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022 432

잠들기

잠들기 /호당/ 2022.6.25 하절기 열대야는 나를 더운 천으로 포박한다 헐떡거림은 새로운 시작의 표현이다 누웠다 일어났다 시집을 읽다 덮었다 새벽 1시에 어떤 게시 하나 이건 나의 시상이다 시상을 파서 여물게 하려 한 번 두 번 뒤집고 헤치고 맑은 물이 나온다 헉헉 소리는 잠잠하다 새벽바람이 시원하다 햇볕이 뒤꽁무니를 툭툭 친다 아차 9시 헐레벌떡 일어난다 오늘의 시작이다 천천히 도서관 문을 두드린다

자작글-022 2022.06.25

리모델링

리모델링 /호당/ 2022.6.25 화장한 여인의 향기는 신선하다 도서관 리모데링은 자기 변신 2년여 시간을 여행 갔다 온 사람처럼 완전히 새 물 먹고 낯선 사람이 됐다 산뜻한 서림에서 새 신부를 맞는 기분 아니 내가 갓 시집온 신부다 그 집 새로운 문화에 젖어 익어지자면 내가 더 다가가야겠다 반가워 2년여 잠잔 나 서림의 그늘에서 마음껏 노닥거리고 싶다 내 생을 리모데링 할 수 있다면 자기 변신일 수 있겠다

자작글-022 2022.06.25

눈감고

눈감고/호당/ 2022.6.25 어제까지 눈뜨고 세상을 내다보고 서림을 헤쳐 양식의 강물에 손 씻고 세수하고 물장구치고 벌러덩 누워 사색했다 문 닫은 것은 눈 감은 것이다 칠곡 주민의 목마른 샘터를 뚜껑 닫고 갈증을 겪어서야 도서관 진가를 느낀다 산다화 두 번 피고 지고 살구야 참외가 팔거천을 동동 떠다닐 때야 눈을 떴다 양떼구름 몰려온다 동공 속으로 길이 달라지고 방이 달라지고 이방 저방 서림을 헤치고 향기를 맡는다 그래 사람은 가끔 휴식 기간이 있어야 해 그 기간을 충전하고 재생한다 서림이 눈감은 것은 새로운 발돋움을 위한 휴식기다

자작글-022 2022.06.25

막히면 뚫는다

막히면 뚫는다 /호당/ 2022.6.24 발신처가 다른 메시지 수신할 다리 툭 끊겼다 밝은 두뇌전광판이 캄캄하다 비 오는 날 앞마당을 유유자적하던 지렁이 땡볕 내리쬐어 갈피를 찾지 못해 허둥지둥 시시각각으로 말라가는 두피 고객센터는 쾌청한 날씨 아는 듯 혹시나 가설 빗방울 하나 이건 단서다 끊긴 다리 이어 정설로 입증하니 지렁이는 유유히 막힌 땅을 뚫고 메시지를 받아 살찌워 나간다

자작글-022 2022.06.25

갈등

갈등/호당/ 2022.6.18 방향감각을 잃은 나침반은 등 하나 놓고 넘을까 말까 좌로 우로 왔다 갔다 한다 아직 내 뒤를 쫓는 총구는 없다 세차게 흐르는 냇물을 두고 보폭이 넓은 징검돌 발 헛디디면 물살에 밀려 떠내려간다 용기일까 결심일까 물러설 수 없는 지점 시한폭탄 안고 갈등을 겪는 짓은 미친 짓거리 펄쩍 이든 웃쩍 이든 용솟음치는 힘으로 단숨에 뛰어넘을 용기는 갈등을 소멸시킨다

자작글-022 2022.06.18

시나나빠

시나나빠 /호당/ 2022.6.17 내 고장 사투리 유채 나물 월동 초를 시나나빠라 한다 봄동을 봄똥이라 부르는 지방이 있는가 하면 남 먼저 봄 알리려 풋 가슴 벌린 봄나물 시니나빠 야들야들 달짝지근하면서 풋내는 새악시 입술 맛 난다 날것 시나나빠 두셋 잎에 밥 한 숟깔 쌈장 툭 찍어 돌돌 말아 입 딱 벌려 쑤셔 넣어 멧돌 한 바퀴 씹어 돌리는 사이 앓은 이빨 쑥 뽑아버린 그 쾌감을 느끼는 동안 노오란 꽃 피워 나 시나나빠가 아니거든 유채꽃이 방실방실 웃는다

자작글-022 2022.06.18

12시

12시 /호당/ 2022.6.16 정오 한가운데 어김없는 한 점 12시 백수의 머리에 낙수 한 방울 덮어쓸 일도 아닌데 하얗게 백지로 남는 시간을 허겁지겁 달려가서 정오 시계추에 입 맞추자니 허리 굽는다 30분 늦추어 여유를 두자고 창졸한 바람에 고했더니 바람은 내 자존심까지 몰고 12시의 허방에 빠지고 만다 백수의 머리가 갑자기 백발 되어 역시 허방에 빠진다 내게 12시는 고무줄이다 항상 여유로워 허방이 없는데 느긋하게 당겨 놓으련다

자작글-022 2022.06.17

삶과 죽음 사이

삶과 죽음 사이/호당/2022.6.16 저물어간다 여기까지 살아 온 만큼 많은 허물을 쌓았다 남은 세월 하늘 향하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겠다는 다짐 언뜻 부는 바람에도 칼날로 맞서려 하지 말라 혼자 괴로워할지라도 미워하지 말자 가장 비열한 말 네까짓 것이 뭔데 씹으면 씹을수록 저열한 비린내를 나는 꿀꺽 삼키고 잊으려 한다 삶은 죽음이 전제한다 그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얼음판을 걷더라도 경외심을 잃지 말자

자작글-022 2022.06.16