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석양 /호당/ 2021.12.8 이맘때 어김없이 산불이 일어난다 서쪽 산 정상에서 방화범 찾지도 알려 하지 않은 화려한 산불이다 맹렬한 불꽃 연기 한 점 탁탁 불타는 소리 어느 것도 재현하지 않은 까마귀 떼 새들 산불 속으로 들어간다 유유히 사라진다 아무도 죽지 않는가 봐 저렇게 활활 불꽃에도 소방차 경보음 없다 하늘의 조화 저 장면 뒤편 캄캄한 적막이 밀려오겠지 자작글-021 2021.12.07
콧구멍 콧구멍 /호당/ 2021.12.7 누구나 갖는 콧구멍은 콘센트 같다 이는 세상을 관조하는 망대 신선 新鮮 하게 맞을 그 누구를 기다린다 플러그만 꽂으면 어둠을 쫓아 밝힌다 아니 밝히면 희한 稀罕 한 세상을 펼칠 수 있다 맨 콧구멍을 찾는 바람 허파꽈리를 깨워 내 몸을 돌고 돌아 삶을 도약한다 콧구멍 안으로 들어가면 삶이 파닥거리고 나오면 수만 갈래의 길에 숨 불어낸다 자작글-021 2021.12.07
바닷가에 살다 바닷가에 살다 /호당/ 2021.12.7 소나무 숲만 맴돌다가 날개 하나 더 달아 바닷가로 옮겨 앉았다 새롭게 펼친다 날개가 더 퍼덕인다 비릿한 바다 향기 쉴 새 없이 철썩철썩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닷바람이 억세게 차다 거침없이 따귀를 갈긴다 번쩍 정신 가다듬고 날개를 점검한다 옥수수 조밥 보리밥보다 아가미 등살이 부드럽다 억센 배짱이 좁은 골을 메워 넓어져 간다 밀려왔다 밀려감이 끊임없이 철썩거림이 삶이다 자작글-021 2021.12.07
사랑-1 사랑-1 /호당/ 2021.12.7 사랑은 따뜻하다 깊숙이 들어온 햇볕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남향 창가는 사랑이 소복 고여 끓는다 겨울 길 가는 웅크림이 종종걸음이 발자국이 떤다 말벌 떼에 쫓기듯 차디찬 사랑이다 계절을 잊은 쿠페아 칼랑코리가 사랑에 취해 알록달록 색으로 표현하면서 활짝 한 낯빛이다 바깥에서 벌벌 떨다 겨울 남향 창가로 와보라 사랑이 기다린다 구들장 아랫목 밥 두 그릇 이불 쓰고 따뜻한 말 주고받고 있다 사랑은 겨울 창문을 넘어온 햇볕이다 자작글-021 2021.12.06
겨울 창가의 사랑 겨울 창가의 사랑/호당/ 2021.12.6 창가 시클라멘이 빳빳이 세워 한 줄기 햇볕처럼 광채를 낸다 그건 아내의 사랑이다 창만 열면 금방 사라지는 광채 그 안은 찬바람 베고 함께 몰고 온 회오리바람 뱅글뱅글 더 속을 파고들면 용솟음칠 듯한 온기가 있어 사랑이 사라진 듯 겨울 참나무 같다 겉만 보고 좌절할 듯한 얼뜨기* 아내는 언 땅에서 기를 빨아 가슴 녹여 매화꽃 봉오리 피우고 있어 그건 아내의 사랑이다 햇볕이 어디 있던 쿠페아는 연중 꽃피우고 얼뜨기는 광채에 겨워 있다 겨울 창가의 사랑은 따뜻하다 *겁이 많고 어리석으며 다부지지 못하여 어수룩하고 얼빠져 보이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자작글-021 2021.12.06
겨울 갈대 겨울 갈대/ 호 2021.12.6 긴 그림자를 그리면서 가누지 못하는 갈대 노을 뒤에 닥칠 쌀쌀한 바람을 어떻게 견디려나 언뜻 부는 바람에 그만 허리 꺾이다니 개쑥부쟁이를 보라 가지만 흔들고 대들보 같은 줏대는 약간 흔들릴 뿐 허리 꼿꼿할 때 헛바람에 세월 다 보내고 꺾인 허리로 하얀 머리카락만 날리고 있다니 쌀쌀한 겨울바람 어떻게 견디려나 자작글-021 2021.12.06
김장 담는 날 김장 담는 날/호당/ 2021.12.4 딸들과 함께 점심 식사는 꿀단지 같다 쉽게 만나기 먼 거리 막내는 오랜만이다 잠깐 만난 얼굴 부녀간 애틋한 정 흐른다 건강식품 화장품 등 너희 마음 주고 간다 매일 효심을 먹고 바르고 너희를 가까이 두겠다 삼 모녀가 맞이 집에 모여 김장 담아 나누어간다 매년 행사 형제간의 우애를 담가 간다 발효는 개인 몫 내자는 후견인으로 가고 난 저녁 그 자리가 아랫 이빨 빠진 듯 씹히지 않는다 빈 공간이 너무 허하다 김치 맛에 우애의 맛으로 발효하겠지 자작글-021 2021.12.05
'똥고집' 간판을 보고 ‘똥고집’ 간판을 보고 /호당/ 2021.12.4 구린내 나는 고집일까 콘크리트 옹벽 같은 어찌할 수 없으면 똥고집인지 고집도 나름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용맹한 무쏘처럼 밀고 나가는 용기가 똥고집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안 올려 너희 가격 올려 고객 가슴 울려 훑지만 아직은 내 수고만큼 이윤이 있어 고통 덜어 함께 나누고 싶어 물푸레나무는 겨울 거뜬히 이겨내는 것은 고집이 아니다 올바른 삶의 집념이다 똥고집엔 구린내는 없다 고소한 닭볶음 냄새 맡은 고객 문고리 불나도록 들락거린다 자작글-021 2021.12.04
아가 雅歌 아가 雅歌/호당/ 2021.12.4 아. 제발 그대가 내게 입 맞춰 주었으면* 한 번만 하프 연주해서 현을 퉁기듯 더듬어 보았으면 그 찬란한 몸매를 내게 기대주었으면 허공의 뜬구름 같은 망상을 흩었다 모였다 금빛 찬란한 헛꿈이라도 즐기면 좋았을 미끈하고 하얀 종아리 봉긋하고 하얀 젖무덤 거기 바람처럼 휘저어 부딪혀 봤으면 가당치도 않은 거를 자벌레처럼 한 자 한 자씩 드디어 그의 요점에서 한 끼 나누고 한 텐트에서 푹 쉬어 봤으면 좋겠다 *성경. 아가, 첫 구절 자작글-021 2021.12.04
시심으로 물들려 지려는 마음 시심으로 물들려 지려는 마음/호당/ 20021.12.4 나는 시심이 베이지 않아도 마음은 활활 탄다 유명 시인의 시를 읽을수록 나도 시로 물들어질 수 있을까 선인들이 파 놓은 시의 우물 덤벙덤벙 들어 몸 씻고 맘 씻고 때로는 다이빙 때로는 곤두박질 때로는 따라잡기 선인이 제시한 방향으로 쫓으려 산으로 들로 가사 밭으로 냇물에 빠져 흠뻑 몸 적시고 겨우 와랑 소리 듣고 이런 우물이 시로구나 시의 곳곳을 여러 번 길러보고 시심으로 가득한 고인 우물 알고 내 시심에 진하게 물들이려 등심을 돋운다 자작글-021 2021.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