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나하고 하고싶어 '응'

나하고 하고 싶어 '응'/호당/ 2021.12.13 이건 지옥이다 목 타올라 나하고 하고 싶어 ‘응’‘응’ 높은 담쌓고 넘지 말자 다짐한 손가락 맹세 맘은 맘대로 섞어 ‘응’‘응’으로 펄펄 끓여 놓아도 하고 싶어 ‘응’‘응’ 맞장구는 북채만 들고 허공을 친다 아무리 쪽쪽거려도 ‘응’‘응’ 울림만 끌어안고 메아리는 없다 해를 삼키고 달을 삼키는 심정은 같이 가졌어도 넘어야 이룰 수 있는 ‘응’을 음향으로 채워지는 울림 알차게 영근 연애 ‘응’ 으로만 삭여야 한다 선을 넘지 않은 올바른 대답 ‘응’이다 * 문정희 ‘응’ 에서 차용

자작글-021 2021.12.13

12월도 벌써

12월도 벌써 /호당/ 2021.12.13 깜박깜박 잘 잊어 가까스로 마지막 골목에서 서성이는 나이 벽에 걸린 일력 한 장씩 떼면 새날 맛 나는 것도 아닌 떼지 않아도 노을은 어김없이 서산을 물들이는 날들 삶이란 어디든 뿌리내린 풀꽃처럼 세월에 맞서다가 가야 할 때 알아차려 서둘러 뒤를 챙기는 것 삭정이 아닌 바에야 바람맞으면 흔들고 눈비 맞고 거뜬히 자고 일어나면 긴 하품하고 창문 열어 앞산 솔바람 맞아 교감한다 세월에 오래 맞설 수 있겠나 독침을 맞아도 내 몫인 걸 외로운 풀꽃도 군락이면 보기 좋을 것을 12월은 서러운 달도 외로운 달도 아니다

자작글-021 2021.12.12

길거리에서 바지를 샀다

길거리에서 겨울 바지를 샀다 //호당/ 2021.12.12 붙박이처럼 십자로 길목 지키는 난전 장사들은 기다림에 익숙한 자다 삶의 짠맛에 절여있는 듯 보인다 두툼한 겨울 바지를 샀다 후하게 샀다고 생각한다 얼굴 쳐다보고 걸맞지 않은 짓이라 한마디 들었다 백화점 유명상표가 날 띄우나 거기가 거기 별것 아니다 우아한 숫 공작새를 보면 안다 암컷에 대한 품격 있는 구애 유명 블렌드를 입거나 길거리 바지를 입거나 비포장 자갈길 운행하면 덜컹 기우뚱 포장길엔 소리 없이 미끄러진다

자작글-021 2021.12.12

통증

통증/호당/ 2021.12.12 막다른 골목에서 서러운 나이 척추협착증으로 왼발에 통증이 저리도록 몸서리친다 이것만 아닌 여기저기서 누수 된다 오래 견디니 모두 어눌하다 맏이가 내게 최후 통첩하듯 했다 a 병원장 두려운 처방 당장 x-ray 촬영을 다그쳤다 b 병원은 정상이다 a 병원장의 종전보다 가혹한 처방인 듯 수면장애 배변 저림 통 등등 통증은 시련이다 몰래 진통제로 다스린다 앞산 잣나무가 가죽이 드러나고 찍히고 뿌리가 베이고 나무는 고통으로 진물 흘린다 내가 해줄 일이 별로 없다 안타깝다 하늘의 매질인가

자작글-021 2021.12.12

숟가락

숟가락 /호당/ 2021.12.10 숟가락 4개가 한 테이블에서 부딪혔다 도착점이 보일 듯한 황혼 열차 안 만남은 시작일 수 있겠다 마주한 두 쌍 우선 겉만 부딪혀도 좋아 속까지 울림 닿지 않아도 돼 늙은 주먹 맞닿을수록 생의 가마는 호사스럽고 잇소리 齒音의 울림까지 공유할 것이다 숟가락 부딪고 온 오후의 그림자가 따뜻하다 삶의 열차가 더 호화로워지겠다

자작글-021 2021.12.10

참새

참새 떼 /호당. 2021.12.10 참새란 낱말 뱉어 보면 맘이 맑아지는 것 같다 참과 거짓이 뒤범벅된 세상에서 새 중의 새 ‘참새’ 벼 조가 익을 무렵 참새 떼 쫓던 어릴 적 얄밉게 구는 참새 보고 내 맘 귀퉁이에 생긴 ‘얄밉다’ 낱말 누굴 얄밉게 보는 맘이 참새처럼 참으로 굳지 말자 벼를 쪼아 먹거나 조를 쪼아 먹거나 생활방식인데 참새를 얄밉게 보지 않겠다 새 중의 새 ‘참새’ 이름값처럼 ‘참’인 삶을 살렸다

자작글-021 2021.12.10

내 시집

내 시집 /호당/ 2021.12.9 철모른 망아지 앳된 아기의 배냇저고리 같은 시집 무식이 용맹한 무지렁이를 북 치고 나팔 부는 바람에 경계가 모호한 시집 들고 우쭐한 몸짓 대가의 시집에 부딪자 펑크 난 타이어가 되고 무식한 이파리가 된서리에 고꾸라졌다 입김으로 타이어를 팽팽하려 5천여 편의 시로 부풀렸다 팽팽한 타이어는 새 시집 싣고 시의 맥을 닦아 굴러간다 내 보폭은 아직도 좁다

자작글-021 2021.12.08

깎는다

깎는다/호당/ 2021.12.9 깎는다는 행위는 선이다 깎아서 내가 더 나다운 인품을 지닌다면 얼마든지 행해야 한다 연필은 깎고 잔디를 깎고 손톱을 깎아야 반듯해진다 바윗돌을 깎고 덜어내고 갈아야 예술품이 된다 백화점 정찰 표를 보고 깎으려 치근대면 낯 뜨거운 일이다 재래시장의 물건은 깎고 덜고 서로의 이익이 공존한다 내 허욕을 깎아내어 한층 밝고 나다운 인품을 지니지 않으리

자작글-021 2021.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