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소나기/호당/ 2024.3.8 맑은 하늘이 갑자기 내 그늘이 지워지자 사방으로 모이는 구름의 작당 쇠구슬 물 방망이같이 후려갈긴다 우산을 펼쳐 든다 작심하고 다그친다 투덕투덕 아스팔트는 용서받아 묵은때 벗어 흘려보낸다 내게는 우산을 통해 물 메질은 투덕투덕 밤송이 터는 소리로 비워내라 한다 우르르 쾅쾅 번쩍 물 메는 더욱 세차다 내 옷에 다그치는 데는 우산도 맥없다 딱 한 부분 머리에서 내 허튼 마음 비워내는 중이다 자작글-024 2024.03.08
오늘의 행로 오늘의 행로/호당/ 2024.3.8 승용차의 잔상을 지우려면 발품이 예사로워야 한다 무임승차는 관절음을 많이 달래준다 어느 지점에서 아픈 처방전으로 꽉 막혀 내 명찰 걸었다가 조급한 침샘 때문에 떼고 오후로 미루었다 배꼽시계 따라 값싼 충전기에 행로의 방향 바꾸고 입술 즐기다 여유를 부렸다 다음 행로는 LG 삼성대리점에서 값을 점검 관절음이 삐그덕삐그덕 달래려 대중교통 정류소를 찾아 둔다 오늘의 발걸음 5,800여 보 오늘의 행로에 유할유가 깔려 편한 끝맺음이다 자작글-024 2024.03.08
노인 복지관 정심 때 노인 복지관 정심 때 /호당/ 2024.3.7 한 끼 1.300원짜리 그 맛이 어딘가 정심 때면 식당으로 바글바글 모이는 주름살들 개미 떼 같다 뱀 꼬리 감기듯 긴 줄 서서 꿀꺽 침 삼켜 기다리는 1.300원짜리 삶 노인들 잔상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료 급식 같은 줄 서 기다리다 밥 떨어졌다 못 얻어먹고 뒤돌아 오는 백수 꼬르륵 소리에 휘청거린다 자작글-024 2024.03.07
한글 읽기 쓰기 한글 읽기 쓰기 /호당/ 2024.3.7 한글이 모여 굳어진 머리에서 끌어내려 광대처럼 한다 광대 따라 몸짓 유연해지는 듯 읽어내는 입술이 미끄러워진다 받아쓰는 연필심이 똑똑 불어져 밭침 없는 한글을 세워놓고 태연하다 머릿속에 헝클어진 낱자 이걸 끌어내려니 얼마나 애썼겠나 지금 술술 풀어내다가 꼬이거나 끊기거나 고생해 애쓴다 이만큼 실꾸리 감아 냈으니 장하다 자작글-024 2024.03.07
열여 있다 열여 있다/호당/ 2024.3.6 세계는 열려있다 한국의 주가 꼭짓점에 이르자 이국의 여인들 투자하러 불나방처럼 날아든다 한국 총각에 페르몬을 마구 뿌린다 종일 아니 이틀 사흘 함께 수영하고 등산하고 식사하고 한잔하고 혼숙하고 스펙트럼의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열 것은 열어도 마음이 지킨다 열면 들어오고 살핀다 마음 열어 드나들어 봐라 페르몬은 장식용이다 세계는 열려있다 양심과 도덕의 문지기는 튼튼하다 간혹 미늘을 장착한 총각도 있다 *암꽃이 벌 나비를 부르기 위해 내뿜는 분비액 자작글-024 2024.03.06
솟대 위 새 한 마리 솟대 위 새 한 마리/호당/2024.3.4 함지산 고개에 솟대 하나 망본다 어느 날 솟대 위 이름 모를 새가 앉아 눈망울 두리번두리번 그리고 한참 생각에 잠긴 듯 눈 감고 있다 밥이 되든 죽이 되든 시작해 보자는 생각 틀림없이 죽도 밥도 아닌 태워버린 숯덩이가 될 것이다 또한 이미 벌여 놓은 일 나갈수록 손해요 난감하게 된다 솟댄 앉은 새에게 충고한다 깊이 생각하라 방향을 정한 다음 날아라 새는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어디로 가면 내 짝을 만날까 그리고 풍성한 먹이 찾아 새끼를 기룰까 날개를 퍼덕이더니 드디어 활짝 날아가다 따뜻한 임이 오는 길목으로 자작글-024 2024.03.04
나는 배달원(퀵서비스) 나는 배달원 (퀵 서비스)/호당/ 2024.3.3 내 번호는 다부지게 등록 해놓았다 내 식사 시간은 정한 바 없다 가족과 함께 밥상머리 앉아 숟가락 달그락거려 봐 얼마나 행복한가 바지랑대 위 길게 뽑은 안테나 내 귀를 더 예민하게 하려 새워놓았다 거기 솟대 한 마리 망보라 했다 벨소리는 행운의 소리 귀를 새워 청진한들 무음이다 해가 서산을 가리킨다 희망이 노을 따라 넘어간다 이윽고 바지랑대가 꿈틀 벨소리 요란하다 후닥닥 희망의 불꽃이 활짝 솟는다 배달요 여기서 저기서 오트바이는 신이나게 구른다 아내의 얼굴 내 새끼의 얼굴이 얼른거린다 조심해요 우리가 있잖아 내일부터 아내는 알바 새끼는 고시마직막날 제발 로또 복권 안겨라 나는 배달원 솟대로 기다리다 금방 몰찬 제비가 된다 배달은 기쁨이다 자작글-024 2024.03.03
상추쌈 상추쌈/호당/ 2024.3.3 삶의 충전에는 쌀밥 고깃국이 좋지 때로는 상추쌈이 입 언저리를 간질인다 난전에 들렸다 시들어 빠진 상추 뿌리째 한 무더기 상추도 노파도 벌벌 떨며 전을 마감하고 싶어한다 시든 잎 말끔히 씻어 채반에 올려 기다렸더니 퍼덕퍼덕 싱싱하다 삶이 이러면 오죽 좋으랴 상추 몇 잎에 밥 한술 된장으로 입 째지도록 밀어 넣어 입안 가득 풋내 우러나와 아작아작 달콤달콤하다 꿀꺽 사라진다 삶이 상추처럼 되살아 풋 향 뿌린다 자작글-024 2024.03.03
퇴임한 노장들 퇴임한 노장들/호당/ 2024.3.2 진 골목 식당들 참맛 물씬 뿌릴 12시 무렵 배꼽시계 따라 찾아든 어둑어둑한 나이테들 공직에서 희로애락을 겪은 이들 등짐 벗어 홀가분한 마음 반면 어눌한 말들이 새어 나온다 진 골목 긴 골목의 바람에 휩쓸려 같은 식탁으로 박힌다 마른 갈대 바람 맞아 서걱서걱 마음 나눈다 진 골목 진 맛에 막걸리 칵칵하는 동안 찌그러진 풍선은 부풀어 붕붕 뜬다 이만하면 충전했으니 왕년의 노장들 깜박거림은 없겠다 자작글-024 2024.03.02
마른 갈대 넷 마른 갈대 넷/호당/ 2024.3.2 마른 갈대 같은 몸짓 넷이 모여 누군가 앞장서면 뒤따른 꽁무니가 맘 편하다 진 골목은 긴 골목의 경상도 사투리를 알면 진 골목 식당들 진맛과 연결하지 말라 같은 방 다른 좌석 보아하니 같은 갈대들 왕년 빳빳이 뻗어 왕초였다 마른 갈대는 바람맞아야 서걱서걱 소리 매번 만나 같은 소리 같은 음색 꼬리말도 맞장구도 없다 그러려니 또래 옆 좌석 같은 갈대에서 풍기는 입김 진하게 우려낸 생기다 낯선 바람 쐰 내 낯바닥이 검버섯 하나 사라진다· 자작글-024 2024.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