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3 417

서가의 시집

서가의 시집/인보/ 2023.3.14 서재는 시집만 있고 간혹 시 창작법 책자가 드문드문 양념으로 섞여 있다 그중 잘난 아가씨 애교 띤 얼굴만 머리맡에 쌓아 놓으면 그들 스스로 시의 영감을 다투듯 쏟아낸다 아무리 애교떨어 봐라 마음 가는 곳은 한두 곳이다 뽑힌 아가씨 책갈피 들추듯 넘기다가 눈으로 입술로 감상 때로는 *데상 Dessin 을 하면 속까지 드러내 보이려 한다 내 쾌락은 궁녀를 읽어 내는 데 있다 오늘 밤 지밀상궁의 추천도 물리치고 가장 예리한 문장을 소유한 시녀를 훑어 나가면 시의 혼을 쏟아 낼 듯한 교태를 한다 희롱이라 오해 말라 너희 속까지 훤히 음미하면 영감 하나 솟아 시어를 줄줄이 잇는다 *dessin:불어; 형태와 명암을 위주로 단색으로 그린 그림(소묘 素描)

자작글-023 2023.03.15

인터넷 검색 결과를 믿다

인터넷 검색 결과를 믿다/인보/ 2023.3.13 동천동 맛집 어 ! 이런 곳에 앉아 맛 즐겨 봤으면 분에 넘친 생각 지하 주차부터 초보 딱지 금방 뗀 듯 어찌어찌하여 주차 내부 놀랄 만큼 화려한 인테리어 고급 양주병이 시렁에서 쌩긋쌩긋 꾀인다 백발 휘날리고 소 장판에 말 하나 애송이 연인 쌍쌍 20대 활기 넘치는 남녀들 눈총받는다 대견스러운 눈빛이면 좋고 민망한 눈총은 싫다 낚싯바늘 물고 속았다고 파닥거릴수록 점심 맛이 미늘에 깊이 걸린다 인터넷 검색 결과 조금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자작글-023 2023.03.13

궤도 이탈

궤도 이탈 /인보/ 2023.3.11 수나방의 원색은 색 앞에 홀려 궤도 위에서 덜커덩 그만 불나방이 될 때가 있다 벨벳 거미*velvet spider 같은 아녀자 거미줄 타다 오르락내리락 뱅뱅 돌다 덜커덩 수컷 로트렉** lautrec 같은 우아한 기사를 만나 핸들을 놓치는 사이 광풍이 불어 보리밭 파동에 휩싸일 수도 있다 불량한 궤도를 삐그덕 덜컹거리며 달리는 벨벳 거미 번개 천둥소리 폭우에 놀라 그만 주저앉는다 불나방도 거미도 자기 음역을 벗어난 줄 안다 내연이라는 불규칙 궤도로 음역을 벗어 화음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별똥별의 운명을 피하려 궤도를 수정한다 * 모성애가 강한 거미 **황금빛 갑옷을 입은 카림 출신의 기사. 여신의 기사

자작글-023 2023.03.12

삶을 즐기자

삶을 즐기자 /인보/ 2023.3.11 함께한 고산준령의 나무들 이파리 벗어 고사하거나 사리 품고 뼛골만 우뚝한 인연도 있다 느티나무는 벗고 입고 2.3백 년을 산다 인생은 불꽃처럼 활 활 하다 한 번 벗으면 끝내 한 줌 재로 흩어질 인연이 된다 단풍 들어 말라가면 그때야 삶의 더듬이는 가장 향기롭고 맛깔스럽고 자기만의 색깔에 톡톡 더듬는다 하루살이처럼 자기만족으로 채워 살자 통증이 오기 전에 밖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삶을 즐기자

자작글-023 2023.03.11

도심 속의 바닷가

도심 속의 바다 인보/ 2023.3.8 용계역 부근 시냇물 흐르지도 바다가 있는 곳도 아닌 도심 속 바닷가는 매일 북적북적 칼끝에 생살이 난도질당한 토막 살을 왜 그리 즐기는지 와글와글 그 끝에 앉으면 바다 향이 물씬 혀끝에 도미 도다리 우럭들이 눈 흘기다 붙잡혀 그만 토막 난 살코기가 하얗게 깔린다 잔인한 입술 남의살 씹는 맛 제 살 핥는 맛보다 벌름벌름 한차례 파도가 몰려왔다 젖지 않으려 씹고 삼키고 입술 달싹거리고 파도가 물러간 뒷자리 빈 쟁반이 뒹군다 이래서 도심 속엔 바닷가는 파시가 된다

자작글-023 2023.03.09

오늘이 행복

오늘이 행복/인보/ 2023.3.8 날이 새면 밝고 저물면 어둡다 내일도 지구는 돌고 물레방아는 찧는다 저녁노을이 내린다 까마귀 제집 찾아간다 퇴근길 만원이다 내일 내게 햇볕 쬐어 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 마치 돌림 게임 시한폭탄 넘겨주었으니 오늘 하루는 걱정 안 해도 좋을 행복할 하루다 친구와 같은 맛 즐기고 흘러간 레코드판 들어도 좋아 오늘이 행복이다

자작글-023 2023.03.09

대현을 지나며

대현을 지나며/인보/ 2023.3.5 변하지 않은 자연은 없다 단 하늘만 청청 옛날과 같다 대현을 떠난 지 30여 년 닷 새마다 여는 촌 파장 같다 봉화에서 대현행 버스 늦재를 넘자면 진흙탕을 빠져 밀고 당기는 곤욕을 지금 맑끔히 포장되었다 아연 광산 경기 불 활활 할 때 12학급 700명 아이 요람 거기 날개 하나 달고 비상했지 폐광의 잔해는 유령 같다 많던 기숙사들 허물어지고 창틀은 뻐끔뻐끔 입 벌린 사이로 칡덩굴이 들어가고 풀숲에 쌓여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불야성 같은 광산촌 하룻밤 풋사랑 떼거리도 노랫소리 삼겹살 굽는 냄새 대신 맑고 신선한 공기에 두메 산중이 옥수수가 활개 친다 불 꺼진 폐광엔 반딧불 깜박깜박 산천은 푸르러 옛날을 잊은 듯

자작글-023 2023.03.08

산수유꽃 필때

산수유꽃 필 때/인보/ 2023.3.6 산수유 필때면 맘이 느긋해진다 해님 울력 더해 가슴이 불끈 생동한다 앳된 여중 학생들 봄 먼저 맞으려 하얀 종아리 내보여 거리를 활보한다 포근한 날씨 쌀쌀맞게 굴던 임 맘 돌려 돌아올 듯 기다린다 감추어 두었던 연분홍 봄옷 갈아입고 들판을 거닌다 마른풀 사이로 새 생명이 얼굴 뾰족 내밀고 사방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봄소식 갖고 돌아온 산수유꽃

자작글-023 2023.03.06

뻔한 길

뻔한 길 2023.3.3 뻔한 어구 유통 언어 상투어로 깔린 길로 걸으면 시가 시시해 통하지 않는다 뻔히 알면서 예외 어구를 알아 달라고 내자 대신 만기 된 통장을 내밀었다 창구 아가씨 난처한 표정 상투어를 두부모 자르 듯한다 진흙탕에 빠진 듯 울컥울컥 다리를 뽑으려는 순간 이탈한 문장엔 문책이 따른다는 말 정신 번쩍 상투어는 통하지 않아 주민등록등본을 보냈더니 세련된 언어로 미끈하게 문장을 마무리했다 뻔한 상투어로 마무리하려는 민낯이 부끄럽다

자작글-023 2023.03.03

금전수

금전수/인보/ 2023.3.2 내자의 생일 선물 금전수 새파란 잎 광채 光彩는 어린 魚鱗처럼 반짝인다 거실이 푸른 기운으로 가득하다 네가 불어낸 금정기 金精氣 실은 날숨을 들숨으로 들어와 온몸이 금력으로 불끈불끈 솟는듯한 착각 돈이 들어올 운수 좋지 보다 건강에 활력을 불어넣을 운이면 좋겠다 눈 마주칠 때마다 푸른 정기 확확 뿜어라 돈이 들어온다는 금전 수야 건강 지켜주는 것이 지갑을 채우는 일이다

자작글-023 202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