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2 432

가을 타는 내성천

가을 타는 내성천/호당/ 2022.1.23 가을 해를 안고 어눌 어눌할 나이에 봉화초등학교 뒷산에 올랐다 가을 타는 내성천 눈빛이 아롱아롱 반짝반짝 개평 넓은 들이 여유로운 가슴 드러내고 긴 입김 불어내 온 들이 누렇게 물들고 은피라미 떼 번쩍번쩍 하늘 찌를 때 은빛 폭죽 쏘아 올리는 듯 장관이다 가을 타는 내성천이 햇볕 안아 은빛 물결이 영롱하다 거기 내 추억이 새록새록 그만 감상에 젖었네

자작글-022 2022.01.22

웃음꽃 필 때

웃음꽃이 필 때까지 /호당/ 2022.1.23 형제자매 동서 한자리 웃음꽃이 깔깔 껄껄 하하 호호 박장대소란 꽃이 활짝 필 때 내 가슴에도 기쁨의 꽃 피고말고요 며칠간 눈과 입이 오입에 길들여 껄떡거렸을 적 나는 배불뚝이 되어 식식거려도 아무도 칭찬하지 않았지 헤어진다는 시간이 다가오면 웃음꽃 뚝뚝 떨어지고 꽃잎마저 메말라질 때 배불뚝이는 홀쭉이 되어 서러워 지고 다음 웃음꽃 필 때까지 내 바램의은 하늘에 구름만 둥둥 빗방울 뚝뚝 떨어지더라도 나는 껄껄 웃음소리는 빗방울과는 절대로 섞이지 않을레요

자작글-022 2022.01.22

잘 자

잘 자/호당/ 2022.1.22 게발선인장을 샀다 잠을 낮보다 더 잠재워야 꽃이 많이 핀다고 단일처리하란다 잠 못 이룬 하얀 밤이 반짝반짝 까만 밤이 쿨쿨 내자는 단일처리 중 ‘잘 자’이 한 마디 잠 마중에는 TV 혼자 춤추게 해야 멀리까지 안 가도 마중 끝낸다고 잠 맞나 사이좋게 쿨쿨 화장실 들락날락 단일처리는 아무나 하나 다시 꽃필 일 없겠다 ‘잘 자’이 한마디 별로 유효하지 않다

자작글-022 2022.01.21

적막이 흐르는 새장

적막이 흐르는 새장/호당/ 2022.1.21 짹짹 소리 끊이지 않던 숲속이 조류독감이 사람 독감으로 변이되자 적막이 흐르는 새장이 됐다 끼리끼리이든 자주 부대껴야지 잡초만 무성하고 길은 묻히고 가뭄에 버텨 커 온 감나무 적막을 삼키며 익어가는 감 코로나 준칙 지키다가 까치 부리에 그만 땅에 떨어졌다 파열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사랑도 우정도 사치이거나 무심 무정일 걸 적막이 흐르는 새장엔 짹소리 없다

자작글-022 2022.01.20

노부부

노부부 /호당/ 2022.1.21 반세기를 훌쩍 넘겼으니 참 많이 일그러진 몸 함께 늙어도 소걸음이 뚜벅뚜벅 느릿느릿 여보! 그 소리 돌무덤이 삼켜버리고 찌르릉찌르릉 귀청을 깨운다 전화 받아 초가지붕 검버섯 피고 박꽃 피고 아내의 손짓 올해는 몇 개나 열겠나 듣고 듣지 않은 척 할 수 있지 늙은 얼굴로 늙지 않은 척 조화처럼 할 수는 없지 늙은 얼굴 마주 보고 늙지 않은 것 사랑 하나

자작글-022 2022.01.20

사랑의 파동은 짜릿하다

사랑의 파동은 짜릿하다/호당/ 2022.1.20 물오른 처녀 총각이 눈 맞아 처음 만날 날 아침 해 떠오른 동쪽 바다에 붉고 신비로운 파도였다 은방울꽃에 맺힌 물방울이 연못에 떨어지는 소리처럼 목소리는 감미롭다 처음 손잡을 때 220볼트 전류 같다 웃통 벗은 내 등 타고 기는 자벌레의 촉감 같다 찌릿찌릿 새콤달콤 화끈 으스름달밤 용기 솟아 첫 키스에 성공했다 2,200볼트 전류 온몸으로 떨어 민망해 그녀는 치마폭으로 감싸주었다

자작글-022 2022.01.19

사랑의 색깔

사랑의 색깔/호당/ 2022.1.20 부자유친 글씨가 집 기둥에 부칠 때 한잔하시고 기분 좋은 청청 푸른 날 아베 얼굴에 연분홍 살구꽃 피고 긴 담뱃대 앞뒤로 흔들흔들 담뱃불이 왔다 갔다 집골목 들어서자 야들아 뭐하노 동네가 쩌렁쩌렁 형제들 우르르 아베 오시니껴 부추기면 오늘 한잔했다 내 머리 쓰다듬고 요놈 언제 인간 될라 강산이 획획, 나는 쑥쑥 어쩌다 읍내 나가면 아베 두루마기 꼭 잡고 눈깔사탕 한 봉다리, 내 얼굴 빨강 분홍 아베는 파란 입가에서 흐뭇한 미소 한데 어울려 자주색으로 녹아났다 빛깔 좋아 칭송받던 아베 60 고개 못 넘으셨다 색 밝은 이 좋은 세상에 실린 나 9부 능선을 바라보니 주목이 손짓한다 으스름달밤 꿈같은 세월에 묻은 색깔은 스펙트럼처럼 펼친다

자작글-022 2022.01.19

먼저 박차고 나갔다

먼저 박차고 나갔다 /호당/ 2022.1.19 들끓는 목욕탕처럼 참 좋은 분위기였다 웃음소리랑 유쾌한 얼굴빛이 포근한 날씨다 길동은 갑동이가 평생 갖는 트라우마 하나 속주머니 깊숙이 감춘 것을 들추어 비난했다 듣는 나마저 오싹했다 기왓장 같은 얼굴로 박차고 문을 쾅 닫았다 갑자기 서늘해 목욕탕 물은 식어 내렸다 벙글든 거품 폭삭 내려앉았다 야! 너무했다 길동은 칼을 쳐들고 이놈을 당당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아니야 친구끼리 송곳 찌르지 말자 누구나 허튼 물 고인 우물 하나 있을 거야 거기 돌 던지지 말자 앞산 소나무도 한 가지씩 고통 감추고 푸르게만 보여 모두 푸르게 하자 목욕탕 물을 데우려 더운물 콸콸 쏟도록 밸브를 돌린다

자작글-022 2022.01.19

국시 먹는 여름밤

국시 먹는 여름밤/호당/ 2022.1.17 어메 치마폭 붙들고 졸졸 따라다닌 어릴 적 멍석 깔고 넓적한 목판에 밀가리 반죽하다 콩가리 간간이 뿌려 홍두깨로 살살 달래며 밀어내면 손바닥 넓이가 어메 치마폭보다 더 넓게 퍼지고 가끔 밀가리 슬쩍슬쩍 드디어 정지 칼로 쫑쫑, 끄트머리 한쪽 얻어 불에 올려 벙글면 바삭바삭, 이것 먹고 싶어 어메 치마폭 졸졸 따라가고 대가족 일곱 여덟 식구 멍석 둘러앉아 국시 한 버지기를 양풍이 대접 사발 혹은 쪽박에 한 그릇씩 담아내면 밑바닥 긁는 소리 달그닥 달그닥 그게 어메 몫 뜨거운 것 후룩후룩, 모깃불 연기 먹고 콜록콜록 아무것이나 먹어치워도 허전한 내 배때기 달이 높이 떠 빙긋 더 밝게 비추고 국시 냄새에 반딧불 반짝반짝 무논 개구리 떼 개골개골 개골개골 뽕나무에는 참..

자작글-022 2022.01.18

발뒤꿈치 각질

발뒤꿈치 각질/호당/ 2022.1.16 내 발뒤꿈치 각질이 점점 두꺼워진다 꽃을 꽃으로만 본다는 어스름한 달밤인 척 위선이든 아니든 이건 내 각질이다 꽃을 좋아하면서 물 한 컵 다 한 잔 나눌 술수도 없고 우람찬 어깨로 다가갈 용기도 배짱도 없다 유독 색으로 찬란한 호접란이 내게 색 좋은 볼을 던졌다 맨손으로 받을 재간이 없어 그냥 빗나갔다 색의 열기에 감광도가 높아져 무딘 각질이 앗! 소리 한 방에 고꾸라진 것을 자주 본다 내 발뒤꿈치 각질은 워낙 두꺼워 색이 달구어 온다 한들 무감각이다

자작글-022 2022.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