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3 417

계곡의 물

계곡의 물 2023.1.28 계곡을 흐르는 물은 물때를 심고 자기 속도로 흐른다 물때를 좋아하는 물이끼 부처손이 즐거워 푸른 낯빛으로 깔깔거린다 계곡물은 흐르다 잠시 웅덩이에 쉬었다가 돌들에 일일이 안부 묻고 물이끼에 손짓한다 가끔 산새들 목축이고 채신머리없는 새는 날갯짓 퍼덕이다 간다 계곡물은 주위에 목 축여 주고 조금씩 내 몸 떼어주는 듯 하지만 실은 아래로 흐를수록 몸짓 커진다 내려갈수록 목소리 할 말 다 하고 세를 불릴수록 요란하다 아직 철이 덜든 아기처럼 몸을 닦을수록 아래로 말수 적어 고요해진다 속을 품고 바위와 자갈에 감사의 경배는 미끄러지듯 스치는 일이다

자작글-023 2023.01.29

아페리온 aphelion 현상

아페리온 aphelion 현상/인보/ 2023.1.28 궤도를 이탈하려는 별들로 태양이 노하여 멀리 떨어진다 장작불 더미에서 점점 멀리서 불 쬐게 하는 세이커 족속들의 의사봉 gavel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지구도 속수무책 태양을 경배하지 않은 인간들에 대한 경고다 전기를 더 써서라도 가스를 더 때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난방비에 아우성이 높다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태양계를 이탈한 적 없는 지구촌 어린 양들입니다 난방비에 기름 확 붙였으니 한기는 쫓겨 갑니다 이쯤 되면 아페리온 현상이 슬슬 물러나 태양의 낯빛이 붉어집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족들 껑충껑충 춤출 날 곧 옵니다

자작글-023 2023.01.28

들을 수 있다

들을 수 있다 /인보/ 2023.1.27 흐릿한 눈 어둑한 귀 삐거덕한 무릎 삶의 끝부분에 맺힌 독침이다 대신한 눈, 이빨,귀. 제값 못해 견딜 수 없어 교체했다 벨톤보청기 사장이 정부 보조금을 장담한다 청력 조서는 중앙을 거처 회신받고 낭보라 한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오는 물고기 모두 끌어 담을 수 있어 청력이 쟁쟁하다는 것 보청기 도움이면 황폐될 뻔한 삶에 등불 하나 더 밝힌 것이다 보고 듣고 씹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 아닌가

자작글-023 2023.01.28

고고의 날

고고의 날/인보/ 2023.1.25 (음력1.4) 한파주의보 발령에 삶의 응고만을 막으려 몸부림치는 이는 많다 자가용 시동을 건다 십여 분을 달릴 때까지 고통받는 외부를 이해한다 실내가 후끈 달아오른다 무아지경에 빠져 외부는 모른다 연리지는 행복해 한껏 느슨한 맘 뽀글뽀글 끓는 매운탕 향에 취해 가족탕에서 헤엄친다 한파와 맞서는 자의 고생을 몰라도 좋을 고고의 소리 날렸던 날이다

자작글-023 2023.01.26

한파 주의보 발령

한파 주의보 발령/인보/ 2023.1.25 한랭전선이 불한당처럼 밀어온다 느낀다 다급한 안전안내 문자가 온몸을 오싹하게 한다 베란다 화분 이불 두껍게 덮고 문고리 꼭꼭 잠그고 태풍 맞는 듯 단속한다 내 방에선 태평한다 아파트단지 난방 장마에 강물 흐르듯 보낸다 어둠 깔린 창문 밖 한판지 혹한 지 창문 안은 한여름 같다 이 시각 난방비 무서워 새우잠 자는 이 있다는 것 한파주의보를 무시하는 심보가 부끄러워진다

자작글-023 2023.01.25

708번 버스

708번 버스 /인보/2023.1.24 오후의 공백을 708번 노선 대구역 근처 꽃 시장을 둘러보고 구근류 수선화를 찾아보려 했다 수선화 수면기를 목마를까봐 물 한 모금 또 또 참을성 없는 행동엔 늘 화만 따른다 708번 떠나는 뒷모습 멍하니 바라보다 정류소에서 배차간격 28분 흥 소외된 뒷골목엔 그늘이 드리워있군 절박한 심정이면 인내심을 우려내야지 절박하지도 않은 백수 이웃 도서관에서 은유를 표나게 적어놓고 적요의 시간 놓친 708번 버스를 탓할 일 아니다 소외는 어디든지 스며있다

자작글-023 2023.01.25

눈 내린다

눈이 내린다/인보/ 2023.1.23 두서없이 막 갈기듯 날리듯 빙글빙글 돌 듯 그 궤적은 흰 뱀 지나간 ㄱ,ㄴ,ㄷ이 흰 책상에 앉는다 선생이란 자가 흰옷에 흰 모자 쓰고 가,가,가 입을 벌릴 때 흰 가루가 갸,갸,갸 소리 질러 떨어지거나 빙글빙글 춤춥니다 웬걸 바람이 훈수를 놓습니다 백지에 ㄱ,ㄴ,ㄷ을 써보라 백발 머리를 흔들어 줍니다 조금씩 자음 모음 쌓여 뭉치면 거뜬히 눈사람 묶어내겠네 백수의 머리 흔들어 댈 때마다 자음 모음이 흰 가루에 쌓여 흩날립니다 아직 문장 한 줄 꾸미자면 턱없이 부족한 흰 가루입니다 쓸고 모으고 뭉치고 간신히 가슴에 안고 그제야 번쩍 깬 백수 ‘눈이 내린다’이 한 구절 얻어냅니다

자작글-023 2023.01.23

목도리

목도리/인보/ 2023.1.22 마음 튼튼 우람찬 진우 손자가 효심이 가득해 대견해 불쑥 안아 어깨 툭툭 설날 졸수 선물 목도리 목에 걸고 진우 생각으로 따스한 마음이 전 목을 감아 온몸으로 퍼진다 한파가 다시 요동친다는 예보 목도리 둘러 나가면 그까짓 한파야 거뜬히 버틸 거야 모임이 있을 때 목도리를 하고 속으로 감춘 온기를 가슴 젖혀 은근히 내다보이고 싶다

자작글-023 2023.01.23

흘러가지 않은 강물은 고인다

흘러가지 않은 강물은 고인다/인보 2023.1.22 흘러간 것은 잊어버린 시간 가장 읽고자 하는 시집은 절판된 것일수록 찾고 싶다 흘러간 강물은 모두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다 풀숲이거나 웅덩이거나 연못이거나 나무뿌리에 맺혀 있다가 목마른 사슴에 적선한다 딸애는 내 마음 안다 풀 섶에 머금었던 물방울 모아 보내왔다 절판된 시집에는 절박한 마음이 고여 있을 수 있다 등산하다가 목마르면 칡덩굴 툭 잘라 한 방울 두 방울 즙을 마셔 해갈할 수 있다 어디에 스몄던 시집을 보내왔다

자작글-023 2023.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