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 한움큼 알약 한 움큼/인보/ 2023.4.4 노년은 누더기 같은 몸으로 한기가 차오른다 그 길이 여진처럼 요동한다 꽃 같은 시절은 꿈으로 묻어 두고 누수부터 처치한다 아홉 구멍마다 묘책은 달라 어느 것이든 소홀할 수 없어 한 움큼 알약을 툭 털어 넣어 막는다 지구가 태양계를 이탈할 때까지 땜질 땜질 그렇게 버텨 가는 게지 뭐 알약 하나 잡지 않은 자 백세 행 열차 예매한 자 일지 자작글-023 2023.04.04
보폭 보폭/인보; 2023.4.3 벽걸이 시계 건전지가 다해갈수록 시간이 느려지는 것처럼 내 보폭이 좁고 느리다 한때 시 산맥에 앉은 황새 뒷덜미 따라잡겠다는 마음으로 펄쩍펄쩍 뛰고 달리고 했으나 어림도 없다 호롱불 바람에 꺼지지 않으면 된다 심지 돋으려고 생각한다 내 보폭과 템포는 아다지오 안단테만 돼도 과욕이라고 나무라지 자작글-023 2023.04.03
달빛 달빛/인보/ 2023.4.2 연리지엔 삐그덕 쩔그덕 소리내기엔 부끄럽다 바람도 잠자는데 조용히 지켜보겠다 속앓이하는 용기 없는 사내 달빛 받고 돌진한다 등 뒤를 떠미는 듯하다 교교한 달밤 자라지 않아 멀뚱멀뚱. 벼 초목들 산골 오솔길 밝혀주는 길동무 달빛이 지시등처럼 반짝일 때가 가장 밝다 자작글-023 2023.04.02
강아지풀 강아지풀 /인보/ 2023.4.1 푸른 기백 피워 올릴 때 빳빳이 세워 어름 설움 없이 막무가내로 살아왔지 솜털 드러내고부터 고개 숙일수록 완숙해진다 막 놀아먹던 기백 이제야 제 몸 깨닫게 되었다 익어도 빳빳한 겉보리보다 속이 찰수록 고개 숙여 사랑받는 강아지 꼬리 같다 자작글-023 2023.04.01
불편-1 불편-1 /인보/ 2023.3.31 전자레인지 수명 다해 대치하기로 했다 배고픔에 주린 배 달래기 바빴지 호롱불에 대한 불편을 말하지 않았다 문명시대 한세대 뒤진 폴더폰으로 컴맹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불편한 길 갈아타고 편리를 달리다가 툭 단절 때 느낀다 전깃불 정전될 때처럼 불편과 편리는 어느 편에 있든 익숙하면 편리하다 며칠간 전자레인지 이전으로 익숙하도록 편리를 잊는다 자작글-023 2023.03.31
팔공산을 주유하다 팔공산을 주유하다/인보/ 2023.3.29 얼어 움츠리던 마을들 고로쇠나무 수액을 뽑아낼 때 대지는 꿈틀하다 푸른 잎을 내민다 신록이 마음을 꼬드긴다 유연한 핸들처럼 90 구비 휘감아 도는 쾌감이 마음을 출렁거리게 한다 팔공산이 손짓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벚꽃 터널을 지난다 새하얀 아가씨 입김으로 주름살 하나둘 지워 주는 낯빛이 하얗다 팔공산 굽이굽이 돌 때마다 멀리서 날아온 푸른 기운이 내게 깊이 스며든다 거풍한 허파꽈리는 힐링에 더 부풀어지겠다 주유한 팔공산 화폭에 푸른 산맥이 파동친다 자작글-023 2023.03.31
뿌리 뿌리 /인보/ 2023.3.28 세상의 뿌리는 자기 부모를 알고 섬긴다 울울창창 뻗은 느티나무를 보면 지상에 뿌리를 드러내 부모를 지키려 지상의 풍파와 씨름하듯 겨룬다 우리는 뿌리에서 출발하여 여기까지 왔다 자기 뿌리를 모르는 이 부모와 조상을 몰라 정체성이 없는 자와 같다 하늘에서 툭 떨어진 듯 부모를 잊거나 모른척하는 몰인간들 뿌리를 알라 땅속에 있거나 지상을 움켜잡고 버티거나 뿌리를 따라가면 부모를 안다 자작글-023 2023.03.28
내 딸들에 내 딸들 /인보/ 2023.3.27 금쪽같은 딸들아 너희 행복이 내 행복이다 주린 배 움켜잡고 모질게 커왔다 더해줄 것 없어 내가 부끄럽다 월급봉투 하나로 직각과 직선을 달린 네 엄마 앞만 보고 달린 공직 청렴이 베인 자린고비 못난 애비 어미 품에 반듯하게 커 고맙다 만년에 너희로 핸들 잡고 대로 달려갈수록 폭신하다 억 억 소리 못 내고 만만 소리 내뱉어 만만하다 딸의 행복이 내 행복이다 자작글-023 2023.03.27
누굴 그리워하다-앵두- 누굴 그리워하다/인보/ 2023.3.26 앵두가 점점 붉어져 간다 내 젖가슴이 점점 불어나 젖꼭지가 붉어져 간다 막연하게 남자애를 그리워한다 꼭 찍어 점찍은 애는 없지만 초등학교 내 짝이 어디서 나를 생각할까 달콤한 젖꼭지처럼 불룩 부풀어가는 앵두 밤마다 자려 눈감으면 그 애는 무얼 할까 사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통통 부풀어진 젖통 교문을 드나들 때 남자애들에 신경 쓰여 잘 보이고 싶어 입술에 살짝 립스틱 lipstick 칠한다 앵두는 익어 누구의 입에서 단물 흘려주는데 내 입술은 뽀송뽀송할 뿐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자작글-023 2023.03.26
순대 순대 /인보/ 22023.3.26 보릿고개 세대가 피자 세대 앞에 순대 이야기에 시큰둥 맘이 끌리지 않는다 시뻘건 피가 갖은양념 갖은 재료와 잘 버무리면 입맛 사로잡는 순대가 된다 나의 담백한 말 어눌해 밭침 하나둘 빠진 말이 떨어진들 주목해 주는 이 없다 양념 없는 담백한 말 팩팩한 백설기처럼 물 한 모금이 첨가해야 넘어간다 시뻘건 피가 입맛 끄는 것은 양념과 재료를 잘 배합과 버무림이다 내 말에 귀를 끌어당길 순대 같은 고명을 더하면 그물에 끌어 올릴지 자작글-023 2023.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