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3 417

해바라기

해바라기 /호당/ 2023.12.2 겨울 오후 해님은 더욱 자애롭다 늙은 얼굴들 겨울 운동이라야 걷고 난 다음은 삼삼오오 모여 해바라기가 된다 해님 바라보고 경배하면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져 준다 골 깊이 파인 주름살 한결 부드럽게 메워져 훈기를 느낀다 공원 벤치 남향에 앉아 그리운 추억을 반추하면서 묵언한다 어디 간들 반겨줄 사람 없어 끼리끼리 이심전심이 어디냐 그래도 어디냐 죽지 틀고 종일 TV를 바라보지 않으니 밖에 나와 해바라기 되어 맑은 숨 쉬고 오가는 사람 구경하고 하루를 톺아간다

자작글-023 2023.12.03

11월 마지막 날

11월 마지막 날에/호당/ 2023.11.30 추위는 물러서지 않는다 만나자는 전갈 좋아 따뜻한 맘 서로 비벼 훈기 일으키자 점심 같이하자는 말을 듣고 주변이 마르지 않았다는 착각이라도 좋다 막다른 골목에서 즐기자는 친구들 한 달 두 번 살아 있다는 듯 지문을 꽉꽉 박고 오지 오늘 만난 친구들 명함 서로 바꿔 읽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맛 한 그릇 공유하고 검버섯 지우고 맘이 훈훈해지자 추위는 한 발 누그러진다 11월 마지막 날 잘 가라

자작글-023 2023.12.02

순망 旬望

순망 旬望/호당 2023.12.1 열흘과 보름을 각각 구분 말고 한데 어울려 순망이란 말이 참 편하다 열흘 피다 시든 꽃이나 보름 피다 시든 꽃이나 행불행은 무의미한 말장난 거기서 거기다 열흘날 심은 배추 씨앗이나 닷새 후 보름날에 심은 씨앗 자라는 동안 별 차이 있겠나 닷새 앞 태어났다 하여 우뚝하지 않아 무람없이 세상을 건너는 길목엔 성공과 좌절은 순서 없지 순망이란 말처럼 한데 어우르면 모두가 편안하다

자작글-023 2023.12.01

나만의 비밀

나만의 비밀/호당/ 2023.12.1 사람은 들어내기 싫은 비밀 한 뭉치씩 갖는다 나는 비밀이 없을 수 없다 대중 앞에 들어내 놓지 않고 뻔뻔스럽게 연설하는 연사 뒤를 돌아 비상구를 열면 비밀 뭉치가 금괴에 숨겨져 있다 설교하는 목사의 말 한마디 참 좋은 말이다 그도 똥오줌 쌀가 저 사람 양심은 아주 맑은까 흑점 하나 있을까 어제 화장실에서 그를 보고 놀랐다 겉으로 멋지게 포장한 마음 한 뭉치 나는 들어내 보이고 싶지 않은 검은 돌 하나 있다 나 혼자 간직하고 통로가 막힌 폐쇄회로다 나도 모르게 폐쇄회로를 열고 자랑하고는 아차, 얼버므르다 합리화하려 흰 페인트칠을 한다 .

자작글-023 2023.12.01

어머니

어머니/호당/ 2023.11.29 어머니 안엔 어머니는 없다 내 가슴엔 어머니는 있다 누구나 어머니를 갖고 있다 어머니 부르면서 치마꼬리만 잡고 자랐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리움이야 없겠나만 상상의 흑백 모니터에 언제나 또렷이 보인다 막내 저놈 인간 되어 짝 얻어 살까 마음 졸이셨던 어머니는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꼭 잠긴 비상구였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내 가슴에 안고 있다 잠긴 비상구를 나는 열 수 있어 어머니의 속마음 훤히 알아차린다

자작글-023 2023.11.29

사회성

사회성 /호당/ 2023.11.29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사회에서 헤엄이 서툴러 귀퉁이에서 물장구만 친다 앙 떼에는 우두머리가 있다 우두머리에 따라 불알이 느슨하거나 찰싹 붙거나 한다 새 우두머리를 만났다 양 떼는 겁에 질려 납작 엎드린다 사회성 넓은 자는 느긋하고 나는 납작해진다 밤에 교무실에서 피아노 연습에 열중했다 아니 갑자기 피아노 열쇠를 차압당했다 너는 그래라 아부란 것 모른다 병들고 불편해진 우두머리 전전하다 만나게 되니 그는 내게 찰싹 붙는다 사회성은 이런가 불 밝힐 줄 몰라 골목만 다닌다 닌다

자작글-023 2023.11.29

노인복지관 점심시간

노인복지관 점심시간/호당/ 2023.11.29 노인복지관 점심시간 연출은 고정한 구도 위에서 행한다 매일 같은 구도에 계절 따라 바뀌는 연출자의 디자인 길게 늘어난 인간 밧줄엔 허기증이 붙어 있고 노인들 명줄 잇는 줄이 된다 각기 재질 키우는 강의는 마다하고 그냥 값싸고 실한 한 끼 때우려 성시 이루는 풍경화 한 폭 먹어야 산다 낯익은 풍경을 연출하는 배경에 국고가 있어 후한 맛 한 끼는 복지다

자작글-023 2023.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