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3 417

딱 끊는다

딱 끊는다/호당/ 2023.7.30 내 우물을 나도 몰라 자문자답을 우문 한다 나대로 대접하지 않을 때 톱날 세워 싹둑 베어버린다 만날 때마다 내 주머니 끈 풀고 코딱지 같은 꽃 전화벨에 하인 다루듯 호령한다 그래 내 톱이 있다 싹둑 약속 시간 지나 지치자 전화기 들었다 아니 등 넘어 산 넘어 여호와의 증인을 설파한다고 새로 2시간 후가 4시간 후가 되니 초승달은 벌써 넘어갔다 내 심연을 나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마이웨이에 가설한 전화선은 싹둑 절단된다 내 우물에 이런 물이 있다

자작글-023 2023.07.30

이삿짐 꾸리기

이삿짐 꾸리기 /호당/ 2023.7.29 천직을 수행하자니 이삿짐 꾸리기는 뱀 허물 벗듯 벗어 한둘 버리면 셋 넷 새로 생긴다 도회지 매연 클랙슨 소리 피하면 들국화 도라지 송이 가루 덮어쓰고 바닷바람에 허물 벗자 싱싱한 고기 떼가 밀려온다 바다 살점 향긋 콧구멍이 벌름벌름 허물 벗을 만큼 다 벗어 전세 사글세 없어 좋다 삭막한 인정 아파트 대단지 삶 나도 메말라야 버틸 수 있다는 게 도시의 속성이라면

자작글-023 2023.07.29

장마 끝에 땀이

장마 끝에 땀이/호당/ 2023.7.28 장마 끝에 폭염이 기다렸다는 듯 막 달라붙는다 땀과 맞선다 개미 때 바글바글 제방 보수한다 땀 흘리지 않는다 흘러간 것 땀으로 복구한다 잃은 것 찾으려는 맘에 식은땀이 솟는다 내 인생 유실한 것도 잃은 것도 없다 다만 긴 세월을 어깨 너머로 흘려보낸 것이다 그간 일한 뒤 끝 유실수 따 먹고 있다는 행운 장마 끝에 수박 하나 굴러왔으니 냉큼 안으면 폭염이 성낼까 봐 祭 올리려 냉면 한상 차리면 폭염이 땀 식혀 줄 것이다

자작글-023 2023.07.28

간담회

간담회/호당/ 2023.7.26 말하기보다 우선 듣기 비중이 크지 보청기를 꽂고 풀잎처럼 빳빳이 앉는다 관장의 인사말 입만 들썩 내 귀 탓으로 돌려 멍하게 바라본다 언뜻 구름 지나자 발동기는 시동 걸려 연기 토하며 탈탈탈 낱말 쏟는다 시력 좋아 무성영화 보듯 연사는 있으나 마나 강사 젊은 여인들 팔딱거리는 음기 발휘한다 그림의 떡 한 폭을 본다 늙은 와송 넷 고명이면 눈과 혀가 즐거울 텐데 시효 지난 통조림 같아 먹기도 꺼림직한 별 볼 일 없는 것 유인물 보면 알 것이 내 귀청은 문 잠그고 휴업상태다

자작글-023 2023.07.27

컴맹 마지막 세대

컴맹 마지막 세대/호당/2023.7.26 구 버전 치맛자락 붙들고 노닥거린다 컴맹 마지막 세대가 귀청은 개문하지 않아 태업 중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것은 치맛자락을 통해 안다 새 버전 치마는 화려하고 날렵하다 가히 초미니스커트 여인 유혹하거나 야유하거나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다 때로는 침묵하거나 주저앉거나 늘여빠져 속 썩일 때가 많다 전문의에 의뢰했다 고목에 신식나무로 접붙이기를 정형외과 전문의는 날렵했다 자판기 탁탁 두드리며 난 컴맹 아니거든 흥 그래도 너는 보릿고개랑 한문이랑 성묘 마지막 세대야

자작글-023 2023.07.26

집만 지키는 암캐

집만 지키는 암캐/호당/ 2023.7.25 치맛바람이 바짓가랑이 사이로 엇갈린 권태한 사랑의 파편이 스친다 수캐는 사랑채만 지키지 않아 매일 대문 열고 나가면 소주병이 뒹굴지 않은 날 산바람에 실린 치맛바람이 불어 맛있는 낱말과 분내가 섞인다 나는 집 지키는 암캐가 아니다 수캐 없는 둥지 지키는 짓은 따분하고 공허하다 문맹 암캐나 할 짓 앳다 맘껏 들판 날뛰어 가다 보면 남의 수캐 만나 엇갈린 쇄골 사이로 비릿한 바람 드나들지 몰라 술 대신 차와 세이커 춤과 트로트 동영상이 왔다 갔다 한다 그래 이 맛이야 한도 초과해지니 한심해진다 집만 지키는 암캐 나 구정물 마시지 않았어 잠깐 권태한 사랑 바깥 풍경에 약간 비틀거렸을 뿐이다

자작글-023 2023.07.25

정심 식탁 상 차리기

정심 식탁 상차림/호당/ 2023.7.24 단풍잎처럼 떨쳐 보내고 달랑 두 잎 여보 당신 상차림은 먹자고 하는 짓이 살자고 하는 짓보다 하수다 빵 한 조각 바나나 한 쪽이면 상수는 충족한다 창문 훤히 열어젖히면 맑은 생수 같은 산소가 허파꽈리를 부풀게 해 배 부풀어지고 아침저녁 상차림 쌀밥 멸치 대가리 계란 숭늉 등이 대기 한다 살자고 하는 짓 상차림 없는 때 외식이거나 영원히 상차림 없는 외계를 거닐 때 말고 또 있겠나

자작글-023 2023.07.24

동화사

동화사/호당/ 2023.7.23 팔공산을 품은 동화사 가는 길 구불구불 감아올리면 절로 마음이 유연해진다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일주문 들어서자 숙연해진다 불심이 감싼다 팔공산 기운 피톤치드가 파동쳐 부질없는 허방들이 맑은 물소리에 녹아 흐른다 범종이 울려온다 낙조가 붉어진다 녹색 이파리들 더 반들반들 윤이 난다 멀리 날아간 북소리 거기 중생의 마음도 녹아 함께한다 목탁 소리 들린다 목어는 뱅글뱅글 쉬지 말고 수행하라 내 등짐 부려놓으라는 듯 목탁 소리가 귀를 깨운다

자작글-023 2023.07.23

고사목

고사목 /호당/ 2023.7.22 시력이 앞선 이를 따르려는 허겁지겁한 맘 접는다 내게는 땡고추 같은 매운 시혼이 있었더냐 묻는다 그냥 그 언저리만 돌았다 고산준령에는 고사목이 빳빳이 서서 또 천년을 버텨 사리 한 줌 품는다는데 100년도 못 견뎌 고사목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다 아직 푸른 기운 군데군데 있어 길 밝혀 견딘다 사리 한 줌 품겠다는 욕심 가당찮음을 안다 다만 나만의 색깔로 시혼이 담긴 고사목으로 가는 길 닦는 일이다

자작글-023 2023.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