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4 348

세월은 간다

세월은 간다/호당/ 2024.4.7 백수의 머리에 흰 눈이 내린다 한창 옥시토신이 눈동자를 붉게 만들어 샘솟는 생기를 펼칠 때 앞가슴으로 잎이 떨어지고 어여쁜 꽃대 뒤돌아 앉아 가당찮은 붉은 눈에 장막 씌운 일 장막 사랑은 가고 추억은 남는 것 꽃 같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 종이배 띄웠던 냇물 바다에 이르렀을까 나처럼 추억하나 씹을까 사랑은 가고 세월도 가고 삶은 죽음으로 완성하잖아 세월이 차곡차곡 쌓인 사진첩 먼지 툭툭 털어 들추어 본다

자작글-024 2024.04.07

봄비

봄비/호당/ 2024.4.3 종일 추적추적 대지를 깨운다 아니 벌써 깨어나 약동하는데 뭐 벚꽃잎은 아스팔트에 척척 붙어 봄비와 수작한다 주기적으로 찾는 병원 운동이라야 그저 걷는 것 기껏 3,000보 정도 의사는 그만하면 대단한 겁니다 좋은 말도 그냥 덤덤하다 친절을 베풀어 준 간호사 아가씨에게 꾸벅꾸벅해도 마음은 가볍다 늙은 입술이 바글거리는 곳 값싼 점심 한 끼 때우려 관절음을 달랜다 봄비는 볼기 찰싹 붙어 서둘지 말고 천천히 걸으라 이른다 잉여인간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비애감이 든다 이건 현실을 거부하는 행동 내 분수를 알라 꼬집어 본다 뒤치다꺼리 봉사해 주는 새댁이 예뻐 보인다 봄비는 대지를 깨우고 내겐 비틀비틀한 맘 한 점 깨운다

자작글-024 2024.04.06

자화상

자화상/호당/ 2024.4.5 가는 뼈는 길게 뻗어 언제나 휘청거리며 누구의 앞에 눈 부릅뜨고 팔뚝 걷어 보이고 싶지 않은 사내 곰팡이처럼 쑥쑥 뻗어 손잡아 뻗어 나갈 재간이 마를 덩굴손 내부로 끈질기게 집착해 책갈피는 달아 그 속 힘을 끌어내 낯바닥 맑게 닦은 듯 실은 큰 장독에 비친 옹졸한 얼굴 어쩌면 좋을 걸 맹물이다 마지막 골목을 지나면서 시림에 집착 하나 명시 하나 배출이 난감하다

자작글-024 2024.04.05

갤럭시 Z폴드5

갤럭시 Z 폴드5 /호당/ 2024.4.4 오늘이 내일을 예측 못할 만큼 빠르게 변한다 지능지수가 점점 높은 예쁜 아가씨가 선보인다 매혹하고 말고 옛 아가씨는 늙어 비포장도로에서 툴툴거린다 고도의 지능지수를 지닌 예쁜 아가씨가 주름을 잡는다 저런 아가씨 손목 잡아 봤으면 간절하다 갤럭시 Z 폴드5 딱지 붙은 아가씨가 척 무릎에 앉는다 가슴 벌렁벌렁 유명세를 감당할 수 있겠나 배알이 말라 Wifi 도로만 운행하고 연료를 조금 덜 쓰면 즐길 수 있단다 즐긴 만큼 유명세를 만족한다 뱁새도 황새도 제 걸음만큼 즐기면 좀 더 앞서지 않을까

자작글-024 2024.04.04

맨발로 걷다

맨발로 걷다/호당/ 2024.4.3 맨발은 학대가 아니다 숨 막히는 구두 감옥 같은 가죽 감방에서 해방은 맨발이 바람 씔 때다 마사토 위를 맨발로 걷는다 유리 조각 아카시아 가시 없으니 피 볼 일 없다 짜릿한 촉감이 피를 끓인다 맨발로 걸어 알바 차기에 감각이 없다면 마음 주고 싶지 않은 추녀가 스스로 치마폭을 끓은들 매력녀의 그림자를 밟는 기분일 거다 지기는 오르고 천기는 내려 같이 만나 화끈한 방전이 일듯 맨발 높이 들어 디딜방아를 밟는다 온몸을 감도는 정기가 생동한다

자작글-024 2024.04.03

가로등

가로등 호당2024.3.31 오지마을까지 전선이 깔릴 때 거의 맨 나중에 내 고향도 전봇대가 우뚝우뚝 섰지 호롱불이 줄행랑치자 가로등이 마을을 지키고 개 짖는 소리가 좁을 골을 가득 채울 때도 있었다 나는 벌써 꼬부랑길 걸어 낯선 마을에 닿을 때마다 신고하듯 굽실거리고 어떤 때는 텃새 바람에 가로등에 태질 당할 뻔 할 때도 있었다 지금 가로등에 인사 안 해도 되자 꼬부랑길처럼 모진 가로등 빛이 뼛속까지 비추고 있다

자작글-024 2024.03.31

남십자성

남십자성 /호당/ 2024.3.27 보폭이 좁은 눈동자가 남십자성처럼 남반구에서 길잡이를 한다 별이 반짝이다 외로운 별 하나 새벽에 혼자 십자가 풀밭을 찾는다 각기 제 방식대로 서성이는 나무 유독 성경 3번 필사했다는 자랑 끝엔 같은 레퍼토리를 풀어 놓는다 같은 음가는 재가동을 거듭할수록 귀청에 흠이 생길라 염려한다 자기 몸짓으로 휘휘 젓고 옆 나무의 몸짓엔 듣지도 관심도 없는 교양이 빈곤한 나무 일어서자, 선창. 자기 맘대로 나무들 몸짓하다가 멈춘 채 남십자성을 보이지 않는다 북반구엔 북극성 남반구엔 남십자성

자작글-024 2024.03.28

부엉이 우는 밤(유년 시절의 정경)

부엉이 우는 밤 (유년 시절의 정경) /호당/ 2024.3.28 산골 마을 밤은 일찍 찾아온다 늦가을 아침저녁은 쌀쌀한 시어머니의 성깔 같다 이맘때쯤 논밭은 알갱이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모여 찬 이슬에 떨고 있지 한밤을 지나 새벽이 다가온다 부엉이 우는 소리 구슬프게 들리자 마을 개들 일제히 짖어댄다 그 바람에 밤은 일찍 물러간다 샛별이 총총해지자 눈썹 비빈다 알밤이 여기저기 뒹군다 간밤 부엉이 소리 개 짖는 소리에 놀라 떨어졌겠지 한 오지랖 주워 모아 보라는 듯 집에 오면 어머님 칭찬이 자자하고 부엉이 우는 밤은 영락없이 밤알이 떨어진다

자작글-024 2024.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