생이 한겨울에 종아리 드러내 젊음을 자랑하듯 하는 것이 애처롭게 보이였다 겨울 자작나무는 눈발을 옆구리에 끼고도 칼바람에 찔려도 끄떡없이 꼿꼿이 서서 속 굳고 결이 좋은 마음 읽을 수 있어 희고 미끈한 겨울 자작나무의 미에 취한다 *사람의 됨됨이가 고상하고 멋스러움 . 자작글-021 2021.09.20
고갯길 고갯길/호당/ 2021.9.20 삶이 꼬불꼬불 창자 같다 이 고개를 넘으면 어떤 길이 펼칠까 발목이 폭폭 빠지는 눈길 소나무 이파리는 검게 얼어 눈만 껌벅 말이 없다 내 코끝에 연신 고드름이 매달린다 고라니는 숲 밑에서 배고프다 소리친다 하얗게 눈 덮은 산 새 떼들 허기져 뱃심으로 날아가다 눈 덮인 나무에 앉고 고개 넘으니 눈 걷어 낸 오솔길이 추사체처럼 뻗쳐있다 무수히 박힌 짐승 발자취엔 허기만 소복소복 고인 듯 싸늘하다 내 발자국엔 내 여정이 박힐지 싸늘한 바람이 나를 깨운다 자작글-021 2021.09.19
마음 추스르다 마음 추스르다/호당/ 2021.9.19 단풍잎이 스산하게 깔린 저녁 찬바람이 내 안으로 깊이 스며든다 박달나무 막대 같은 자존심이 우뭇가사리로 변했는지 안부 전화는 군자란처럼 의젓하게 느낀다 산이 어찌 항상 푸르랴 모진 채찍 바람맞고 그제야 본성을 드러낸다 내 채찍은 바로 여기였구나 고요한 연못에 어린 내 그림자를 황새 긴 부리로 콕콕 쪼아댔다 항상 받아온 채찍을 채찍으로 느끼지 않았잖아 단풍이 바람이 나를 스산하게 했어 이제야 내 본성을 드러내 더 늙어야지 자작글-021 2021.09.19
우울한 오후 우울한 오후/호당/ 2021.9.17 우울을 시대의 사랑에게* 내가 찾아 만나 할 말을 해야겠다 진석타워에는 찾으려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다 중앙도서관은 수리 중에 여기로 옮겨 놓았으니까 환승 고리를 찾다가 진석타워 석탑 타워 헛갈린다 택시기사는 손사래 바로 조기로 가서 우측으로 우울한 오후를 지우겠다는 걸음 묻고 걷고 묻고 걷고 그만 분절된 음절이 삐걱삐걱 빌딩은 나를 맞아 주었지만 나와 대화할 아가씨가 없단다 우울한 시각에 잠긴 듯 허탈에 멍해져 주저앉았다 시큼시큼 삐거덕삐거덕한 내 관절에 미안하다 대신 상냥한 아가씨와의 진지한 대화에 우울한 오후는 맑았다 * 박현수 시집 제목 자작글-021 2021.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