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흑산도에서

흑산도에서 /호당/ 2021.9.10 하루 중 가장 늦게 물드는 노을 사랑을 잃어버린 비애 같다 농익은 사랑이 파열하면 불덩어리가 되어 가슴으로 파고들어 갑니다 얼마나 먹먹했으면 머리 팍에 비애의 불똥이 뚝뚝 떨어지는가 해님은 알아차려 더 붉게 더 슬프게 비춥니다 이 광경 눈치챈 배는 꿈적 않고 지켜주고 바다는 슬픔에 깔려 끊임없던 파도는 고요하다 비애가 비애를 삼키면 저렇게 붉게 타는가

자작글-021 2021.09.09

녹용 홍삼 침향환

녹용 홍삼 침향 환/호당/ 2021`.9.10 (鹿茸 紅蔘 沈香 丸) 태수는 군복을 입고 있다 씩씩한 남아로 의무를 수행하는 중 이 관문을 통과하면 남아로서 유단자가 된다 사병 봉급을 알뜰히 쌓아 녹용 홍삼 침향 환을 장전 裝塡하여 발사했다 내게로 명중했다 효의 탄환이 내 가슴에 박힐 때 태수 얼굴에 서광이 발산했다 발상 發想이 가상하다 할머니와 나 더 펄펄해진다 태수야 군 복무 잘 해

자작글-021 2021.09.09

김태수

김태수/호당/ 2021. 9.9 가상공간을 휘젓는 젊은이들 중 태수는 군복을 입었다 내 딸의 아들 ‘외’라는 접두사를 때어버렸다 안이나 밖이나 혈류는 반반씩 섞여 흐르니까 자나 깨나 내자와 함께 발화하는 텔레파시가 그 애 힘을 실어 주기 바란다 군화 끈을 풀어 정돈한 내무반 ‘효’라는 실탄을 장전 裝塡해 내게로 발사했다 녹용 홍삼 침향 환이 내 앞에 명중했다 태수의 맘을 음미하며 삼킨다 이걸 장전 裝塡 하겠다는 발상 發想이 장하다

자작글-021 2021.09.08

갈대는 쓰러지지 않는다

갈대는 쓰러지지 않는다/호당/ 2021.9.6 쌀쌀한 겨울바람 맞는 갈대가 산기슭에서 서걱서걱 소리 낸다 누추한 옷매무시를 하고 저무는 그늘 맞아 움츠리는 갈대 미친바람 분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버티는 갈대 공사판 시멘트 자갈 지고 꼬부라진 가장 갈대는 휘어지지 쓰러지지 않는다 하루 일을 마친 새 떼들 배를 불리고 집으로 간다 내 등짐에서 밧줄 늦추면 우르르 쏟아지는 시멘트 자갈 이렇게 가벼울 수가 퇴근한 배는 홀쭉하고 허연 갈대는 휘어지지 쓰러지지 않는다 가정을 짊어진 가장이란 이름 하나 휘청거린다

자작글-021 2021.09.05

지금이 행복이다

지금이 행복이다 /호당/ 2021.9.5 내가 둔 자리에 대한 인식이 깜박깜박해버려 그만 허둥지둥할 나이 그의 낯바닥은 이랑을 만들고 검버섯을 키워내고 있다 버섯농장 경영해 봐야 소득 없는 자연이 내린 선물인 걸 내 몸 구멍으로 새어나갈 통증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어쩔 도리 없는 자연적인 누수 현상인 걸 내일은 모른다 지난 것은 추억이고 지금이 행복이다 노을이 불타고 있다 언제까지 붉어질까 내 몸에서 화근 내가 난다

자작글-021 2021.09.05

남기려는 집착

남기려는 집착/호당/ 2021.9.5 나도 살다가 정표 하나 남기겠다고 말했다 400여 장의 창작물을 꿰어 책자가 되는 생각 가상공간에 매달아 놓지도 않고 두둑이 쌓은 메모지는 바람에 날려가기 쉽다 바늘과 실이 있어야 금목걸이가 돼지 불쑥 내게 내밀었다 내 똥 줄기 가늘어 마음 아리다 대책 없이 가죽 남기는 데만 집착 내가 떠날 때 여분으로 꿰어내면 남길 수 있겠다고 했다

자작글-021 2021.09.05

계절 타는 여인

계절 타는 여인/호당/ 2021.9.4 유독 봄기운을 샘솟듯 한 여인이 말뚝에 메인 암소처럼 됐다 신랑은 매일 봄 아가씨 따라 등산가거나 고스톱 하든가 밖으로만 돌았다 담 넘어 넓은 풀밭을 마음껏 뜯는 암소처럼 나도 자유를 찾았다 따라온 해님도 등을 밀어주니 황소들 틈에 여왕처럼 대접받고 어느 사이 옥시토신이 줄줄 흘렀다 정말 사랑한다 아니다 사랑한다 아니다 절벽을 때리는 파도처럼 찰싹찰싹 묻고 답하고 봄 타는 여인이 창졸 하게 계절에 쫓다 그만 신랑이 수갑을 채우듯 꽁꽁 묶었다 유독 봄 타는 여인을 남편의 무지가 옥시토신을 학대한 것이다

자작글-021 2021.09.04

기상 이변

기상 이변/호당/ 2021.9.3 점점 더워지고 점점 추워지고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있을지라도 내 시는 끄집어내어야 한다 같은 민족 혈육이라 외치는 자여 기상이변이 와도 내 집에서 겪는 것이 좋을 것을 짝사랑하듯 하는 기상이변은 싫다 가장 좋은 말 동족 한 핏줄 냉해든 열해 熱害든 가뭄이든 지금 가장 좋은 온도로 욕탕을 즐기는데 기상이변이라면서 열을 가하는가 북극해 얼음이 모두 녹는다고 해도 아황산가스를 마신다고 해도 내 집에서 겪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시의 싹을 틔워 꽃 피워내야 한다 남북이 냉해로 오싹 얼어붙는다고 해도 내 시를 움 틔우리라 기상이변은 없으리라 믿는다

자작글-021 2021.09.03

운암지에서 보낸 마음 한토막

운암지에서 보낸 마음 한 토막/호당/ 2021.9.2 지금 운암지는 가을이 찾아와서 단풍 들고 있어요 붉어가는 처녀 가슴에 노을이 어루만져도 태연한 듯 버티다 그만 홍조를 띱니다 운암지에 내린 영롱한 순정들 유독 총각 가슴에 불 질러 이글거려도 와락 안기려 하지 않아 더욱 애달은 파랑 운암지를 에워싼 스크렁 구절초 분홍바늘꽃이 가을 타는 여인처럼 마음 스산합니다 술 취한 아버지가 함지산 정상에서 고래고래 야단칩니다 장가 시집 못 보내 애간장 타는 듯 하산하면서 ‘그만 골라라’ 울긋불긋하면 됐지 더 바라느냐 그만 분에 겨워 운암지에 거꾸로 서서 마음 추스릅니다 노을에 젖은 운암지가 단풍을 흔들어 댑니다 파랑 타는 잉어 떼도 물들었네

자작글-021 2021.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