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1 496

노부부 나들이

노부부 나들이/호당/ 2021.10.31 노부부는 손잡고 나들이 중 남자는 뒤뚱뒤뚱 사랑의 색깔이 있다면 진하다 엷다 뿐일 걸 외쪽 신발이 있어 오른쪽 신발이 좋고 함께하면 거대한 지구도 돌릴 수 있고 길가 야생화 한 포기 그냥 슬쩍 스치고 만다 여긴 군락지 장관이다 원앙새 한 쌍 부러워할 사랑 늙어서 아내에게 상차림 받는 일이 가장 행복한 줄 모른다

자작글-021 2021.10.31

10월 마지막 날 오후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호당/ 2021.10.31 햇볕은 어머님의 품 같다 내가 선 자리에서 10월 마지막 날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필수품 액세서리가 된 마스크는 가리는 것을 미인은 가려지지 않는다 느티나무 굴참나무 등 활엽수는 떨어져 뒹굴고 어머니는 순리인 듯 태연하다 벤치에 정자에 있는 노인들 코로나 세월 무위고라는 위협에 어두워 알맞은 채색은 내 발상의 밑바닥이 드러난다 파랑 한 점 없는 운암지 여기 내 맘 투영해 보면 평온한가 놋쇠 대야의 물이 파르르 떨고 있잖아 오늘은 상상력보다 리얼리티 한 이미지로 그려내자 어미 닭 따르는 병아리 종종걸음 실개천에 물장구치는 어린이들의 동심 연인들 손잡고 사랑만 찍는 걸음걸이 팻션이 이동하고 발걸음이 줄줄이 잇고 어디선지 모를 포효할 듯한 코로나를 설마 연긴..

자작글-021 2021.10.31

갓바위 약사여래

갓바위 약사여래 /호당/ 2021.10.31 왜 힘든 길 오르려는가 쌓으면 이루리라는 믿음이지요 갓바위 약사여래 뵈려 가파른 길은 내 맘 닦는 길 삭도 놓았으면 쉽게 오를 걸 쉽겠지요 그러나 내 삶을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얻으려는 속물근성만 생길 걸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나를 한 바퀴 빙 돌고 날아간다 약사여래 앞 108배까지 못 미쳐도 맘 편해집니다

자작글-021 2021.10.30

노점상인들

노점상인들/호당/ 2021.10.30 서민들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힘겹다 노점상을 보면 그의 얼굴에 샛별이 번쩍번쩍한다 이 길을 밟는 이는 고객이다 그들 마음을 끌어 고리 엮는 일이 낯선 사람 덥석 손잡는 것보다 어렵다 길가 예쁜 꽃 피어 한들거리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길에 농수공산품들 펼침이 불법인 줄 안다 꿩 비둘기 떼거리 금방 씨 뿌린 콩밭을 파헤쳐도 불법인 줄 모른다 일단 단속하면 일시 후퇴 소리 없이 조용하면 길바닥에 맘 펼친다 고달픈 길 위의 인생 여기가 삶의 터

자작글-021 2021.10.30

모과나무

모과나무 /호당/ 2021.10.29 모과나무가 노란 모과를 오롱조롱 달고 가을 해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중이다 조금 멀리서 보면 푸른 치마에 노랑 물방울무늬 달린 옷을 입은 훤칠한 처녀 하나 서 있다 아름답게 보인다 다가서면 완숙한 처녀의 향 *시트러스 citrus가 난다 그의 매력은 상큼한 향이다 잘 익은 빨간 사과 닮은 처녀가 아니라 실망하지 말라 울퉁불퉁 모과란 말은 진미를 모른 단순한 편견이다 겉만 금방 끌릴 듯한 포장 속은 별 실속 없는 소포 같은 처녀보다 노랗게 잘 여물어 순박하게 보이지 않니 그녀는 순박한 시골 처녀이면서 시트러스 향을 풍길 수 있어 마음 끌린다 *citrus: 오랜지 레몬 등 상큼한 감귤류의 향

자작글-021 2021.10.30

바람

바람 /호당/ 2021.10.28 생의 바람은 아무 때나 부는 게 아니다 핏기 곤두세우고 양기 서리 맞지 않아야 바람 불거나 맞거나 채비한다 생 바람은 한창 사춘기를 넘는 통과의례 그때를 아무렇지 않게 맞는다면 냇물에 혼자 돌 틈을 지키는 멍텅구리 메기 녀석이다 그놈도 틀림없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 바람과 바람이 한창일 때 산꼭대기 사과랑 포도를 펼쳐 놓으면 근방 날아드는 초파리 같다 아마 강력한 *옥시토신이 발동했으리라 바람 잘 날은 있다 그때는 언제 불었느냐 터도 망도 없지만 잊는 데는 평생이다 생의 여정에서 현명하게 받아넘기는 자가 바람 잡을 줄 안다 *사랑의 호르몬

자작글-021 2021.10.29

적막

적막/호당/ 2021.10.28 환한 대낮은 햇볕만 따스하게 내린다 운암지는 너무 조용하고 초등학생 한 반이 야외 수업 중 아주 조용하기만 하다 적막은 내 마음에 고인 흐트러진 물이다 맑게 가시지 못해 캄캄한 동굴에서 오도 가지도 못 해 속수무책이다 나의 오전이 무위로 채워진다는 게 안타깝다 그냥 걷는다는 일념으로 여기 벤치에 앉아 보면 밝은 가운데 적막에 갇힌 듯 가슴 답답하다 용솟음칠 듯한 불쑥 기운이 뻗는다는 것은 과한 허욕이다 운암지 산책길에 내 걷는 발바닥은 적막만 밟힌다

자작글-021 2021.10.29

마음 편하다는 것

마음 편하다는 것/호당/ 2021.10.28 내 한 몸 편하면 이웃도 편하다는 것은 편견이잖아 내자와 같이 늙어 처방전을 뗄지언정 거동에 문제없다면 행복이다 마음에 찬 바람 불어 숭숭 구멍 뚫린다 바퀴를 굴러 함께 즐기던 메기 메운탕 그때가 가장 행복했지 자가 물리치료 한다고 찜질하고 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안타깝다 평생을 나를 위해 몸 불살랐는데 이만큼 오게 된 것 당신 덕분이야 훈풍이 불어 다시 거동한다면 처방전이 효험 내렸으면 구겨진 도화지가 평평하게 펴지겠지 그때는 마음 편해지겠지

자작글-021 2021.10.29

춘천닭갈비

춘천 닭갈비/호당/ 2021.10.27 백두대간에서 갈린 산맥들은 갈비뼈와 같다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 계곡에 현빈*이 살고 그가 흘린 양수는 대지를 적시어 비옥하고 풍요로워진다 만물이 풍성하니 닭인들 살찌지 않겠나 소갈비 돼지갈비 닭갈비 갈빗살을 유독 좋아하는 것은 아리따운 여자에 침 흘리는 심리와 같지 않을까 춘천닭갈비 전주비빔밥 안동찜닭들은 모두 맛으로 이룬 대동맥에서 갈려 나온 먹거리의 갈비다 원조를 찾아가면 대간 계곡에서 현빈이 흘린 양수에 젖은 음식을 먹고 삶을 부지한다 춘천닭갈비는 소문 난 여우의 이름과 같다 *도덕경 제6장 谷神不死의 장에 是渭玄牝 노자에 나오는 현빈은 여자, 골짜기에 살고 현빈은 물을 상징하는 물의 여신이다

자작글-021 2021.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