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잠이 보약

잠이 보약 /호당/ 2021.8.19 세월에 좀 먹기 시작하자 내 잠에까지 미쳐 전에는 깊은 우물 파더니 얕거나 짧아졌다 하루의 먼지는 밤잠을 통해 지워지는 시간을 설치고 그대로 낮을 맞는다 점점 쌓이자 부패할 포자를 싹 트게 했다 가장 무서운 고문은 하얀 밤으로 지새우는 일 늙을수록 채찍 없는 형벌을 받는다 채면 상 요강을 옆에 끼고 있을 수는 없어 들락날락 밤새운다 잠을 살찌우는 보약 처방받아 승차하면 고속도로를 단숨에 달려 종점에 도착한다.

자작글-021 2021.08.19

개망초꽃

개망초꽃/호당/ 2021.8.18꽃을 보고 虐待하려 들거나마음에 티가 붙어있거나 하는 자는눈에 광기가 낀 망나니 아닐까누구에게 개망신당해도아무렇지 않은 자는개망초꽃을 함부로 꺾어 한을 풀려 한다길가나 어디든 뿌리박아매우 흔한 개망초꽃자기 일족 번창을 위해지린내를 마다치 않고뿌리박아 생의 보존성과 끈질김모질게 살아 개망초꽃 피워더 번성하는데 개망나니 짓 하는 자 개망초꽃에 시비할 마음 버려라

자작글-021 2021.08.18

한여름날 저녁 식사

한여름날 저녁 식사/호당/ 2021.8.17내 나이 달걀 한 *꾸리어 쯤한여름 밭매고 밭둑 깎고 물길 내고땅거미 기어갈 때쯤이라야쓰던 **연장 주섬주섬 챙겨 지게에 올리면 하루 일이 끝난다달은 밝고 멍석 끝 모깃불 연기하늘 퍼지고 대가족이 멍석 빙 둘러앉는다국시 한 ***버지기를 한 그릇씩 담아내면밑바닥 조금 깔릴까 말까말없이 후룩후룩 거머들이는 젓가락질 된장 풋고추 꾹 찍어 우적우적 오그라드는 내 혓바닥 호호 찬물 그릇에 달이 출렁거리며 내 그럴 줄 알았다 카이나는 잽싸게 빈 그릇 딸딸 긁다가 버지기 보면서 껄떡껄떡 밑바닥 짤그락 훑어 주면 게 눈 감추듯 하고 좁은 ****툇마루에 벌렁 누워 고된 하루 일은 스르르 가라앉고하늘별을 헤아린다한창 먹어 치울 나이 저녁 국시 맛은 어머니 맛이었다* 달걀 ..

자작글-021 2021.08.17

유아들

유아들 /호당/ 2021.8.16 팔거천을 흐르는 해맑은 물살 서로 잡으려 헤적거린다* 물그림자 뱅글뱅글 돌아 밉상스럽게 귀엽다 아직은 몰라 흘러 흘러가다 보면 막힘없이 흐를지 뱅글뱅글 돌지 곤두박질칠지 맑게 맑게만 흘러라 돌을 던지는 사람 물장구치는 사람 황새 물총새 훼방 놓아도 팔매질 말라 해맑게만 흘러라 밉상스럽게 귀여운 것들 *활개 벌려 가볍게 저으며 걷다

자작글-021 2021.08.16

여름 끝 무렵

여름 끝 무렵/호당/ 2021.8.16 밤잠 설쳤다고 벽보고 짜증 부리고 여름은 덥다는 것을 알면 호들갑 떨지 말고 지긋하게 즐기는 방법을 키우는 게 어때 개 낮잠 퍼지게 자고 해수욕장 폭포 계곡 화면만 좋아해도 여름은 지나간다 시원한 냉국수 냉면 좋아한다고 그러면 여름이 시원해지나 냇물에 발 담그고 수박 가르고 팥빙수 먹어 봐 여름을 잘 아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보다 즐기는 사람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낸다.

자작글-021 2021.08.16

쥐구멍 막다

쥐구멍 막다/호당/ 2021.8.15 사회적 거리를 점점 조여온다 쥐구멍 막아놓아 봐라 새길 내어 즐기고 간다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않는 친구 가끔 안부를 묻는다 나 햇볕 잘 쬐면서 밀림에서 영감받아 들판에서 시맥을 짚는다고 맥이 잘 흘러간다고 다람쥐 쳇바퀴 잘 돌린다고 밤 세 톨처럼 모여 장벽을 뚫고 속삭이다가 같은 맛 씹어 삼킨다 그러면 막힌 구멍 뻥 뚫린다 쥐구멍 막는 일은 헛김 막는 것이다

자작글-021 2021.08.15

적색 신호

적색 신호/호당/ 2021.8.14 학정로 느티나무 가로수 변 의자에 앉았다 8차선 도로 적색 신호에 자동차는 꽉 고였다 녹색 신호에 시원하게 궤적을 비워낸다 바로 저거야 내 머리에 고인 것이 있나 시어를 끌어내려는 마음만 가득하다 백지는 야유했다 머리를 채우라고 시집을 읽어 시어를 박으라고 요의 尿意를 참지 못해 변기에 앉으면 한두 방울 경전을 읽어야지 경고등(적색 신호)에 걸려 있다 머리를 채우기 위해 나는 비워내는 중이다

자작글-021 2021.08.15

사랑의변주

사랑의 변주-1/호당/ 2021.8.13 사랑은 음색 음질 각양각색으로 연주하다가 음원 이탈하면 범죄이거나 벌금 부과를 면치 못한다 한 창 꽃 필 무렵 스타카토* staccato 창법은 너무 강렬해서 현이 툭툭 끊어진다든가 꽃봉오리 목이 끊길 수도 있다 장미에 벌이 찾아드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아모로소우** amoroso로 연주하다가 툭 불협화음이 나오면 연주는 엉망이 되거나 간혹 시시비비를 따지다가 고발당할 수 있겠다 연주는 한창 무르익어 백조는 호수를 미끄러지듯 하다 갑자기 푸리오조*** furioso 연주는 미친바람으로 인하여 백조는 변형된 날갯짓 이건 내 뜻이 아니다 변심의 칼날 세우면 변주는 추잡한 연주로 끝내버린다 깨 쏟은 듯한 고소한 신혼 맛 잔잔한 호수에 화음으로 카덴차**** caden..

자작글-021 2021.08.13

어머니

어머니/호당/ 2021.8.12 밤마다 여우가 울고 대낮에 산돼지 출몰한 시절 달이 지새는 나이에 나를 낳으셨다 인간 되게 키우시려 숱한 돌 자갈밭 가꾸시고 애면글면 애타시다가 손가락이 뭉툭해지셨다 또래는 벌써 가정을 지키는데 혼자만 막차 타고 빈방을 뒹구는 그 꼴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 아프셨을까 민족중흥의 깃발 막 펄럭일 때 짝 찾아 팔짱 켰을 때는 마음 조금 한 번도 모시지 못한 이 죄를 굽어 주소서 집 한 칸 장만하고 내외 발 뻗고 있어요 맘 놓으시고 오늘 밤 더 밝게 비춰주세요

자작글-021 2021.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