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추어탕 소묘

추어탕 소묘 /호당/2021.8.11 복 땜하자고 불러냈다 추어탕? 상주 추어탕만 기억한 나를 더 좋은 곳 있단다 미꾸라지 뼈랑 살점이 없네 어린 배추 삶은 것 한 뚜깔 향도 살점도 뼈도 없는 현대판 추어탕 현대식 요리법 시대가 변했는데 안 변하면 안 되지 그래도 원조 추어탕이란다 보리밥집에 들르면 꽁보리밥 나오는가 안동 국시 집에 들면 안동 냄새가 조금 난다 뭐 시대가 그러려니 하는 게지 옆 손님 맛있게 드신다 원조란 족보 따질 일 없다 다음 발길 옮겨보면 될걸 원조 맛도 변하는 게 현대판이다

자작글-021 2021.08.11

총 한 자루

총 한 자루 /호당/2021.8.10 탕탕 명중해서 살상하는 거다 내 손에 총이 있다면 누구를 견주고 있겠나 총구를 거두어라 지난 적 그들은 총을 권력으로 겨누었지 미워죽겠다 나를 겨눈 자에 총구를 겨누고 위협이라도 하고 싶었다 소리 없는 총 한 방 쏘아 그냥 고통받는 꼴 본다면 가슴 후련하련만 늙은 손에 총 하나 공짜로 쥐여 준다 해도 소용없어 방아쇠 당길 힘조차 없을뿐더러 누구를 겨누는가 내 심장부터 겨누어보라 마음을 곱게 쓰고 총구를 거두라 누구를 용서하기 전 나를 용서하고 총구를 버리라

자작글-021 2021.08.10

묘령 앞에 마주 앉다

묘령 앞에 마주 앉다/호당/ 2021.8.10 여기는 도시철도가 달리는 중이다 내 시선은 양 능선 따라간다 하얀 능선이 미끈하게 흐르고 능선과 능선이 마주친 곳에 현빈 玄牝이* 옥수를 흘려 대지를 살찌게 한다 보라 저 골짜기에서 현빈은 기다린다 몸을 낮추고 인자한 얼굴로 궁전에서 햇빛을 맞을 자세는 하얀 양다리를 쭉 뻗는다 골짜기의 물은 언제나 마르지 않고 흐른다 미끈한 두 능선 사이 계곡으로 흐른다 불쑥불쑥 솟기를 풀어내는 세상의 산마루여 현빈은 만물을 생산하는 궁궐을 못 본 체하려나 벌써 희끗희끗 눈(雪 )맞는 체면에 묘령 妙齡을 모른척해야 한다는 그 잔인함이여 *노자의 6장 谷神不死의 章에 나오는 玄牝이란 선녀. 새끼를 낳는 암컷. 만물을 생성하는 道.

자작글-021 2021.08.10

길을 걷다

길을 걷다/호당/ 2021.8.9 수만 갈래의 길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선현의 말 나는 길을 걸으면서 생각한다 이 길이 내 길이 되기 위해선 길을 낸 이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 길의 종점에 맺힌 붉은 사과 하나 어떤 것을 고를까 같은 길이라도 제 마음에 먹물이 베거나 가시가 돋거나 쓰레기 잡것이 베거나 하여 궂은 날씨를 걸으면 헛길을 걷는다 다른 길을 걷든 같은 길을 걷든 걷는 각도와 속도와 마음에 낀 길에 따라 걷는 모양이 달라진다 바른길을 걸으라는 말에 내 마음의 색깔부터 두드려 본다

자작글-021 2021.08.09

북어

북어 /호당/ 2021.8.9 허름한 마트 좌대에서 누추를 무릅쓴다 우리는 쾌로 행동한다 비록 딱딱하고 메말라 코 꿰어 있지만 융통성은 발휘한다 메마른 인간아 도무지 말이 통해야지 꼬장꼬장해서 타협하려 들지 않으니 바다에서 명태로 육지에서 북어로 개명했다 속속 파고들면 진가를 꼭꼭 품어있다 메마른 인간아 베풀 줄 알아라 한 쾌를 낱낱으로 풀어주면 입 딱 벌려 나는 북어다 외치며 진 국물 토해놓고 가겠다

자작글-021 2021.08.08

시비 촌

시비 촌/호당/2021.8.8 빽빽이 늘어선 시비들 이건 명시 반열에 오른 시들이다 영원히 남을 명시 명시 촌에 들면 명시의 울력이 불끈 솟아 내 명치가 불끈해진다 내 심연은 바싹 말랐다 어디서 근원을 찾아 심연을 촉촉이 적셔 채울까 시비 촌에 들렸으니 시비를 읽고 시비를 음미하고 원천을 찾아들면 시비의 뿌리에서 보내온 영혼들 심연에 촉촉이 적시다가 시혼이 고일 것이다 시비 촌의 한 가족이 되고 싶다 심연을 더 깊게 파고들어 명 시어를 샘솟게 하리라

자작글-021 2021.08.08

저녁 무렵

저녁 무렵/호당/2021.8.8 하루를 마감하는 모든 사람이 꾸역꾸역 개찰구를 빠져나온다 반겨줄 가족이 웃음 띤 얼굴이다 새들도 배 채웠으니 잠자리를 찾아 떼 지어 날아간다 나는 대로 한 모서리에 과일 푸성귀 노점상을 펼쳐놓고 하루를 버틴다 흘깃흘깃 눈 맞추는 이 드물고 나는 얼굴보다 발끝의 방향만 본다 삼복더위 섭씨 37,8도 땀 흘리는 것은 나로부터 힘을 빠지는 것이다 이것쯤은 견디고 버텨야지 토끼 같은 애들 여우 같은 마누라 눈망울이 얼른거린다 돌아갈 실속이 적구나 맥빠진 손으로 주섬주섬 판을 거둔다.

자작글-021 2021.08.08

별/호당/2021.8.8 세상에서 찌든다 내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벌레 먹기 시작한 것 같다 이럴 때 밤하늘별을 바라본다 반짝반짝 걱정 없어 한결같이 다정하게 보인다 언제 대하더라도 같은 낯빛 사람 대하는 첫인상이 중요하다지 내 인상은 너희에 어떻게 투영될지 별이라고 어려움이 없으랴 난관이 닥치더라도 낙담하지 않는다 옆별이 낙오되어 별똥별로 사라진다 별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인걸 항상 밝은 얼굴로 남에게 호감을 주고 내 굳은 얼굴에 누가 다가올까 내 맘 고쳐먹어 사근사근 반짝반짝 빛내 맞자

자작글-021 2021.08.08

게발선인장

게발선인장 /호당/ 2021.8.7 네 윤기 자르르 푸른 물 뚝뚝 떨치듯 꽃으로 유혹하는 데 반하여 너를 품었다 사랑이 지나치면 탈 난다 그것도 모르고 먹어라 먹어 윤기는 서서히 물러가고 대신 검은 수심이 짙어진다 돌팔이 의사가 사람 잡는다고 일어나라 일어나 더욱 사랑을 듬뿍 쏟아붓는다 바깥 섭씨 40도에 근접하고 베란다에서 거실로 에어컨 바람 며칠간은 살아나는 듯 반짝반짝 아닌 걸 잎을 똑똑 떨어뜨린다 무식이 빚어낸 결과 넘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말을 증명한다.

자작글-021 2021.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