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추석 맞아

추석/호당/2021.9.17 태양은 아무것도 모르고 가던 길로 가고 달력에 붉을 글자치고 온 나라 사람 마음은 나침반 위에 서 있다 내자는 보름 전에 울렁거린다 얌전히 고개 숙인 서숙 黍粟(조)을 가마솥에 볶아 조바심한다 맹물이 펄펄 끓은들 땅에서 풀이 쏙쏙 내민들 고추나무 된서리에 폭삭한들 내가 늦잠 잔들 태양은 지나간다 80여 년 묵은 모정의 다리에 눈이 내려 마음 차가워지지 말고 치마폭을 툭툭 털면 됐지 추석이라 마음 뛸 일 없잖아

자작글-021 2021.09.17

그녀를 사랑하는가 봐

그녀를 사랑하는가 봐 /호당/ 2021.9.16 가슴이 울렁거린다 바다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아 뱃전을 찰싹찰싹 친다 달아오른 밝은 공간을 아지랑이가 그녀의 기운이 되어 내게로 온다 가상공간으로 자판기를 두드린다 밤이면 별들의 눈이 내게로 눈짓하는지 쳐다보면 반짝반짝 윙크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있는 쪽으로 바라보면 끌린다 자력이 끈다 가슴 젖히면 그녀의 체취가 몰려온다 옥시토신이* 발동한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뚫고 있어도 피 흘려 아프지도 않아 사랑인가 봐 *oxytocin 사랑의 호르몬

자작글-021 2021.09.16

동천공원의 오후

동천공원의 오후 /호당/ 2021.9.15 산책하기 알맞은 날씨는 나를 끌어냈다 대형 괘종시계 추가 흔들리듯 걷는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장가 못 간다’ 휴대폰 가게 간판이다 한 집 건너면 총총한 젊은이의 고뇌가 있다 말 없는 절규다 손님이 없다 한편 앳된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공원에 온통 사랑을 뿌린다 그는 저 소리 들리지 않겠지 공원에 있는 대추야 모과 애기사과 등 열매들은 가을을 끌어모으려 햇볕에 널리려 가슴 젖힌다 참나무 주변에 도토리 껍질이 널 부러 있다 노부부가 허리를 굽혀 아직 찾을 것이 있다는 듯 살핀다 공원은 사랑이 가득 내려 포근하다

자작글-021 2021.09.15

동맹

동맹 /호당/ 2021.9.14 뒤에 기운 센 친구가 있어 항상 지킴이가 된다 훅 불면 날아갈 듯한 친구는 큰소리 뻥뻥 기죽지 않고 강물은 지류를 조건 없이 받아들여 잘 흐르지만 세계는 동맹이니 외교니 하는 그물망이 얽혀도 항상 이해관계는 내재한다 약간 힘 길렀다 하여 그물망을 소홀했다면 쌓은 돌탑이 푸석푸석 무너지기 쉽다 내 뒤가 불안하면 동맹은 이해관계가 드러낸다 자주 그물망을 손질해야 한다

자작글-021 2021.09.15

도시락 봉사

도시락 봉사/호당/ 2021.9.12 오랜만에 운암지 공원으로 걸었다 점점 다리가 무거워져 느릿느릿 토산물 파는 노인들의 시선에서 삶의 짠물을 흘리는 듯 느낀다 운암 공원은 같은 구도에 늙은이들 지린내만 내려놓고 세월을 삼키느라 찌든 숨만 뱉어 낸다 정심 때 장애인 지원 협회 봉사단의 도시락 뭐 창창한 큰 나무 밑 작은 나무에 햇볕 양보하는 것 봤나 효의 도시락이다 큰 평수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큰 수입이 아니더라도 봉사단의 마음 나눔이 장하다 고마운 마음만 받고 양보했다 이들 봉사단에 천도복숭아 안겨줬으면 하는 마음 도시락 드시고 건강하시라

자작글-021 2021.09.12

모국어는 영혼이다

모국어는 영혼이다/호당/ 2021.9.13 일제 강점기 국민학교에 다닌 어린 영혼을 못살게 압박해 그만 주저앉았다 해방 맞아 모국어의 아름다운 트랙을 한 바퀴 늦게 출발했다 봄 맞은 버들강아지는 눈을 피우는데 까막눈은 얼어붙어 물길은 열리지 않았다 야단맞고 벌쓰고 그래도 눈을 틔울 물줄기는 메말라 삭막한 모래밭이다 계기 契機는 찾아왔다 ‘한글날’ 게시판으로 소릿값을 찾아 유추한 물길이 슬슬 흘렸다 물 만난 버들강아지 금방 눈떠 모국어의 꽃을 피우고 내 영혼을 찾으니 세상이 밝았다

자작글-021 2021.09.12

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이 먹는다는 것/호당/ 2021.9.11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이끼만 자라고 밭고랑에는 캐낼 수 없는 검버섯이 돋는다 듣기 좋은 말로 삶이 익는다고 한다 홍시 되는 것은 시간이 익혀놓았을 뿐 내 세월을 먹을수록 고독이 단단해진다 내가 짊어질 짐 대신 할 사람 없어 어깨가 부서지더라도 내려놓을 수 없는 짐 참을성을 길러야 한다 내 나이는 고독이 쌓여 굳어진 것 사리는 불심에 절인 것 고사목에 복령 하나 맺힐지

자작글-021 2021.09.11

호미곶 둘레길에서

호미곶 둘레길에서/호당/ 2021.9.10 사랑 없는 연애는 있을 수 없지 그녀를 놓치기 싫으면 호미 반도 둘레 길을 걸어 봐 사랑을 우려낼 수 있는 사랑 법을 터득할 것이다 그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구름을 잡아라 구름이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룬 쪽빛을 바다에 쏟아부어 쪽빛으로 물들인 바다 이처럼 네 향기로 취하게 하라 애인과 함께 걸으면 연애는 농익어질 거야 해안의 포말을 보라 아직 걸러내지 못한 마음의 앙금이 있다면 한발 다가서서 포말처럼 쏟아내라 그녀의 마음 꽉 잡아라 설익은 사랑을 굳히려면 해 질 무렵 일몰을 보라 하늘을 가린 구름이 해님의 사랑에 젖어 이글거리고 있어 그녀의 마음을 태워라 불그스레 달아올라 확 달려 붙을 거야 오늘을 헤어지기 싫어 더 애끓게 하라 잠은 아껴두고 새벽을 깨워 일..

자작글-021 2021.09.10

팔거천은 묵상 중

팔거천은 묵상 중/호당/ 2021.9.10 인자해지면 저렇게 고요하고 주위를 보살펴 깊숙이 상대의 얼굴을 받아드려 박고 있을까 왜가리 황새는 물가에서 지금 기도 중이다 깊이 깨달음을 얻는가 봐 자고 일어나면 생명을 포획할 궁리잖아 팔거천은 바닥까지 들어내 놓았다 삶은 경쟁이라 하지만 밑바닥까지 드러내 보여 아무 사심이 없다 한다 환한 얼굴로 인자한 자세로 고요히 침묵한다 팔거천에 마음 받아 나를 되돌아본다 인자하면 정숙하다

자작글-021 2021.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