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 워리 /호당/ 2021.12.3 내 어릴 때 풍 떨어 호랑이 담배 피울 때 개를 부를 때 ‘워리’ ‘워리’ 요사이 애완견은 상전 그때는 살림 한몫 아기 똥 싸놓으면 ‘워리’‘위리’ 먼데 있던 개 주인 목소리 단번에 알고 깨끗이 핥아 버리고 개 배부르게 키우지 못 한때 조금이라도 채우라고 아니 그건 습관인 걸 ‘워리’에 담긴 애정 살림 밑천 한몫 ‘워리’ 꿈속에나 들을까 자작글-021 2021.12.03
뱉어낸 말 뱉어낸 말 /호당/ 2021.12.2 겨울바람은 인정사정없다 코로나 정국으로 근 2년을 담쌓다 인정의 고리는 녹슬어 느슨하다 밧줄 터지듯 툭 눈에서 멀어지면 인정도 끊어진다 노을 끌어안아 처방전으로 오늘을 견디는 나이 안부 전화로 끝낼 것을 모임을 이어 고리를 점검하자고 내 머리에 뱅뱅 돌아 떠나지 않은 그 말 오래전부터 한쪽이 간당간당했는데 너 나되 보라고 했을 걸 나도 너보다는 덜 간당간당 함부로 뱉어낸 말 다시 지울 수 없고 후회와 자책만 뱅뱅 돈다 나는 겨울바람이 아닌 거거든 자작글-021 2021.12.02
겨울산 겨울 산 /호당 2021.12.1 이제야 선명하게 밝혀진다 우거진 나무이파리 칡넝쿨 무성한 잡초로 막 가렸지 낙석방지 그물망처럼 촘촘히 엮어 푸른 물감으로 가려 놓았지 누군가 낮 톱을 들고 등성이를 오르자 벌떼처럼 달려 붇자 줄행랑 한평생 갈 줄 알았지 울긋불긋 무늬로 퍼지더니 추풍낙엽이란 말 실감 간다 막무가내로 눈 덮은들 곧 녹아내린다 이토록 선명하게 들어낼 줄이야 자작글-021 2021.12.02
아닌척 아닌 척/호당/ 2021.11.30 퇴임 후 *장노라는 칭호로 바뀌었다 한통속에서 자판기 두드리고 커피도 나누는 사이 예쁜 꽃향기가 진하게 다가와도 척하고 말았다 흰 구름 잠시 모였다 흩어지면 장노의 생각 뭉치는 흔적조차 없어진다 기회는 또 왔다 예쁜 꽃은 성찬 앞에 덥석 수저를 들지 못하고 침 삼키느라 발정 난 암캐 같다 성찬도 외부 더운 바람에 금방 맛이 가 쉰밥이 될 텐데 아닌 척이 최상의 처방이다 낚싯밥 놓으라 재발 모른 척 낚여 파닥거릴 테니 **페닐에틸아민 phenyl ethylamine이 내 눈을 부시게 했지만 아닌척할 뿐 수저로 덥석 찌른다 주인 있는 쉰밥임을 알리고 끝까지 아닌 척 내가 밉다 * 할 일 없이 매일 논다는 은어 ** 사랑의 호르몬 자작글-021 2021.11.30
분수 분수 /호당/ 2021.11.30 내 눈높이를 잊을 때 허욕이 앞에 턱 버텨 섰다 찬란한 것은 겉일 수 있고 속은 허로 채워 있을 수 있다 젊고 어여쁜 여인들에 찬란한 빛 번쩍거려 보이지 속을 파고들면 허의 숲이 있음을 황금 마차에 탄 여왕 패하 그대의 황금빛이 백성들의 고뇌와 피땀임을 알기나 하나 항상 넘보고 넘치려 할 때 잠시 주춤하고 머리를 돌려 봐 내 눈높이는 어디쯤인가 분수는 내 욕망의 가늠자다 자작글-021 2021.11.29
가락국수 먹고 싶었다 가락국수 먹고 싶었다/호당/ 2021.11.28 겨울 목욕탕은 포근한 어머님의 품 안 같다 젖은 물기 닦고 주섬주섬 옷 입을 때 흘깃 프런트 쪽으로 눈길 돌렸다 종업원 두 사람이 가락국수를 먹고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국숫발에서 풍긴 반들반들한 광채가 내 목구멍을 그대로 두질 않았다 야들야들한 새싹처럼 미끈한 처녀의 향기 풍기는 하얀 종아리 같다 내 눈을 휘어잡아 구미를 끈다 유독 국수를 좋아하는 성정 이건 아버지로부터 받은 연이다 잡식성인 나 뭐든지 뚝딱 가늘고 매끄러운 국숫발을 후루룩 빨아 당기고 벌컥벌컥 시원한 국물 마시며 그 행복을 지금 내 입속에서 꿈틀거린다 자작글-021 2021.11.29
도시에서 나 홀로 도시에서 나 홀로/호당/ 2021.11.30 우뚝우뚝 길쭉길쭉 벽돌은 나를 겨누는 화살이다 맞지 않으려 아등바등하지만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왁짜 벅적한 입술들의 목소리는 저마다의 음색으로 멜로디로 외치거나 악다구니 치거나 무심하고 먹고 먹히는 대해의 물고기 같다 밝은 밤거리는 찬란함만 흐를 줄 알았지만 메마른 옷깃엔 온기가 없어 오붓한 솔향기 속에서 머루 다래 손짓한다 구수한 흙냄새에 익숙한 나 콘크리트 중압감에 짓눌려 얽힌 그림자가 차갑다 내 뜰 앞까지 찾아온 등불이 문밖으로 점점 멀어진다 하나둘 제 등불 꺼지고 나 혼자 불 밝힌들 아무도 맞불 비춰줄 이 없다 자작글-021 2021.11.28
세한도-1 세한도-1/호당 2021.11.29 소나무 잎 새카맣게 얼었다. 나 차디찬 들숨 날숨 쉬면서 견뎌 낸다고 방안 물 한 대접 꽁꽁 얼었다고 책장 넘기지 않으랴 한 장 두 장 한 권 두 권 쌓을수록 환하게 뚫린 궁리 빙판길 미끄러우면 추사체로 걸어봐 내 시어는 줄줄이 잇따라 거뜬히 건너 미끈한 문장 하나 눈 덮여 얼은 길 세한도 정신으로 世閑道를 닦아 신중한 보폭으로 걸어가면 시누대*처럼 말라가지는 않으리 *화살 만드는데 쓰이는 가는 대나무. 자작글-021 2021.11.28
겨울 경상감영 공원 겨울 경상감영 공원 /호당. 2021.11.28 진달래 철쭉 피고 잇따라 푸른 나무 우거진 숲을 제집인 양 멋대로 여기저기 드나들며 노래하던 매미들 사라질 때 알아 떠나고 울긋불긋 옷도 잠시 훌훌 벗어던지고 멍하니 있는 나무들 한철 왁자지껄 성황이었지 삼삼오오 모여 장기바둑돌이 뒹굴고 비뚤비뚤 쏘다니고 도수 높은 안경 쓰고 사주 관상 책자 펴 놓고 벤치는 늙은 남녀 정 잇는 침대가 되어 속닥거리고 쏴 찬바람 불어 마스크는 방패 벤치를 독차지한 유랑자 아니면 연인들 비둘기 한때 날아간다 저 활기를 보면 언제 저럴 때 있었든가 남루한 생각 한 꾸러미 혼자 벤치를 지키고 자작글-021 2021.11.28
장작 패기 장작 패기 /호당/ 2021.11.28 짝 갈라 흰 배때기 보여야 직성 풀리는 소나무 한 도막을 온 힘 다해 도끼날로 패댄다 이건 구시대의 조서 받기다 오기로 후려친 도끼날을 꽉 조여 물고 이빨로 깨물었다 열 번 찍어 넘어지지 않는 나무 없다 끝내 짝 갈라 벌리고 이만하면 속 시원하냐 우직한 도끼날의 폭력 두 쪽의 하얀 조서는 내 속 진실을 보여준 것 자작글-021 2021.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