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을 잃은 흙 생명력을 잃은 흙 호 당 2011.10.4 아무리 묵밭이라도 거기 생명을 잉태할 흙냄새를 품는다 생명력을 밀어 올릴 힘 그 힘으로 열매를 그 힘으로 흙은 살아 있다 살아 있는 흙은 향기를 품는다 그러나 온갖 폐기물에 파묻힌 가축이랑 인간으로부터 쏟아 낸 것을 끌어안고 같이 썩어가.. 자작글-011 2011.10.04
주례사主禮師의 입 주례사主禮師의 입 호 당 2011.10.3 경사스런 날 얼마나 설레는 날인가 통과의례의 날 강물 흐르듯 흘려보내고 단꿈을 꿔야 할 신부 신랑 아무리 좋은 주례사의 입으로 뿜는 금실 타래가 길게 길게 풀어내면 가슴에 얽어 메일까 참다못한 하객의 입은 금실 타래에 흙탕물로 적셔 흐려 출렁거린다 짧고 굵.. 자작글-011 2011.10.04
주춧돌이 바람들고있다 주춧돌이 바람 들고 있다 호 당 2011.10.2 지구촌에 살면서 울타리를 헐어 사립문을 열고부터 왕래는 개울 건너기보다 쉬워졌다 그리하여 피부색이 엉키고 퇴색하고 새로운 색깔에 생겨나고 말의 껍질이 벗겨 속내를 알아내고 네 생각과 내 생각이 비틀리고 때로는 녹아 어울리고 했다 우리의 든든했던 .. 자작글-011 2011.10.02
슬픔 슬픔 호 당 2011.10.1 아무도 살지 않는 대궐 같은 넓은 정원에 단풍든 나무 한 그루가 잎사귀 한 잎씩 떨치고 있다 자운영에 맺힌 이슬이 아등바등 매달리다 떨어진다 뻐꾸기 한 마리 짝을 찾는지 울면서 날아간다 한 줄기 바람 지나간다. 자작글-011 2011.10.01
조문 조문 호 당 2011.9.28 조락凋落의 계절 서쪽 하늘에 걸린 별 하나 떨어졌다 검은 리본을 달고 사열 받듯 늘어선 국화의 눈동자에 촉촉한 이슬이 젖었구나 제각기 굵기의 차이는 있어도 인연의 실타래를 동여매고 숙연한 속에서 움직인다 영정은 말이 없다 생로병사의 마감 한발 앞서 간 그대의 영정 앞에.. 자작글-011 2011.10.01
이력서 이력서 호 당 2011.9.26 내 가슴에 상아탑을 쌓고 공장지대의 변방에서 밤하늘의 별 하나 따겠다고 꼼꼼히 적은 이력서를 장전裝塡하여 쏘아 올렸으나 번번이 빗나가 떨어지고 서울과 지방 일류와 삼류 서열이 매겨진 불문율에서 미꾸라지는 미꾸라지로 결코 승천하지 못했다 돼지 낯짝은 서열이 아닐 .. 자작글-011 2011.09.26
콜라병 뚜껑을 따다 콜라병 뚜껑을 따다 호 당 2011.9.25 몹시 갈증을 느낀다 허리가 잘록한 병 움켜잡아 보고 싶다 진열대에서 몸매 뽐내는 것 같다 와락 끌어안고 흔들었다 웬걸 진한 흔들림 나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마시고 싶어 꽉 뚜껑을 땄다 부글부글 색정의 거품이 쏟아진다 꿀꺽꿀꺽 아 시원한 그 맛 오르가슴 한 차.. 자작글-011 2011.09.25
내 이름 불러주면 내 이름 불러주면 호 당 2011.9.25 누가 내 이름 불러주면 좋겠다 후미진 들녘에 외로이 피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누가 내 이름 불러주면 기꺼이 속마음 털어 보일 걸 내가 달려가야 하지만 나는 야생화 누가 내 이름 불러주면 향기 듬뿍 안겨주련만 그래도 벌들이 찾아주어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자작글-011 2011.09.25
그 여자 그 여자 호 당 2011.9.25 그녀는 복사꽃 활짝 피우고 웃음까지 띠었다 복사꽃 안쪽을 들여다보면 얼기설기 주름서린 뼈대에 상처를 꿰맨 흔적 화려한 앞 치장은 속마음까지 치장했을까 쓴 물 감추고 달콤한 겉만 포장한 당의정 같은 여자. 자작글-011 2011.09.25
버린 신발 버린 신발 호 당 201.9.25 헌 옷 수거함에 얹어놓은 신발 주인 잃은 버린 신세 그간 사랑받고 맨땅 밟으며 헌신했었다 돌멩이 걷어차고 내 몸 헐어도 말없이 견뎠다 그때까지만 사랑의 온기 있었다 짓눌린 무게와 중압에도 애정으로 봉사했다 내 몸 찌그러지고부터 막다른 골목에서 배신당했다 누가 나.. 자작글-011 2011.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