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수-1 졸수-1인보/ 2023.1.22 야전 군대 야간 행군처럼 칠흑 같은 어둠 뚫고 초행길 만들어 90 고개를 점령했다 초 잎도 어렵고 중 잎도 어렵고 대 잎이 되어서 반들반들한 길에서 떡갈나무 잎처럼 펼쳤다 넓은 잎이 낙엽 되고 가랑잎 되더라도 바삭바삭 부서지는 소리 내지 않으면 졸수 卒壽는 거뜬히 넘는다 큰소리칠 일 아니다 평생 길동무가 꾸려나갔고 무릎 밑들이 밀어준 울력이다 전조 前兆에 미련 두지 말자 자작글-023 2023.01.23
졸수 졸수/인보/ 2023.1.22 인터불고 호텔은 인파로 득실거린다 설날 연회를 열거나 저녁 한 끼 즐길 자들 내가 뿌린 민들레들 졸수를 축하한다고 한 덤불로 모여 케이크를 자르고 이 자리를 있게 한 내자의 내조로 이룬 시원지는 나 아닌 내자의 몫이 크다 삼 형제는 내가 커 온 내가 공부하던 그런 아린 시련을 애들도 겪고 키워낸 내자의 공이 크다 졸수는 오래 산 훈장이 아닌 문명의 힘에 살아 온 것 애들에게 기쁨도 비애도 아닌 그저 동전 앞뒤가 되었으면 한다 졸수는 요행이다 콩 빻는 디딜방아 호박에서 요리조리 잘도 피해 끝까지 빻아지지 않은 콩알 하나다 자작글-023 2023.01.23
음력 섣달그믐 음력 섣달그믐/인보/ 2023.1.21 발등 뒤 발자국은 사라졌다 오늘을 생각하며 바른 보폭으로 걸어야겠다 귀를 아리는 추위야 물러가겠지 명시를 그리며 경전을 오르락내리락 마라톤 주자 완주했으면 만족해야 한다 은유의 샘물 퍼마시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친구들 마음 나누어 즐길 오늘이 있어 그 식탁이 텅텅 비었다 나를 기다려 줄 그대가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이겠나 앞날 내 보폭이 비뚤지 않고 발등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욕심 한 꾸리 감아 음력 섣달그믐 보낸다 자작글-023 2023.01.22
폭포 폭포 /인보/ 2023.1.20 상선약수란 말이 아주 듣기 좋은 말 입이 얼어붙고부터 꾹 다물었다 그래도 그 속성까지 변치는 않지 흰 거품을 가르며 알알이 부수어 곤두박질하기도 한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본성을 잃지 않아 생각이 굳어지고 입 안이 얼얼해지고 새소리는 얼어붙고 하얀 속살이 굳어간다 말랑말랑함은 연하다와 통하는 말 굳다 고딕체이면 좀 딱딱한 성격 유연한 곡선일 때 어여쁜 여인과 맘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였다가 고딕체의 마음이 되면 손톱도 안 들어간다 수염에 고드름 붙고 처마 고드름이 달릴 때 폭포는 흰 이빨 드러내 시리디시린 언어가 굳어 누가 감히 접근하겠는가 폭포의 변태는 자연에 잘 순응하는 모습이다 자작글-023 2023.01.20
기사회생 기사회생 /인보/ 2023.1.20 한창 꽃봉오리 부풀다 된서리 맞아 폭삭 삶겼다 어둑한 귀청을 더 맑게 하려 단물 한 컵 마시고 기다리다가 전화벨은 흐릿한 독침이 실려 귀청이 먹먹해졌다 붉은 입술 다가가 막 입 맞추려는 그때 윽박지르는 이리떼에 그만 실패한 입술처럼 그냥 입맛만 다시고 아쉬움을 이기지 못해 방황한다 영영 살아나지 않을 듯한 귀청에 딱지는 굳을 듯 미련만 남는다 된서리 맞아 살아나는 풀꽃도 있지 다시 전화벨을 보냈더니 귀청은 살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않아 확인 동사무소 직원이 알뜰히 설명하고 보증서를 받아왔다 굳어질 듯한 귀청이라든가 무안당한 입술이 다시 활기를 띈다 굳은 꽃봉오리는 부풀어가 기사회생은 봄날을 맞는다 자작글-023 2023.01.20
갈대는 제 소리 듣지 못한다 갈대는 제소리 듣지 못한다/인보/ 2023.1.19 그늘도 쌀쌀해지는 고목 너머 갈대는 비틀거린다 거위 꿱꿱 먹이 달라 짓는 소리 어둑한 눈빛으로 왜 하품하냐 중얼거린다 졸수卒壽 고개의 갈대 비틀거릴지라도 언뜻 부는 바람 소리에 정기 있어 맞아서 한 구멍 틀어막고 싶었다 갈대 등본 떼어 중앙에 보냈더니 천둥소리 들을 수 있으니 반려했다 백수에 눈 맞지 않으면 갈대는 끄떡없다는 첨삭 굳이 제소리 들으려 말고 내 힘으로 견뎌야지 자작글-023 2023.01.19
먹먹한 오후 먹먹한 오후/인보 2023.1.19 기대한 보청기 꿈은 꿈일 뿐이다 소식 듣고 가슴 답답한 구름 꽉 찬다 낯선 바람 쐐 날려버리고 싶어 3호선 1호선 번갈아 타고 칠성역에 하차 설 대목 밑 녹슨 너트(암나사)가 녹슨 볼트(수나사)보다 더 많이 북적거린다 시장은 살아 퍼덕이고 그 속에 상품 안고 고개 타래 밀고 있는 이 측은하다 먹고 먹히는 삶 속에 먹먹함은 사치라는 생각 급히 되돌아섰다 끝내 쨍하는 햇볕 못 보고 저문다 꿈을 훨훨 털고 싶다 해몽이 좋게 풀리기를 바란다 자작글-023 2023.01.19
덤벙덤벙하다 덤벙덤벙하다/인보/ 2023.1.18 소포 부칠 일이 있어 받을 도로명 주소를 카톡으로 받아놓았다 전에 받은 소포 겉피가 딱 맞아 쉽게 포장하고 주소를 꼼꼼히 챙기지 않은 체 덤벙덤벙 우체국으로 갔다 상냥한 아가씨 영수증까지 받아놓고 아파트단지면 몇 동인지 없네요 아차 실수 전화를 걸었으나 내외 모두 실패 침착하게 기다려주는 아가씨 7.8분이 지나 겨우 연결 덤벙덤벙하다 치른 망신 조용히 기다려주는 마음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이 연발한다 자작글-023 2023.01.19
미친바람 맞고 미친바람 맞고/인보/ 2023.1.18 미친바람 맞아 고래고래 고함친들 멈추겠나 돌아오는 시내버스 차창 밖 미친바람 맞는 비둘기 떼 타협하는 자세로 전선에 앉아 관망한다 다음 차례 내가 내릴 정유소 미리 출구에 서서 벨 누르고 기다린다 서는 듯 멈칫멈칫하다 스친다 기사는 미친바람 맞는가 봐 고함친들 벨이 늦었다는 말 어이없는 변명 터벅터벅 걷는다 비둘기처럼 타협하는 자세로 나갈 걸 이길 수 있나 자작글-023 2023.01.19
전화벨 소리 전화벨 소리 /인보/ 2023.1.18 한때 같은 묶음으로 마음 나누거나 점심 때우거나 나들이하던 그였다 파산선고 내리자 헤어졌다 호적을 말소하거나 행방불명 하거나 어디쯤 있으려니 했다 십여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변치 않은 전화번호를 그가 눌렸다 뭐 지층에 깔려 화석이 되지 않아 뚫고 나와 나 여기 살아있거든 그를 어디까지 알았나 그림 전시회를 열었다고 내 시집을 날려 보내겠다고 반가운 벨 소리 만나자는 약속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자작글-023 2023.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