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시대의 찬바람 우울한 시대의 찬바람/인보/ 2023.2.12 찬바람 부딪혀 엽전은 고공을 날고 지난 적 풀어놓은 금붕어는 가라앉아 밑바닥만 논다 하룻밤 지나면 기압골이 점점 높아 내려 보았다간 콧대 납작해진다 뼈 빠지게 일해 받은 등짐은 한 달 지나면 가벼워진다 멜빵 조인들 한계는 있다 난방비 걱정이 무임승차에 눈총받는 것보다 더 아리다 우울한 시대 우울증만은 오지 말라 자작글-023 2023.02.12
형제 형제 /인보/ 2023.2.11 8남매 승천은 하늘의 명 달랑 끝으로 형제만 세월과 맞선다 어릴 때 가는 곳마다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늙어서는 더 의지하고 싶은 지렛대다 죽순처럼 뻗어 일할 때 진자리 방석자리는 형의 빛이 드리워진 것 이젠 내 몸 어디 하나 쓸 곳 없어 메마른 언덕에 잎 마른 산대잎처럼 말라간다 희한한 세상같이 있다는 것 형의 그늘이 시원하다 자작글-023 2023.02.11
모텔 모텔 /인보/ 2023.2.11 오묘한 시간이다 이 골목 여러 번 스친 곳 모텔 안락한 수면만 있는 곳이 아님을 안다 고급 승용차가 슬며시 닿자 쉿 어서 오라고 슬며 문을 열어주자 꼬리 감춘다 바람난 전복 알몸 꿈틀꿈틀 양지바른 기름진 밭 고구마가 굽고 삶고 철떡철떡 태평을 믿고 죽을 둥 살 둥 일하는 남편 상상하면 가련하다 모텔에서 달군 몸 집에 들어가 새끼 밥 먹이고 남편 맞아 태연한 척 저녁상 차리고 세상은 요지경 모텔은 미친바람 집산지 자작글-023 2023.02.11
설마 설마 /인보/ 2023.2.10 절판된 시집 찾으려는 맘 두드릴만한 곳 모두 드렸다 찾을 수 없다 수배할 사람 행정명령은 죽었든 살았든 잡아낸다 이와 같은 비슷한 맘 시집 간절한 맘 딸아이는 알아 탁본을 들고 왔다 어떤 동인지를 읽다가 문체가 너무나 빼어나 이 저자의 시집 읽고 싶었다 문 두드리나 절판되어 잠겼단다 이 시집 구할 수 있어요 바로 이웃 대형문고였다 주문해서 문자로 알리겠단다 설마 하고 믿지 않았다 열흘 후 오늘 문자를 받았다 시든 꽃나무가 싱싱해 활짝 살아난다 설마가 현실로 살아난다 자작글-023 2023.02.11
5음계 궁상각치우 5음계 宮尙角徵羽/인보/ 2023.2.9 宮:(궁궐 궁) 대궐엔 많은 궁녀가 요염한 자태로 상감 눈에 띄려 교태를 부립니다 몰래 추파를 보내다가 지밀상궁에게 몰매를 맞아 실신 상태입니다 尙: (오히려 상) 궁에 들어온 지 얼마인데 사랑의 눈 포기한 지 오래다 구중궁궐에 갇히다 보니 완전 석녀다 눈만 피하면 대궐을 맴돈답니다 남자를 모르니 오히려 건강이나 챙긴다 角: (뿔 각) 젊을 때 상감에 귀여움 받는 듯 이건 내 착각이라는 걸 깨닫고 이판사판 야밤중 탈출해 순라군이라도 마주치면 수단을 다해 회포를 풀고 와야 속이 풀릴 텐데 문지기에 각 새워 쌀쌀맞게 굴지 말걸 徵:(화음 치. 부를 징) 화음 치는 입 꾹 다물어서 부를 징조 가망 없다 오랫동안 유폐된 생활 남자로 받는 사랑 어떤 것인지 몰라 그만 폭삭.. 자작글-023 2023.02.09
5음계의 화음 5음계의 화음/인보/ 2023.2.8 근력이 보채 보폭이 좁은 친구들 5음계는 상투적인 음가로 제 음계로 연주한다 느긋한 마음이 통하기에 엽전에 금도금한 음 값이 식상하지만 화음으로 5음계는 완벽하다 각색 맛이 아닌 같은 맛을 음미한다 배는 불룩, 마음은 흐뭇 이만하면 5음계는 화음으로 조율한 것 희한한 세상을 살아있어 흐릿한 눈빛 모여 촉광 높이려 했으니 만족한다 맛깔스러운 어구는 기대 말고 상투어에 식상하지 말라 5음계를 다지는 일이 내 일이다 자작글-023 2023.02.08
로드렉 사랑 로드렉 사랑 /인보/ 2023.2.7 어두침침한 구석에서 *로드렉이 금 빛깔을 번쩍 눈에 들어온 것은 오후의 햇살 아래였다 금빛 갑옷 믿음직한 투구 늘씬한 몸매에서 알 수 없는 신비한 요기 妖氣가 뻗는다 발정 난 여인의 눈에는 **옥시토신을 줄줄 흘린다 막 달려가 나를 안아 달라 몸을 기댄다 너에 대한 감정의 흐름은 ***빈둥지 증후군 (공소증후군)이야 로드렉은 그녀를 데리고 회전목마를 태워 빙글빙글 돌면서 맛있는 말 줍니다 젊잖게 기사도를 발휘하면서 뚜벅뚜벅 걷다 사라진다 *황금빛 갑옷을 입은 카림 출신의 기사. 여신의 기사 **oxytocin 사랑의 호르몬 ***빈자리를 지키는 허전함.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되는 심리상태 자작글-023 2023.02.07
빵 사는 사람 빵 사는 사람/인보/ 2023.2.7 파리바게트는 밀가루가 부푼 집합소다 빵 한 개는 점심 한 끼 요기를 지우는 것 문을 열자 빵 냄새보다 아가씨의 미소에 발린 상냥하고 부드러운 향이 물씬 안녕 빵값 올랐어요 그만큼 더 부풀리면 좋을 걸 세상 물가는 빙하가 녹아 수위 높아 등고선을 치솟는데 모든 물은 수위 높여 흘러 오르지 않으면 양심으로 버티는 수행자일 걸 최하위 등고선에 멤버십을 보여 더 낮추었다 밀가루가 이스트를 만나면 부푼 것처럼 나를 만나 상냥한 아가씨의 마음도 부풀어 감칠맛과 빵 냄새가 나를 감싸주었다 값이 오른 만큼 더 상냥한 아가씨 사고팔고 하는 사이엔 믿음이 빵처럼 봉긋봉긋 부풀어 오른다 자작글-023 2023.02.07
빙점 빙점/인보/ 2023.2.6 일제고사는 얼음 장막처럼 차다 시험지에 자기의 지기를 쏟는다 빙점에 이르러 더는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내 안의 체온 찬 바람 불어 내게 묻는다 네가 원하는 한계점은 어디냐 빙점을 원한다 말했다 남들은 점퍼에 패딩 입고 연필 끝에 마음은 빙점을 향한다 어림없지 빙점에 도달하려면 훌훌 벗어던지고 속 깊은 마음 쏟아 입김 불어보렴 빙점은 만점과 통한다 온 힘은 숨쉬기 밑바닥 다지고 밀어 올린다 얼는지 마는지 빙점에서 만점의 꽃이 활짝 핀다 자작글-023 2023.02.06
타박 꾸러미 타박 꾸러미/인보/ 2023.2.5 전자레인지 과열로 온 집안이 연기와 화근 내 대 소동 두근거리는 가슴 진정은 교체 내자에 고운 소리 들으려 비틀거리는 다리 달래가며 도서관을 거쳐 뒤척뒤척 쉬엄쉬엄 전자랜드에 들렸다 대중적인 값을 알고 선물꾸러미처럼 쑥 내밀었더니 직접 봐야 한다고 받는 기쁨 없이 까짓 작은 것 뭉텅 잘라버린다 내 주머니 열겠다는 생각 대신 타박 꾸러미 쓸어 담기 바빴다 자작글-023 2023.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