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11월의 끝 무렵

11월의 끝 무렵/호당/ 2021.11.19 초가 토담집이 모인 촌락 요리조리 비좁은 골목길 다 빠져나올 마지막 굽잇길 늦가을은 그렇고 초겨울 같은 날씨에 벌거벗은 감나무 까치밥으로 남겨 둔 홍시가 11월의 끝 무렵처럼 간당간당한다 누런 들판이 *곤포만 뒹굴고 까치 비둘기 새때들 넓은 논바닥을 훑는다 가장 풍년인 듯 배를 불리고 토담 골목길 틈새를 비집고 자란 풀 (생명)이 된서리에 폭삭 꼬꾸라졌다 이 골목 다 빠져나가기 전 내 몸 살찌워 꼿꼿이 빠져나가야지 *곤포梱包 Baling(사이리지silage)가축용 볏단을 압축 밀봉한‘곤포 사이리지’

자작글-021 2021.11.19

객지바람

객지 바람/호당/ 2021.11.18 산골 계곡물에 묻혀 올챙이는 맑은 물 뻐끔뻐끔 신선하고 편안한 곳이라 여겼다 개구리로 변신하여 펄쩍 뛰었다 거기 파도 소리 비릿한 바다 냄새 억센 기질에 소금기 저린 그들에 스며들자면 맨몸은 오래 저려야겠다 텃새 날개에 묻은 갯냄새 퍼덕거리는 아가미와 지느러미의 힘 겉보기와 딴판 속은 깊은 맛을 듬뿍 안기고 때로는 혀를 꼬드기고 솔이끼와 송이버섯과 달라 외지란 이런 것 자꾸 소나무 군락지가 그리워진다 객지 바람을 태연하게 쐬기 힘든 산골 개구리

자작글-021 2021.11.19

새움이 자랄 때

새움이 자랄 때/호당/ 2021.11.17 소꿉놀이 철없는 시절은 하얀 마음이었다 곤한 밤은 씨동무와 숨바꼭질 중에 오줌싸고 물장구 헤엄치고 깔깔거렸던 냇물이 내게로 밀려온다 점점 아랫배가 팽팽 통시를* 들락날락 철수가 오줌 줄기 멀리 쏘기 내기하잖다 쏴아 아 시원해 아침 햇살 깊숙이 들어와서 얼레리 꼴레리 아빠는 뜻밖에 부드럽게 키 쓰고 바가지 들고 소금 꿔와야겠다 당장 애 오줌 쌌구나 키를 막 두드릴 때 내 얼굴에서 장작불이 활활 타는 듯 나는 울어버렸다 철없던 새움이 자랄 때는 곤한 밤 오줌 싸고 한 마디씩 훌쩍 컸다 *화장실의 사투리

자작글-021 2021.11.17

버들강아지 눈틔우려

버들강아지 눈 틔우려 /호당/ 2021.11.16이 일을 10여 년을 입김 불어넣고 따뜻하게 데워 자음 모음 달아 놓으려 하는데 오늘 그녀의 행동은 반항적이다뭐 읽을 줄 쓸 줄 알면 버들강아지 눈떴는데 일으켜 걷게 하려는가그건 머리가 굳어 뽀송뽀송할 수 없어빳빳한 걸 어쩌란 겁니까그럼 이 문장 읽어보시오좋단 말인가? 나쁘단 말입니까?대답 못 하고 구름 속을 둥둥 뜨면서 이런 재주 있거든눈 뜨지 않아도 캄캄한 밤 볼 것 들을 것 할 것 즐길 것 하거든밥 짓고 반찬 맛있게 장만할 줄 알아사랑받아 이쯤 왔거든뭐 읽을 줄 알면 됐지

자작글-021 2021.11.16

낙엽을 글어 담는 사랑

낙엽 끌어 담는 사랑/호당/ 2021.11.16 오후의 햇볕이 정답다 11월 반을 넘기면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한사코 버티는 이파리는 한 줄기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아침 된서리에 폭삭 삶긴 고춧잎 호박잎 이 겨울을 원망한다 무사히 겨울을 건널까 염려되는 가슴 밤이면 뒤척거리다 잠 설치는 밤은 늘고 삶의 끝 골목을 헤매는 괴로움인가 남녀 낙엽 끌어모아 포대에 꾹꾹 담아 넣는다 내일을 위한 준비일 것이다 희망을 끌어 담는 사람 다정한 늙은 비둘기 한 쌍 좋은 그림 한 폭

자작글-021 2021.11.16

석탄박물관을 보고

석탄박물관을 보고/호당/ 2021.11.15 검은 돌 뭉치가 불꽃 날릴 때 전성기를 누렸었지 백아기 쥐라기보다 후대인 석탄기(298.9백만 년)에 기발한 변신으로 인류에 공헌했지 너를 얻기 위해 현대인의 영혼이 대신 묻혀 앞으로 몇백 억만 년 후면 너보다 몇백 배의 화력으로 지상을 지배할 거야 너를 얻으려 너에 희생한 영혼들에 아무렇지 않는 마음으로 화력을 즐긴것이 부끄럽다 사람은 편해지면 더 편한 것으로 맘 돌려 석탄은 사양길이 됐다 4, 5십 년대 전 중흥의 깃발 펄럭이던 때 너의 공헌이 컸다 아직 지상에 출현하지 못한 너희 지하에서 석탄이 석유로 변신할지 두고 보라 한다

자작글-021 2021.11.15

왕상 물회

왕상 물회/호당/ 2021.11.13 이렇게 맑고 깨끗한 바다인가 수중을 훤히 내다 뵌 하얀 모래톱 바닷고기들 노니는 것 보여 파도가 일지 않아 더욱 투명해 수중으로 입수하고 싶어 입은 옷 그대로 입수해도 물 한 방울 묻지 않은 최신식 시설 신선한 육질에 신선한 맛 너무나도 깨끗하고 수중에서도 통신할 수 있게 와이파이도 있어 호화스러운 블록 차지했다 진수성찬의 밥상 어류의 맛은 지상과는 비교도 안됐다 딸아이의 시중이 고마웠다

자작글-021 2021.11.15

상투어

상투어 /호당/ 2021.11.15 강의를 듣거나 시법을 훑거나 머리에 박힌 문장 하나 ‘유통언어’‘뻔한 사실’ 상투어를 남용하지 말란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좋은 게 좋은 것 쓴살같은 세월이 무정하다는 것 이런 문장 유식한 듯 함부로 뱉었지 새 이파리는 신선했지만 낙엽 되어 잠깐 반짝 그만 내 시어 詩語도 시간에 편승하면 낙엽 되는 걸 알겠다 상투어도 처음은 신선한 어린 새싹처럼 번쩍였을 걸 그만 상투어로 식상하고 참신한 시어가 나 같은 문외한에 달라붙을는지 메모지만 놓이면 상투어가 먼저 나 여기 있소 참신한 맛이 사라지는 것도 모르고

자작글-021 2021.11.15

잠깐

잠깐 /호당/ 2021.11.13그 공원의 의자엔 해님의 자애가 소복하다내 영혼이 여기저기 방황하다그 벤치에 앉았다붕붕 떠도는 기류, 이건 내 아바타다맘껏 휘젓다 흐르다 이 별에 붙어 찰싹저기에 앉아 철석그때 대폭발섬광이 마그마가 흘러간다어느 혜성에 안착거기 하늘 열차가 연신 덜컥덜컥 소리 없이 왔다 갔다이걸 보고 있으면 모두 흘러간다나만 허수아비로 섰다우주인이 석고가 파리하다고 삐릭뻐릭 웃는다밤낮이 없다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내 아바타는 변화하다그만 내 콧등을 찔렀다앗!몇 초간의 여행너무 곤한 여행은 내 아바타였다

자작글-021 2021.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